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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라는 안타까운 역사를 거치면서 4대 문 안의 동네의 이름들이 대부분 일본식 이름으로 바뀌었었다. 그렇게 불리다 광복 후 그곳의 이름들을 바꾸기 시작했고 그렇게 바뀐 이름이 지금까지 불리고 있다. 대표적으로 을지로와 이곳이다. 누가 봐도 이순신 장군님의 호를 딴 이름으로 공교롭게도 을지로와 이곳 모두 이름의 유래가 외세로부터 나라를 구한 장군의 이름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만큼 궁의 주변 그리고 4대 문 안을 그분들의 이름으로라도 지키고 싶었던 옛 조상들의 마음과 안타까움이 느껴지긴 한다.
하지만 난 이 동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이곳에 있는 극장이다. 대한극장이라는 지금도 운영 중인 극장이지만 현재의 위상은 과거의 그것에 비하면 초라할 지경이다. 이 극장이 나의 기억에 들어온 것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 축구 중계를 극장에서 했었다. 지금 대형 멀티플렉스에서 월드컵 경기를 보여주는 것의 시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때 네덜란드와의 경기를 중계했었고 결과는 모두가 알고 있는 5:0 대패, 이에 새벽부터 중계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은 사람들이 화풀이를 극장 의자에 해서 의자가 모두 파손되어서 어쩔 수 없이 극장 좌석 리뉴얼을 했다는 심증 가득한 소문이 있다. 난 이 동네 하면 이 에피소드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이와 동시에 이 동네는 영화 산업의 중심지였다. 난 이 동네가 영화 산업의 중심일 때 워낙 어린 시절이어서 잘은 모른다. 지금의 멀티플렉스 극장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 공교롭게도 1998년이었다. 그전까지는 서울 메이저 극장들은 모두 종로에 있었다. 좀 더 정확하게는 종로 3가에 모두 모여 있었다. 당시에는 영화산업에 극장 소유주들의 영향력도 대단했었고 그들이 영화 제작 혹은 배급에 많이 참여하던 시기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화 산업이 메이저 극장을 중심으로 발전하였고 그 옆 블록인 이 동네가 영화산업의 중심이 되었다. 그로 인해 인쇄업 역시 동반으로 발전을 하게 되면서 현재도 인쇄업은 성행을 하고 있다. 지금도 회사에서 대량으로 인쇄를 하거나 해야 할 경우는 이곳에 있는 인쇄소에 의뢰를 해서 진행할 정도이다. 물론, 디지털로 많이 변화가 있으면서 물리적인 인쇄물들이 줄어 들 면서 그 수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현재는 없어진 강북에서 가장 유명한 산부인과가 있었으며 그 주변에 이유를 잘 모르겠는 애견샵들과 바이크샵들이 공존을 하고 있다. 아무리 접점을 찾아보려고 해도 애견샵과 바이크샵의 접점을 찾는 게 쉽지는 않다. 이 산부인과가 경영난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이자 많은, 이 산부인과를 이용했던 셀럽들이 회생시켜보려고 하였지만 특히 산과가 유명했던 이 병원은 줄어드는 출산율로 인해 폐업의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었다.
이 처럼 세상이 변하고 산업의 흐름이 변하면서 동네의 특성도 조금씩 변하는 건 어찌 보면 숙명일 것이다. 인쇄소 혹은 인쇄공장이 있던 자리에 커피집이나 와인바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더 이상 영화인들이 이 동네를 찾진 않지만 여전히 이곳의 지하철역에는 그 당시의 영화인들의 사진과 포스터들이 과거의 이 동네의 영광을 알리고 있다.
모든 것이 변함에 따라 이 동네 역시 많이 바뀌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동네의 상징 같은 평양냉면집이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흔히들 평냉에 난이도가 있다고들 이야기한다. 그 난이도는 아마도 육수의 맹맹함 정도가 그 척도인 것 같다. 어느 정도 간이 되어 있는지 아니면 정말 심심함 그 자체인지. 심심함이 강할수록 난도는 높다. 왜냐하면 처음 그 심심함을 맛보았을 때 느껴지는 인상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그런 난이도로만 봤을 때 이 집은 서울에서 가장 극상의 난이도를 가진 곳이다. 나도 현재는 평냉을 대단히 좋아하지만 이 집에서 처음 먹었을 때의 인상을 잊을 수가 없다. 이게 뭔가? 음식인가?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그곳의 난이도만이 이 동네에서 거의 유일무이하게 변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과거의 은막의 스타들이 이 동네를 수놓았다면 지금은 많은 힙쟁이들과 관광객들이 방문하고 있는,
그래서 여전히 힙한 동네인,
그런 동네,
충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