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번째 억지
한국의 도로 위를 특히 서울의 도로 위를 달리는 차들을 보면 그들의 컬러가 크게 4종류로 구분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흰색, 은색, 검은색, 그리고 감귤색(?).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감귤색은 영업용 택시이다. 나머지 세 컬러는 일반 자가 승용차들이다. 유독 저 세 가지 컬러들의 차들이 주를 이룬다. 종종 진회색이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크게 저 세 가지 컬러들의 차를 한국사람들은 구매를 한다. 저 컬러의 자동차를 구매하는 각각의 이유들이 있겠지만 대부분은 중고차 가격 때문이다. 그 외에 세차에 대한 부분과 그냥 눈에 안 띄는 차를 타야 바람피우기 좋다는 어떤 아저씨의 말도 듣긴 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중고차 가격이다. 바꿔 말하면 저 세 가지 컬러가 자동차를 구매하고 몇 년 운행 후 중고차로 팔 때 가장 감가상각이 덜하기 때문이다. 즉, 다른 조건들이 동일할 경우 가장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자동차를 구매하고 몇 년 후 새 차로 바꾸면서 중고차로 본인의 차를 팔고 산다면 중고차의 가격은 대단히 중요한 요소이다. 따라서 그들의 선택이 대단히 합리적인 소비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자동차는 주택이나 토지 같은 부동산을 제외하고 동산들 중에선 가장 고가의 물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번 구매를 할 때 대단히 신중하게 고민을 하고 결정을 해야만 한다. 단순히 자동차의 디자인적인 부분이나 성능적인 부분만 고려해서 구매할 순 없는 노릇이다. 물론, 언제난 예외는 존재해서 그렇게 구매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이 글에서 굳이 고려해야 할 사람들은 아닌 것 같다. 오늘 제목을 '빨간색 차를 타는 사람'이라고 하긴 했지만 꼭 빨간색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흰색, 회색, 검은색을 제외한 나머지 컬러, 채도가 있는 컬러의 차를 타는 사람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1. 가장 빨리 출고돼서 샀다.
최근 들어 새로 출시하는 차 혹은 인기 차종의 경우 바로 구매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사전계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몇 개월을 길게는 1년 가까이 기다려야지만 구매한 차량을 인도받을 수 있기도 하다. 굳이 그렇게 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지만 밥 한 끼 혹은 커피 한잔을 마시기 위해서도 웨이팅을 하는 것을 보면 본인이 원하는 차를 사는 데 있어 기다리는 것은 어찌 보면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런 걸 못 견뎌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경우 종종 다른 사람들이 선호하지 않는 컬러는 구매하고 며칠 안에 인도받을 수 있는 경우가 있다. 근데 그 컬러가 정말 촌스러운 경우도 있지만 그다지 촌스럽지 않고 꽤 괜찮은 경우도 있다. 또한 빠른 시간 안에 차량이 필요한 경우라면 더더욱 그냥 구매를 하는 경우가 있다. 난 단지 저 차가 가지고 싶은 거지 그 차가 어떤 컬러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진 않은 것이다. 원하는 컬러인 게 가장 좋지만 아니어도 크게 상관은 없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 사람들은 그 차를 바로 구매하는 것이다. 그 컬러의 그 차가 아닌 단지 그 차.
#2. 본인의 개성을 드러낸다.
개성을 드러내고자 한다면 자동차만큼 본인의 개성을 드러내기 좋은 물건(?)도 없을 것이다. 일단 종류도 여러 가지이고, 완성차 브랜드도 다양하며, 컬러는 더 많다. 예를 들어 난 현재 차가 없지만 난 suv 보다는 세단을 선호한다. 그리고 아직 외제차를 살 형편은 안되지만 독일 3사 가운데는 M사를 가장 선호하고 요즘은 T사의 전기차도 눈여겨보고 있다. 그리고 국산차 중에는 한 가지 모델만 고려하고 있으며 선호하는 컬러는 다른 사람들은 이해 못하는 brown컬러를 선호한다. 난 그냥 그 컬러가 고급지고 맘에 든다. 이처럼 현재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던 그렇지 않던 본인이 선호하는 자동차가 있게 마련이며 더 나아가 본인이 꿈꾸는 드림카가 있는 경우도 꽤 있다. 남녀 불문하고. 이처럼 본인의 개성을 드러내기 좋은 자동차에서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컬러이다. 최근에 만났던 여성의 차 컬러가 빨간색이었다. 난 당연하게-강력한 선입견으로- 흰색 아니면 검은색 컬러 일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주차장에서 본 그녀의 자동차 컬러는 레드였고 난 의도치 않게 그녀에게 더 호감을 느끼게 되었었다. 다음번 만남에서 이 이야기를 하면서 왜 차 컬러를 레드로 했는지 물어봤더니 지금이 아니면 왠지 레드 컬러 자동차를 운전 못할 거 같다고. 맞는 말이기도 하고 조금은 서글픈 말이기도 했다. 이처럼 본인의 개성과 생각을 자동차의 컬러에 마음껏 드러내는 것이다.
