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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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런남자

10여 년 전 처음 독립할 때 이 동네의 오피스텔에서 살기 시작했다. 당시에 왜 이 동네에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는지 그 이유는 아직도 의문이 든다. 그전에 이 동네를 자주 왔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연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당시 만나던 여자친구가 근처에 산 것도 아니다. 당시에 일하던 사무실이 신사동이어서 접근성이 대단히 좋은 것도 아니다. 오피스텔이 신축이어서 시설이 대단히 좋은 것도 아니었고 그냥 평범한 원룸의 스튜디오 형식의 연식이 꽤 된 오피스텔이었다.


이 글을 쓰면서 당시에 내가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당시 사무실이 있던 신사동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다. 1호선이긴 하지만, 그리고 나는 지하철을 거의 타지 않지만 오피스텔 바로 앞에 지하철역이 있다. 그리고 옆 동네에 청량리역이 있어서 집 앞에 다니는 버스가 엄청 많다. 그리고 오피스텔 앞에 서울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이 있다. 이런 점들이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뿐. 여전히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그리고 정확한 이유를 알아야 할 이유도 별로 없긴 하다.


이 동네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 시장들일 것이다. 재래시장이 있고, 약령시장이 있고, 청과물시장이 있다. 이 재래시장과 청과물시장은 붙어 있고 약령시는 길건네에 위치해 있다. 재래시장과 청과물 시장은 그냥 우리가 알고 있는 시장의 형태이다. 약령시장은 한약재료를 파는 시장이다. 그래서 약령시 근처를 걷다 보면 온갖 종류의 한약재냄새가 뒤섞여서 냄새만으로도 건강해지는 착각이 들기도 하지만 착각이 맞다.


시장들이 모여 있다 보니 주말이나 명절 전에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그나마 평일에는 한가한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많다. 최근엔 재래시장이 힙하다고 생각하는 젊은 층들이 많아지면서 재래시장 안에 있는 식당들에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동네를 다니는 사람들의 연령대는 높은 편이다.


최근엔 이 재래시장 안에 있던 극장을 리모델링해서 별다방이 지점을 오픈을 했다. 극장의 모습을 보존하면서 인테리어를 해서 대부분의 좌석들이 앞을 바라보고 있게끔 디자인이 되어 있다. 스크린이나 무대를 바라보는 방식으로. 지금은 그 스크린이나 무대 대신에 커피를 제조하고 주문을 받는 스테이션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글 역시 그곳에 앉아서 작성을 하고 있다. LG 역시 별다방의 입구 쪽에 체험형 스토어를 운영하면서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지만 실상은 대부분 별다방을 가는 사람들이 지나가는 동선에 불과해 보이기도 하다. 미안한 말이지만.


시장을 찾는 사람들의 연령대가 다양해 지고는 있고 시장의 모습도 꽤나 현대적으로 변했지만, 사람도 향기로 오래 기억되듯이 여전히 한약재냄새로 동네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고,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고 기억될,


그런 동네,

제기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