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두 번째 억지
오늘은 주제가 주제이다 보니 글을 시작하면서 강력하게 언급하고 들어가려고 한다. 난 잠수 타는 사람들, 특히, 연인 간의 헤어짐에 있어서 잠수 이별을 택하는 사람을 대단히 싫어한다. 어떤 이유로도 용납되어선 안 되는 이별 방법이라고 확신한다. 미리 언급을 해 두고 시작을 해도 영 개운치 않은 마음인 건 사실이다. 그럼 이 주제를 선택 안 하면 되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내가 직접 경험을 한적은 당한 적도 없지만 주변에서 종종 잠수 이별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하물며 그 빈도수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늘어나고 있는 거 같다는 생각마저 들고 있다. 급기야는-정말이지 나의 지인이었으면 엄청 때렸을법한- 잠수 이별을 당한 게 아니라 했다고 떳떳하게 말하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마저 누군가에게 들었다. 이 정도면 무슨 이별의 한 방법으로 자리매김하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마저 들고 있다. 물론 억지스러운 의견이다. 그래서 오늘은 어떠한 관계를 지속하다가-그것이 연애일 수도 있고, 그전에 알아가는 관계일 수도 있고- 그 관계를 마무리하는 방법(?)으로 그냥 연락은 안 하고 받지도 않는 '잠수' 이별을 선택하는 사람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혹자들은 알아가는 관계에서 더 이상 관계를 발전하고 싶지 않다면 그런 관계에선 그냥 연락에 응하지 않는 방법을 써도 된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난 이것 역시 대단히 비겁한 방법이라고 생각을 한다. 첫 만남 이후 연락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면 더더욱.
#1. 회피형 성향을 가지고 있다.
우리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싫은 거, 무서운 것, 그리고 어색한 상황을 피하고 싶어 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근데 공교롭게도 우리들은-한국인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그런 피하고 싶은 상황을 대단히 자주 마주치는 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무언가 집에서 잘못을 하면 그것을 숨기려고 급급하지 본인이 한 잘못을 부모에게 당당하게 이야기를 하고 그에 상응하는 혼남을 감수하지 않는다. 솔직히 어린 나이에 누가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학창 시절 학교에서 시험을 보고 성적표가 나오게 되면 꼭 그 성적표를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확인-대부분은 사인-을 받아서 오라고 했다. 성적이 잘 나와서 당당하게 보여주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다수는 그렇지가 않다. 혼이 나거나 잔소리를 듣거나 한바탕 난리가 난 이후에 비로소 사인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그 이후 남자들은 군대라는 곳에 가서 본의 아니게 상황을 모면하려는 법만 보고 배워 오는 것 같다. 일반화의 오류일 수 있겠지만, 그리고 2020년의 군대는 아닐 수도 있지만 내가 군생활을 하던 시절-벌써 20년 전-엔 무슨 사고라도 나면 우선 덮으려고 노력하고 그것이 불가능하면 그때부터 해결을 하고자 했었다. 이렇게 사람이 천성적으로 가지고 있는 피하려는 성향과 후천적으로 환경에서 학습된 회피형 성향이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나는 것 같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관계를 정리하는 자리는 어색하고 무거울 수밖에 없다. 그런 자리를 손쉽게 벗어나면서 관계도 정리할 수 있는 방법은 도망가는 것뿐이다. 그럼 그 자리에 어색하고 불편함을 최소한 피할 수 있으니. 양심의 가책은 있겠지만.
#2. 다른 의미의 '착한 사람'이다.
아직 상대방은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데 난 그렇지 않아서. 그런 상황에서 상대에게 이별의 말을 못 하는 것이다, 차마. 상대가 받을 상처를 생각한다는 말 같지도 않은 핑계를 대면서 상대방이 이별의 상처를 받는 것보다는 그냥 내가 저 사람 인생에서 사라져 주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는 말인지 방귀인지 알 수 없는 생각을 하고 소위 잠수를 타는 것이다. 하지만 관계가 끝나가는 시점에선 그 관계의 당사자들은 말하지 않아도 느낀다. 이 관계의 끈이 그리 오래가지 않아 끊어질 것이라는 것을. 이렇게 관계의 당사자 모두가 그런 시기를 인지하고 있다고 한다면 잠수 이별을 당한 측도 충격이 덜 할 수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충격이 덜 하다고 해서 충격이 없거나 상처가 없는 것은 아니다. 관계라고 하는 것은 경험치가 쌓이는 경험이라서 한 사람에게 대단히 안 좋은 경험치를 쌓게 해 준 가해자가 되는 것이다. 본인은 배려했다는 착각을 하면서.
#3. 관계를 가벼이.
과거에 비해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방법들이 많아졌고 다양해졌다. 만남의 방법과 수단이 다양해지고 쉬워졌다고 해서 관계의 무게 자체가 가벼워 지거나 쉬워지면 안 된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그건 나의 생각일 뿐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이 관계가 어떤 마무리를 해야 할 정도로 무겁지 않은 관계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그냥 연락을 안 하고 상대방도 안 하게 되면서 그 관계는 흐지부지 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정확하게 말해서 잠수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냥 어느 특정 시점부터 연락의 빈도수가 점점 줄어들고 답을 하는 것에 소홀해지면서 그냥 하루에도 수십 통의 톡과 문자를 보내던 사이에서 하루에 한두 번, 일주일에 한두 번 하는 사이가 되는 것이다. 이것 역시 대단히 슬픈 일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는 관계를 서로가 인정을 한다면 더더욱. 한때는 나름 연인처럼 보였던 사람들이라도 말이다.
난 여전히 연인관계에 이별을 말할 때는 얼굴을 마주 보고 직접 말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 사람이다. 그것이 상대에 대한 예의이고 우리가 함께 한 시간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물론 상대방이 그걸 원하지 않는 다면 전화로 할 순 있지만 문자로 혹은 톡으로 하는 경우는 지금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나라고 해서 그 자리를 도망가고 싶지 않고 피하고 싶지 않은 것은 절대 아니다. 정말이지 그 상황은 몇 번을 했음에도 절대 익숙해지지 않고 편해지지 않을 상황이라고 확신한다. 쉽게 확신하면 안 된다고 하지만 이건 해도 될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혹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 중 잠수 이별을 계획(?)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