#3. 편의에 의해서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을 수 있다. 하지만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아는 고통(?)이 있다. 그리고 난 직접 경험을 해 보았다. 내가 20대 시절 동생과 함께 타던 차가 한대 있었다. 그 당시에 20-30대 남자들이 굉장히 많이 타던 코란도 흰색이었다. 정말 많은 코란도 흰색이 도로 위를 누비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마침 그 당시 여자 친구와 잠실에 있는 공연장에서 공연을 보고 밥을 먹은 후 주차장에 내려왔을 때 멘붕에 빠졌다. 주차를 어디에다 해 준지 도통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 당시에는 주차장에 위치를 등록해 두는 키오스크도 없었고 난 리모트키도 아니던 시절이었다. 그냥 물리키를 가지고 다니던 시절이라서 더욱 난감했었다. 지금도 엄청 넓기로 유명한 그 놀이공원과 백화점과 대형마트가 함께 있는 그곳 맞다. 게다가 완전 여름은 아니었지만 지하주차장이 엄청 더웠던 것으로 기억하고 난 그날 당시 여자 친구에게 엄청 많은 욕을 먹었었다. 사진 찍어도라는 말을 무시한 대가는 실로 엄청났었다. 이처럼 각 등급별로 국민차로 불리는 차들이 있다. 그런 차들 중 하나를 구매했는데 색상마저 흰, 은, 검은색이라면. 지금은 워낙 시스템들이 잘 되어 있어서 그럴 일은 없지만 과거의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약간은 튀는 컬러의 차에 대한 편의는 잘 알 것이다.
과거의 채도가 있는 컬러의 국산차들은 촌스러웠다. 왠지 컬러의 채도가 밝지 않고 어둡거나 혹은 조금은 우울해 보이는 컬러들이었다. 당시에 한국 사람들이 그런 컬러를 좋아해서 그렇게 컬러를 뽑은 것은 아니다. 아직 차 외부에 칠하는 도료의 기술이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완성차 회사들에서 비용 절감의 이유로 충분한 도료를 도포하지 않은 경향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국내 업체에서 만들어 내는 도료의 컬러는 이제 어느 업체의 컬러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잘 나오고 있다. 완성차 회사들 역시 완성도 높은 성능과 더불어 디자인에까지 많은 공을 들이고 있어서 이젠 전혀 소위 말하는 독일 3사의 차들과 견주어 손색이 없다. 물론, 세부적인 부분에선 아직까진 부족한 부분들도 있지만 자동차 전문가가 아닌 내가 할 말은 아닌 거 같다. 기술의 발전과 완성차 업체의 디자인에 대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흰, 은, 검은색 차들을 선호하는 가격적인 부분 말고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컬러 자체의 촌스러움은 사라진 이 시점에도.
유럽 여행 중 로마에서 빨간색 페라리를 본 적이 있었다. 그냥 차 컬러 자체도 너무 이뻤지만 차와 도시와 어우러져 있는 컬러 역시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차의 컬러가 도시의 컬러와 꼴라보를 이루는 듯 한 느낌. 그에 비해 서울을 비롯한 한국의 대도시들의 컬러는 그냥 회색이 대부분이다. 어찌 보면 도시의 컬러가 회색인데 채도 있는 컬러의 차가 돌아다니는 것도 딱히 어울리진 않는 거 같기도 하다. 어찌 보면 어려서부터 회색으로 가득한 도시에서 자란 우리들은 컬러를 보는 관점 자체도 채색보다는 무채색에 더욱 길들여진 것은 아닌지라는 씁쓸한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