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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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런남자

어떤 동네들은 고유의 행정구역 이름 대신 다른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곤 한다. 강남역 일대는 서초동이지만 아무도 "오늘 서초동에서 만날까?"라고 하지 않는다. 그냥 그곳은 '강남역' 일 뿐이다. 오늘의 이 동네 역시 그런 '호부호형'의 대표적인 곳 중 하나이다. 이곳은 그저 '가로수길'이라고 통칭해서 부르며 아무도 그렇게 부르는 것에 이견을 달지 않는다. 무슨 동인지는 이곳에 사는 사람 혹은 이곳에서 일을 해서 정기적으로 택배 혹은 퀵을 보내야 하는 사람만 아는 정도인 그런 곳이며, 근처 지하철역 이름을 통해서 짐작 가능한 정도의 그런 곳이다.


이곳은 이름처럼 왕복 2차선 정도의 좁을 길을 중심으로 가로수들이 촘촘히 심어져 있다. 이 길을 중심으로 길가에 많은 상점들이 생겨났면서 한때 서울에서 가장 힙한 장소 중 하나였다. 주말이면 이 도로에 많은 차들로 가득했으며 이 도로가에 있는 테라스 커피집들엔 소위 본인을 뽐내고 알리고 싶은 사람들로 가득했었다. 이에 상권이 점점 커지면서 이 길을 중심으로 골목들이 개발이 되면서 하나의 거대한 상권으로 발전하였으며 아이러니하게도 '가로수길'은 세로로 뻗은 길임에도 정작 그 길을 중심으로 가로로 나있는 골목들을 '세로수길'로 부르게 되었다. 이곳이 한때 얼마나 힙한 곳이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단적인 예가 애플의 첫 공식 '애플스토어'를 이곳에 오픈한 것이다. 근데 당시에는 애플 스토어의 오픈이 이 동네에 얼마나 악영향을 주게 될지 아무도 짐작하지 못하였다.


코로나 전에는 많은 외국 관광객들이 찾던 곳이었다. 특히, 명동에 중국인 관광객들이 절대적으로 많다고 하면 이곳은 일본인 관광객들이 많았다. 물론, 물리적인 숫자로만 보면 어디나 중국인 관광객들이 가장 많지만 비율적으로 볼 때 그랬었다. 주변에 성형외과와 피부과 등이 많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동네에서 판매하는 제품들이나 제공하는 서비스들이 일본인에게 더 잘 맞았는지 이유는 정확하게 모르겠다. 그저 짐작만 해 볼 뿐. 그러던 중 코로나 팬데믹 기간을 맞으면서 전체적으로 상권이 쪼그라들었고-이곳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곳들이 비슷한 상황이었음-펜데믹이 끝난 상황임에도 예전의 모습을 복원하지 못하고 있다. 상권으로써 매력이 거의 사라져 버렸다. 안타깝게도.


이 글을 적기 위해 꽤 오랜만에 갔음에도 가로수길 주변의 상가의 공실은 여전히 많았으며 토요일 오전이었긴 했지만 유동인구도 거의 없었다. 팬데믹 동안 볼 수 없었던 외국 단체 관광객을 태우고 온 대형버스만 덩그러니 몇 대 서 있을 뿐. 한 때 가장 호황인 상권이 현재의 모습으로 된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비싼 임대료'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위에 언급한 애플스토어의 입점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금도 대단히 강력한 브랜드이지만 애플스토어가 입점할 당시의 애플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브랜드였다. 그에 걸맞은 계약조건으로 애플 스토어가 입점을 하였고 그 계약 조건은 꽤 많은 사람들이 알 정도로 언론에 보도가 되었다. 그러면서 가로수길의 건물주들이 약간은 허황(?)된 꿈을 꾸기 시작한 것 같다. 본인 건물 혹은 땅에도 그 정도 규모의 계약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꿈. 하지만 그 정도를 감당할 수 있는 그리고 오프라인 스토어가 필요한 소비재 기업은 이 세상에 그렇게 많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 꿈을 버리지 못하는 것 같다. 그렇게 조성된 임대료는 소규모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은 고사하고 중견 리테일 역시 버티지 못하는 수준이었고 그렇게 사람을 끌 수 있는 매력이 사라져 버리자 더 이상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곳이 되어 버렸다. 그와 반대의 생각으로 접근한 건물주들이 모여 있는 도산공원 일대가 다시금 부활한 것을 보면 더더욱 그 이유가 분명해 보인다. 근데 뭐 연예인 걱정과 건물주 걱정은 하는 게 아니라고 했으니 알아서들 하겠지만.


힙플레이스에도 흥망성쇠가 있다는 것을 직접 몸소 보여 주고 현재는 안타깝게도 '쇠'의 길을 걷고 있는,

하지만 과거에 '도산공원' 일대가 '쇠'의 길을 걷다가 다시 부활했듯이 여전히 가능성과 저력을 가지고 있는,


그런 동네,

신사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