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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20대를 거의 모두 보낸 곳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이지 지질하고 어처구니없는 미친 짓들을 이 동네에서 많이 하고 다녔다. 가끔 이 동네를 오거나 지나갈 때면 그 당시의 나의 치기 어림이 떠올라 이 동네를 직접 통과하지 못하고 돌아가야 할 것만 같은 기분마저 든다. 하지만 이 동네는 돌아갈 만한 길이 없을 정도로 너무도 많이 돌아다녀서 각 골목마다, 그리고 지금은 거의 바뀌긴 했지만 몇몇 남아 있는 나의 20대를 기억하고 있는 식당과 술집들이 나의 흑역사를 언제든 말할 것 같은 공포(?)마저 들기도 한다.
하나의 시험을 잘 본 덕택에 난 이 동네에 있는 한국인이면 거의 다 아는 대학교를 다녔다. 누군가는 재수 없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단지, 하나의 시험 '수능'을 잘 봤기 때문에 이 학교에 입학을 했다. 소위 말하는 내신이 엄청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이 학교를 갈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내가 입학을 하던 해에 '특차'라고 하는 지금의 '수시'-지금의 수시는 학생부와 내신 위주로 보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와 약간은 닮아 있는 전형제도가 있었고 그 전형은 수능성적만 보고 학생을 선발했었다. 수능 성적이 좋은 학생을 더 좋은 학교나 라이벌 학교에 뺏기지 않고자 하는 속내가 다분한 전형이었다. 하지만 나에겐 그런 속내가 전혀 통하지 않았다. 난 더 좋은 학교를 갈 정도로 그리고 라이벌 학교를 갈 정도로 내신 성적이 좋지 않았기에. 난 그저 어쩌면-더 재수 없는 발언 일 수 있지만-내 수능 성적으로 갈 수 있는 최고의 그리고 최적의 학교였을 뿐이다. 사실 가장 가고 싶었던 학교는 옆에 있던 여대였지만. 여자만 있다는 아주 지극히 멍청한 이유에서.
내가 이 동네를 처음 와 본 것은 대학 입학 전이긴 했다. 고등학교 때 시험이 끝나거나 혹은 친구랑 만나서 놀 때 자주 왔었다. 당구장이며 노래방 혹은 오락실들을 돌아다니면서 놀았고 나름 덩치가 컸던 나랑 내 친구는 마치 대학생이 된 마냥 돌아다니면서 놀았었다. 그래봐야 당시 대학생들이 보기엔 고등학생티가 팍팍 났겠지만. 당시에는 홍대 상권이 발달하기 전이어서 강북에선 명동 상권과 더불어 가장 큰 상권 중 하나였다. 물론, 패션 유행은 옆에 여대를 중심으로 한 상권이 더 발달하였었지만. 상권의 크기로만 보기에도 명동 상권 다음으로 큰 상권이었다. 1999년 스타벅스가 1호점을 오픈할 때 고려되던 상권 중 하나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스타벅스 1호점은 옆에 여대 앞에 생겼고 내가 지금도 가장 훌륭한 비즈니스 결정이었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이다. 하지만 동네가 대학가라는 폐쇄성을 가지고 있었다. 대학생들을 제외하곤 다른 계층의 사람들이 잘 유입되진 않았다. 같은 대학가이긴 했지만 홍대 상권과의 가장 큰 차이였고 그것이 향후 상권의 성장과 몰락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이었다고 생각된다.
이 동네를 가로지르는 왕복 2차선 도로가 하나 있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는 왕복 4차선으로 보행자의 안전 따위는 거의 고려되지 않은 수준의 인도가 있었다. 이 도로만큼 사연이 많은 도로도 서울에 없을 것이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기엔 이 도로는 일반적인 차가 다니는 평범한 도로였다. 물론, 도로 주변에 식당들과 술집에 납품을 위해 차들의 정차로 인해서 차가 좀 많이 밀리고 혼잡한 도로였긴 했지만. 그러던 도로가 어느 순간 일반 차량은 통제를 하고 버스만 다닐 수 있는 도로가 되었다. 그마저 주말엔 버스마저 다니지 못하는 보행만 가능한 도로로 운영이 되었다. 그러다 최근에는 주중과 주말 모두 버스만 다니는 도로로 다시금 변경되었다. 오랜만에 이곳을 버스를 타고 오는 사람은 대단히 혼란스러울 수 있다. 나 역시 이곳을 지나가는 버스 안에 부착되어 있는 안내문을 보고 알았으니.
나에게 이 동네는 '청춘' 그 자체이다. 당시 내 동기들과는 달리 이 동네에서 많은 아르바이트들을 하면서 땀 흘려 돈을 번다는 것에 대한 소중함을 알았고, 폭우로 인해 반지하에 살던 동기의 집이 물에 잠기는 처참한 광경도 목도하였고, 그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우리들의 초라함도 경험하였다. 다른 학교 학생들과 시비가 붙어 이곳을 죽기 살기로 뛰었던 적도 있으며, 축제 때 그리고 응원제 때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르기도 했었다. 그리고 가장 소중한 많은 만남과 이별의 기억들이 있는 곳이다.
지금은 내가 학교를 다닐 때 있던 것들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여전히 매출이 잘 안 나오는 백화점과 그 뒤에 조금은 리노베이션이 된 하지만 여전히 중고등학생들만 사용하는 어린이 놀이터, 그리고 정문 앞에 교회 정도. 골목 안에는 여전히 나의 기억과 함께 하는 오래된 식당들과 술집들이 있겠지만 말이다.
내가 20대를 보낼 때와는 동네의 모습도 학교의 모습도 많이 변했지만 갈 때마다 나의 20대와 마주하는 것 같아 잔잔한 설렘과 달아오르는 부끄러움이 공존하는,
그런 동네,
신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