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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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런남자

과거엔 힙한 ‘동네’가 있었다. 압구정동이 그랬고 명동이 그랬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동네'보다 '길'이 힙한 장소의 대명사가 되어 버렸다. 그 시작에는 신사동의 '가로수길' 그리고 오늘 이곳이 있다. 이후로는 '가로수길'의 '-수로길', 이곳의 '-리단길'이 해당 동네의 앞글자와 합쳐져 하나의 힙플레이스의 어미처럼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로수길'어미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듯하다. 언뜻 생각해 봐도 가로수길을 제외하곤 신림동에 '샤로수길' 정도. 하지만 '-리단길' 어미는 이젠 이 나라의 어느 도시에 하나 이상씩은 있는 것 같다.


시작은 비슷했지만 그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도 궁금하긴 하다. 발음상의 편의성이 가장 크다고 보이지만 원조인 가로수길과 이곳이 가지는 동네의 정체성 역시 이런 차이를 만든 이유라고 나는 보고 있다.


이곳에 처음 온 사람들은 약간 당황할 수도 있다. 이곳은 '길'이긴 하지만 평지가 아니다. 오르막길, 그것도 도로 아래 모두 열선이 깔려 있을 정도로 경사가 꽤 있는 오르막길이다. 물론, 방향에 따라서는 경사가 꽤 심한 내리막길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부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그 시작을 오르막길로 할 가능성이 크다. 그 오르막의 시작에 이곳의 이름의 유래이기도 한 곳이 있다. 현재는 '국군재정경리단'으로 명칭이 바뀐 것 같은데 과거엔 그냥 '국군경리단'이었다. 과거에 회사에서 비용에 대한 영수처리를 주 업무로 많이 하던 직급을 ‘경리’라고 불렀고 그 단어와 같은 의미이다. 국군의 경리 업무를 하는 부대가 바로 이곳이다. 그렇게 오르막이 시작되면 그 끝에는 하얏트 호텔이 있다. 이곳을 다니는 마을버스가 하나 있는데 나는 탈 수 없는 미니버스도 있어서 난 항상 이곳을 걸어 다녔었다. 이 동네를 자주 다닐 때 만나던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군말 없이 이 언덕을 같이 걸어 다녀 준 점에 감사와 사과를 동시에 전하고 싶다.


이곳의 시작은 이태원 상권의 젠트리피케이션에서 시작을 했다. 이태원 상권이 커지면서 따라오는 임대료 인상으로 인해 점점 이태원 상권에서 영업을 하던 사람들은 다른 곳을 찾을 수밖에 없고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저렴했던 이곳으로 옮겨서 영업을 하기 시작을 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접근성이 대단히 안 좋은 곳이다 보니 사람들을 끌 다른 여러 요소들을 도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메뉴와 콘셉트를 가진 곳들이 생겨났고 그런 것들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동네가 힙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곳이 과거엔 그냥 그런 동네는 아니었다. 대단히 오래된, 현재는 다른 곳에 지점이 있는 화상 중국집이 여전히 운영 중이며 스테이크를 파는 곳이지만 디저트인 티라미수가 더 유명해져서 현재는 백화점에서 티라미수만 판매를 하고 있는 식당도 있다. 주변에 대사관들과 하얏트호텔을 자주 오가는 사람들에겐 그들의 기호에 맞는 여럿 식당들과 커피집들이 존재 했었다. 하지만 그 정도 수준의 조금은 구매력이 있는 사람들이 주로 가는 동네에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갈 수 있는 곳으로 진화한 것뿐이다.


현재는 힙플레이스 마저 유행이 있고, 그리고 한국은 그 유행마저 대단히 빠르고 가차 없이 지나가다 보니 지금은 과거의 조명은 꺼진 것 같다. 그래서 이곳은 '-리단길'이라는 힙플레이스 대표 대명사라는 대단한 업적을 남기고 현재는 많은 사람들에게 방문 순위에서 벗어나가고 있긴 하다. 이에 최근 가장 각광받고 있는 브랜드 에그리케이터 회사에서 이곳에 몇몇 특색 있는 공간들을 오픈하면서 다시금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곳이 주목을 받는 것인지 아님 이곳에 있는 그 공간들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여전히 이곳을 종종 찾는다. 난 워낙 이 동네를 많이 다녀서 오르막을 최소한으로 갈 수 있는 골목들을 많이 알고 있기에. 그리고 여전히 이 동네가 힙할 때부터 터를 잡고 여전히 운영 중인 골목 안의 내공 있는 곳들이 남아 있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가 없는, 없을 나에겐 여름에 가기엔 버거운,


그런 동네,

경리단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