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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네에 있는 지하철역의 출구만큼 뚜렷한 방향성을 가지는 곳도 없는 것 같다. 인사동을 가기 위한 출구, 삼청동을 가기 위한 출구, 북촌을 가기 위한 출구, 그리고 이 동네를 가기 위한 출구가 대단히 명확하게 나눠져 있다. 그래서 본인이 가고자 하는 동네 혹은 먼저 가고자 하는 동네가 있다면 그 방향 출구로 나가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고 헷갈려서 다른 동네를 향하는 출구로 나갈 경우 횡단보도를 통해 길을 건너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지하철 플랫폼에서 지상까지 겨우 올라왔는데 말이다.
난 이 동네에 있는 지하철역과 같은 호선이 지나는 동네에 거주해서 환승을 하지 않아도 됨에도 불구하고 항상 버스를 타고 간다. 환승을 해야 함에도 말이다. 그저 어린 시절 역세권에 살지 않아서 버스가 더 친숙하다는 점도 있지만 여전히 지하보다는 지상을 더 선호한다는 그런 점도 작용하는 것 같다.
정확하게 이 동네의 행정구역이 어디 까지 인지는 모르겠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여러 동네로 갈 수 있는 허브 같은 곳이서 더욱 그런 것 같다. 나만의 기준으로 보자면 이 동네는 대부분 건물들이 동네를 다 차지하고 있다. 여중과 여고가 있고, 공예박물관이 있고, 그리고 헌법재판소가 있고. 그렇게 이 동네로 나오는 지하철역 출구를 중심으로 하나의 블록 정도가 이 동네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행정 구역 상으로는.
그렇게 큰 건물들 사이에 골목들에 대단히 특색이 많은 식당들과 커피집들이 모여 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옆 동네에 대기업 사옥이 있고, 또 옆동네에 경복궁이 있어서 대단히 많은 국내외 관광객들이 돌아다니고 앞동네에 인사동이 있어서 더더욱 사람들의 왕래가 많다. 게다가 평일에는 중고등학생들 특히 여중고등학생들이 많다. 그렇게 직장인, 여학생들, 그리고 외국인 관광객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방문하다 보니 그 기호와 취향을 반영해야만 했을 것이다. 이 동네 커피집 1층에 평일에 앉아서 관찰을 하면 대단히 다양한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누가 봐도 직장인인 사원증을 목에 건 사람들, 한복을 입은 외국인 관광객들, 그리고 교복을 입은 학생들, 그리고 그냥 이 동네에 놀러 온 사람들까지.
이렇듯 여러 동네로 갈 수 있는 허브 같은 곳이 있다. 어찌 보면 플랫폼 같은 역할을 하는 그런 동네. 최근엔 너무도 흔해진 IT 업계의 플랫폼 서비스처럼. 생산자와 소비자가 하나의 공간에서 그들의 이익을 취하는 행위를 하는 동안 그 플랫폼 운영자는 그들의 원활한 활동을 위해서 플랫폼을 잘 운영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런 과정에서 그들 역시 이익을 얻기 때문이다. 국내 대형 플랫폼들은 그걸 잘 못하고 자기네 이익만 챙기려 하다가 욕을 먹거나 사라지기도 하지만. 이 동네 역시 나에겐 그런 느낌이다. 플랫폼 같은 동네. 이곳에 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각자의 목적지 혹은 목적을 가지고 방문을 한다. 하지만 이곳에 머무는 시간은 대단히 적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상권은 이곳에 오는 사람들의 최종 목적지들에 비해 더디게 발전했지만 나름의 속도로 발전을 해 왔다. 그러면서 점점 그들의 목적지를 이곳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이곳에서 학교를 다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일을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낙수효과라고 볼 수 있지만 낙수효과라는 말은 그들의 노력을 무시하는 것 같아 나는 싫어하는. 그리고 이 동네는 낙수효과의 수혜지라고 보기엔 그 전 부터 워낙 유명했던.
그런 동네,
안국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