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한 번째 억지
며칠 전 커피집에서 커피를 마시던 중 옆 테이블의 20대들의 대화를 본의 아니게 엿듣게 되었다. 그들이 20대라는 건 그들의 대화에서 스스로 말했기 때문에 알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들 스스로를 늙었다고 표현하고 있었다. 이처럼 누가 봐도 '늙었다'라는 표현과는 어울리지 않는 20대 혹은 30대 초반들이 이런 표현을 스스럼없이 하는 것을 종종 들을 수 있다. 이것이 실제로 그들이 물리적인 나이가 많아서 쓰는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아니 너무 자주 그런 말을 들음으로 인해서 점점 실제로 늙어가고 있는 사람이 듣기에는 조금은 거슬리는 말이기도 하다. 그들 역시 시간이 지난 후 그런 표현을 썼던 그들의 20대를 돌아보게 되면 어이없는 웃음을 짓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건 먼 훗날의 이야기이고, 지금 당장 그들은 스스로가 직접 말하고 있듯이 늙었다고 느낀다. 그들에겐 과거보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보다 지금 오늘 내가 느끼는 감정이 더 중요하다. 현재 20대들인 90대 생들-소위 Z세대-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30대, 40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 역시 20대에 그런 생각을 해 봤던 적이 있기에 세대의 차이라고 보이진 않는다. 그렇다면 왜 누가 봐도 아직 어리고 청춘인 20대들이 스스로를 늙었다고 칭하는 걸까?
#1. 적당한 표현이 없다.
근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들이 어떤 의미로 '늙었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는지는 알 것도 같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단어 역시 마땅히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나이가 적은 사람들에게 쓰는 표현은 '어리다' '젊다'라는 표현이 있다. 둘의 사용함에 있어 그 기준이 나이는 아니지만 말이다. 나이가 좀 잇는 사람에게도 '젊게 산다'라는 표현을 쓰는 걸 보면 말이다. '젊다'의 대응어가 '늙었다' 라면 '어리다'의 적절한 대응어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20대 그리고 30대 초반은 물리적인 나이로만 보면 '어리다'라는 표현이 적합하다. '어리다'라는 표현이 숫자상 나이가 적다의 의미를 담고 있고 '젊다'라는 표현이 행동이나 생각의 나이가 적다의 의미를 담고 있는 표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숫자상의 나이와 행동, 생각의 나이가 많음을 의미하는 단어는 '늙었다' 하나뿐인 것 같다. 성숙하다? 노련하다? 등등 모든 표현들이 적확해 보이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숫자상의 나이가 적음에도 불구하고 '늙었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아닐지... 본인들의 상황을 표현할 정확한 단어가 없어서.
#2. 상대적으로 늙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가면서 살아가야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면서 그리고 긍정적인 영향을 주면서 살아도 시간이 부족한 삶이지만 그런 와중에 우리들은 그 없는 시간을 쪼개서 다른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면서 시간을 허비한다. 그렇다 보면 본인이 속해 있는 준거 집단내에서 나이가 다른 구성원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많게 되는 경우가 있다. 최근에는 그런 경향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예를 들어 대학교만 봐도 그러하다. 대학을 졸업을 하고 본인의 커리어를 위해서 다른 집단으로 갔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현재 속한 준거 집단-이 경우에는 대학-에 더 머물러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본인이 그 집단내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축에 속할 수밖에 없다. 그런 경향은 남자에 비해 여자들에게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23세의 같은 나이라도 4학년인 여자와 군대에서 갖 전역한 남자는 나이를 느끼는 무게감이 정말 다르다. 그리고 24세 4학년과 같은 나이의 회사 신입사원 역시 완전히 다르게 느끼게 된다. 또한 본인이 학교 내에 여학생들 중에서는 실제로 가장 '늙었을' 수 있다. 그럼 자기도 모르게 누군가와 이야기를 할 때 본인이 늙었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본인이 속한 집단에선 그러하니.
#3. 급격히 체력이 떨어졌다
20대에도 관리를 하지 않으면 체력이 떨어진다. 그것도 급격하게. 그리고 20대에는 본인의 체력을 과신하는 경향이 있어서 운동을 하던지 등의 체력관리를 위한 어떤 것도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나 역시 그랬었다. 그냥 동기들과 밤새 놀고도 반나절 정도 자고 일어나면 다시금 밤새 놀 수 있는 그런 체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체력이라고 하는 것은 올리기는 엄청 어렵지만 관리를 하지 않으면 떨어지는 건 순식간이다. 마치 금융거래를 할 때의 신용도처럼. 그렇게 본인의 체력은 과신한 체 20대 초반을 지냈던 사람들은 분명히 사람들마다 차이는 좀 있지만 20대 중반 혹은 후반에 본인의 체력이 대단히 많이 떨어졌음을 느끼는 시점이 있다. 계단을 조금만 올라도 너무 힘들다던지, 하루 정도 공부/일 혹은 놀면서 새고 나면 며칠 동안 거의 제정신이 아니라던지 등. 그럼 스스로 체력 관리에 소홀했다는 생각 대신에 본인도 이젠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을 하곤 한다. 그리곤 스스럼없이 '이젠 늙어서 밤도 못새~ 새고 나면 며칠 동안 죽을 거 같다.'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여러 매체를 통해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소개되고 하지만 정작 운동을 규칙적으로 꾸준히 하는 사람은 드물다. 멀리서 찾지 말고 스스로를, 혹은 주변 사람들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렇게 본인의 몸을 방치해서 체력이 떨어져 놓고선 늙었다고 말한다. 20대 중후반부터.
나이에 관해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있다. '나이는 세상 유일무이하게 아무런 노력 없이 그냥 먹는 것' 이는 말이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1년을 열심히 살아내고 한 살을 먹는다. 하지만 열심히 살아냈다고 해서 1살을 먹고 싶어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난 열심히 1년 동안 살았으니까 1살 먹어도 충분히 만족스러워'라고 말하는 사람도 거의 없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아무런 노력 없이 그냥 먹는 것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해 보인다. 본인들이 20대 중후반 혹은 30대 초반이어도 충분히 스스로가 늙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아무리 이야기해 봤자 여전히 특정 나이에 무언가를 하거나 이루어야지만 인정받는 분위기가 남아 있는 한국에서는. 2020년임에도 불구하고. 분명 그런 나이 기준에 본인이 충족을 못한 체 그 나이에 이르거나 지나치게 된다면 더욱 그런 생각과 감정이 들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생각에 스스로가 사로잡혀서 아무것도 안 하거나 못한다는 생각은 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나이를 거쳐온 아저씨로서 말하는 부탁 비슷한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