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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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런남자

강북에서, 아니 서울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동네이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냥 처음 왔을 때부터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 들었고 지금도 가슴이 답답하거나, 무언가 생각을 해야 할 때 이 동네를 정처 없이 걸어 다니곤 한다. 처음 왔을 때와 동네의 세세한 부분은 조금 바뀌었지만 큰 틀은 크게 변하지 않아서 더 좋은 것 같다. 이 동네 역시 대단히 넓어서 내가 자주 가고 좋아한다고 하는 곳은 이 동네의 일부에 불과하다. 그리고 대단히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동네이기도 하기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기분상으로도 그렇고 물리적으로도 동네 자체가 대로변으로부터 깊숙이 들어가 있는 듯한 모습 덕택에 동네의 풍경마저 빠르게 변하는 시대의 흐름에서 조금 비켜나가게 해 주는 것 같다. 여전히 동네 초입에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 중에 하나가 있고, 중간쯤엔 기사식당으로도 유명한 불백집이 그리고 왕돈가스집이, 그리고 동네의 끝자락엔 누룽지백숙집이 있다. 그 모습은 과거의 모습보단 조금 더 세련된 모습으로 리뉴얼되었지만 내가 처음 이 동네를 왔을 때와 같은 위치를 지켜주고 있다. 내가 이 동네를 처음 왔던 것이 20년도 전임에도 불구하고.


이 동네에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나와 동년배의 사람들에겐 고등학교 시절 문학 교과서에 실린 소설로 이 동네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것이다. 'XXX 비둘기'라는 소설의 제목으로. 이 소설에서 나오는 이 동네는 과거에 존재했던 이곳의 산동네 판자촌을 의미한다. 지금도 조금은 남아 있지만 대부분 그 자리엔 아파트가 자리하고 있고 그 아파트가 생기면서 이 동네에 살고 있던 하지만 쫏겨나야 하는 신세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이 나라의 그리고 서울의 근대 경제사의 어둡고 서글픈 모습을 담은 대표적인 소설 중 하나이다. 나 역시 그 소설을 통해서 이 동네를 인지하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그 당시 방송되던 드라마의 재벌집 회장들이 사는 곳으로도 알게 되었다. 당시 드라마에 그런 집들은 항상 전화를 받을 때 동네 이름을 댔는지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그중 대표적인 두 곳 중 하나였다.


그렇다. 이곳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되고 부촌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서울의 특히, 강북의 부촌이 그러하듯 대사관들의 관사들이 모여 있기도 하다. 대사관 혹은 관사들은 마치 부촌의 필요충분조건처럼 따라다니는 것도 신기할 따름이다. 특히, 이 동네는 위에서 말했듯이 과거에 기업의 회장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으로 유명했다. 지금도 고급 빌라들과 대저택들이 동네 곳곳에 포진되어 있고 동네의 끝자락 언덕에 대거 모여 있다. 차로 지나가면 그저 끝도 없이 높은 담들만 이어져 있고, 담들의 모양새의 변화로 집들을 구부할 수 있는 정도로 외부에선 전혀 집들이 보이지 않는다. 난 운이 좋게 20살에 이런 집들에 한 곳에 사는 사람을 학교 동기로 만나서 한 번 실제로 집에 들어가 본 적이 있었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그 형-동기였지만 재수를 해서 한 살 많았던-의 어머님이 좋아하신 다는 이유로 정원에 미니 폭포를 만들고 있었던, 그리고 내가 무슨 공사를 하냐고 물었을 때 전혀 대수롭지 않게 '폭포'라고 말하던 그 형의 표정.


현재는 찻집으로 사용 중인 이태준 작가가 살았던 그리고 당시 문인들의 사랑방으로 사용된 집이 있고, 간송 전횡필 선생이 사재를 털어 수집한 문화재들과 문화재급 유물들이 전시, 보관되고 있는 최초의 사립 미술관이 있으며, 과거엔 요정으로 사용되었지만 현재는 법정스님이 입적 전 마지막에 머물렀던 절로 유명한, 내가 가을만 되면 단풍을 보기 위해서 항상 찾는 절이 있는, 그 외에 즐겨 찾는 진공관 음악감상실과 프랜차이즈의 공격을 거의 받지 않은 로컬 음식점과 커피집들이 있는, 아마 그래서 내가 이 동네를 더욱 애정하지 않나 생각이 드는,


그런 동네,

성북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