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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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런남자

10여 년 전 유럽 배낭여행을 할 때의 경험이다. 당시 나는 동유럽으로 들어가서 오스트리아 빈을 거쳐 잘츠부르크에 머물며 모차르트의 기운을 흠뻑 느끼고 있었다. 잘츠부르크에 있는 한 호스텔 창가에서 지저귀는 새소리에 아침 잠을 깼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며, 내 인생 가장 기분 좋은 순간 중 하나이다. 암튼, 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 잘츠부르크에서 머물던 하루 이른 아침에 일어나 동네 산책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단체 관광객 무리가 길을 건너고 있었고 이를 뒤에서 망연자실하게 지켜보고 있던 오전 러닝을 즐기던 한 시민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항상 겪는 일이라 달관한 듯한 표정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너네들이 무슨 권리로 나의 운동을 방해하냐는 불만 어린 표정이 묘하게 공존하는 그런 모습.


이젠 이런 모습이 한국에서도 흔한 일이 되었다. 여름이면 부산 해운대에 있는 편의점 점주가 제발 수영복 입고 매장에 출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웃지 못할 하지만 그들에겐 대단히 절박한 하소연은 이젠 일상이 되었다. 서울 역시 예외는 아니다. 어느 순간 본인이 10여 년간 살던 동네가 소위 힙플레이스가 되면서 사람들이 주중, 주말 할 것 없이 몰려오고 이로 인해 동네 소음 및 미관도 망가지는 그런.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동네 역시 점점 상업 시설들이 내가 살고 있는 곳 근처로 침투하고 있어서 이사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으니 말이다.


오늘 이야기할 이 동네 역시 그렇다. 갑자기 본인들이 사는 주거의 형태가 한옥이고 본인이 사는 동네가 한옥이 많다는 이유 만으로 어느 공무원에 의해서 한옥마을로 지정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이곳은 지난주에 이야기한 충무로에 있는 한옥마을과는 차원이 다르다. 충무로의 한옥 마을은 관광을 목적으로 조성한 곳이라고 한다면 이곳의 한옥마을은 실제로 사람들이 주거하고 있는 본인들의 집들로 이루어진 곳이다. 어찌 보면 그 이유 때문에 이 동네를 찾는 사람들에게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졌을 수도 있다.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움 때문에. 하지만, 집이라고 하는 곳의 가장 큰 목적은 '쉼'이다. 이곳의 주민들은-지금은 많은 계도로 인해 나아 졌다고는 하지만-본인이 사는 집이 한옥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주목적을 한동안 심하게 침해받았었다. 아마 여기 거주하는 사람들에겐 여러모로 불편하고 불안했던 코비드 기간이 다른 한편으로 편하고 안정적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곳은 행정구역상으로는 '가회동'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다른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린다. 서촌과 더불어 '방향+村'으로 이루어진 이름이다. 근데 서촌은 경복궁을 바라보고 분명히 서쪽에 있다. 하지만 이 동네는 무엇을 기준으로 그 방향이라서 그런 이름으로 불리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아니면 방향의 의미가 아닌 다른 의미의 동일한 단어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곳을 대표하는 것은 여전히 '한옥마을'이다. 주거의 형태가 아니라 하더라도 게스트하우스, 티룸 등으로 운영되는 곳도 몇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주거용 한옥이 주를 이룬다. 한옥마을과 더불어 이곳을 대표하는 곳이 2군데 더 있다. 한 곳은 여럿 재벌가의 사람들과 셀럽들이 종종 결혼을 하는 '가회동 성당' 그리고 한국의 베이글 열풍의 시작에 있는 베이글 집이다. 나 역시 한번 휴가인 날 오전 9시 정도에 가본 적이 있는데 어마무시한 웨이팅을 보고 바로 포기했던 경험이 있고 지금도 역시 포기상태이다.


높은 건물이 거의 없어서 지금 같은 여름에는 동네 산책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동네이긴 하다. 그늘을 거의 찾아볼 수 가 없는 곳이다 보니 뜨거운 햇빛을 피할 곳이 마땅치 않은. 하지만 날씨가 조금 선선해지면 혹은 겨울에도 난 이 동네를 산책하는 것을 좋아한다. 높은 건물들이 거의 없다는 같은 이유에서. 그리고 이곳에는 내가 종종 가는 한 카드사에서 운영하는 내가 좋아하는 '디자인 라이브러리'라는 공간이 있다. 이곳에 들어가려면 이 카드사의 카드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이 카드사의 카드를 일부러 발급받았을 정도이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랜드마크는 트렌드에 따라 바뀌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단단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면 그곳은 여전히 트렌디 한 곳이 될 수 있는,


그런 동네,

북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