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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브 마이 카

by 그런남자

난 영화를 볼 때, 아니 볼 영화를 고를 때 습관이 있다. 20대 시절부터 시작된 이 습관은 일종의 '있어 보이기 위함'에서 시작되었다. 그것은 영화의 밸런스를 맞춘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오락영화, 블럭버스터, 헐리우드 영화로 불리는 상업영화와 예술영화, 헐리우드에서 제작되지 않은 영화 등의 비상업적인 영화의 밸런스를 맞춰서 본다는 것이다. 이것은 나름의 취향의 밸런스를 맞춘다는 취지 아래 시작한 나의 20대의 치기 어린 생각에서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예술영화들을 보면서 졸기도 많이 했고 보고 나서 돈과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렇게 10여 년을 넘게 반강제로, 억지로 보다 보니 지금은 작은 영화들도 즐길 수 있는 나 나름의 취향과 기호와 기준이 생기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개봉편수가 현저하게 차이가 나기 때문에 1:1로 밸런스를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3편 정도 상업 영화를 봤으면 적어도 1편 정도는 좀 작은 영화를 보자고 현실적으로 타협을 하고 살면서 영화를 즐기고 있다. 이번에 본 영화는 작은 영화에 속한다. 어차피 이번 달엔 블럭버스터의 정점에 있는 '스파이더맨 노웨이 홈'과 '매트릭스 리저렉션'을 봤기에. 제목은 '드라이브 마이카' 이며 일본 영화다. 감독과 주연배우가 모두 일본 사람이지만 이 영화에는 중국인, 한국인 배우들도 여럿 등장한다. 아마도 이 영화가 2021년의 내가 본 마지막 영화가 될 것이고 한 해를 마무리 하기에 나에겐 만족스러운 영화였다. 게다가 내가 가장 애정 하는 '시네큐브'에서 봤기에. 언젠가 '시네큐브'에 대해 리뷰 하는 글도 적을 예정이다.


-overview-

이 영화는 '하루키 무라카미'의 동명 소설인 '드라이브 마이 카'라는 단편 소설이 원작이다. 이 단편 소설은 그의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의 한 꼭지이며 이 영화는 '드라이브 마이 카'를 중심으로 그 단편집에서 두 편의 단편 소설을 추가해서 각색한 영화이다. '드라이브 마이 카'가 영화의 중반부 내용이고 앞뒤로 두 편의 단편소설이 연결되어 있는 형태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의 구성 역시 조금은 특이하다. 영화가 시작되면 보게 되는 아니 봐야 하는 주연 배우들의 이름들과 감독의 이름, 그리고 제목의 크레디트가 영화가 시작한 지 50여분 지난 후에 나온다. 즉, 그 시점이 이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드라이브 마이 카'의 내용이 시작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이 영화의 주인공의 직업은 연극 연출자이자 배우이다. 그리고 영화 역시 연극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나오고 영화의 설정을 빌려서 만든 연극을 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그리고 실제로 영화의 중간중간 연극의 장면도 계속적으로 보이고 있다. 이런 남자 주인공과 함께 영화를 이끌어 가는 여자 주인공이 등장을 한다. 그리고 제목에서 보이듯이 그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의 차를 운전을 하게 된다. 그 둘은 공교롭게도 비슷한 아픔을 경험했고 그 아픔을 극복(?)한 방법도 비슷한 사람들이다.


-weakview-

연극적임 요소가 많아서 인지 대사량이 엄청 많다.

러닝타임이 좀 많이 길다. 179분

일본 영화 특유의 차분함이 있어서 누군가에겐 많이 지루할 수 있다.


-finalview-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주인공이 연출하고 직접 연기도 하는 연극의 새로움이다. 이 사람은 다국적 배우를 캐스팅해서 연극을 연출한다. 다국적 배우를 캐스팅하는 건 어찌 보면 전혀 새롭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다국적 배우들이 자기의 모국어로 연기를 펼친다. 한국 배우는 한국어로, 중국 배우는 중국어로, 필리핀 배우는 필리핀 언어로, 수어를 사용하는 청각 장애인 배우는 수어로. 그리고 연극무대 뒤편 화면에 일본어, 한국어 등 자막을 띄움을 인해서 배우들이 연기하고 있는 각자의 언어의 의미를 보여준다. 마치 우리가 외국영화를 볼 때 한국어 자막으로 그들의 대화 내용을 알듯이. 이렇게 연극을 연출하는 것은 연극 연습을 하는 동안 연출가인 주인공이 했던 말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두 배우의 리허설을 보고 "둘만의 무언가가 생겼다. 그리고 그것이 관객들에게도 전달이 되어야 한다."-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비슷한 의미임-라고 코멘트를 한다. 어찌 보면 연기는 배우의 버벌적인 부분과 넌버벌적인 부분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공감과 동의를 이끌어 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연극이라는 예술은 영화보다는 버벌적인 부분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럼 대사를 통해서 본인의 감정을 관객들에게 전달해야 하는데 외국어로 번역된 대사를 연기하는 것보다는 본인에게 가장 편한 모국어인 대사로 연기하는 것이 감정 전달에 훨씬 쉬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의 모국어로 직접 연기하게 디렉팅 하는 것이 아닐까? 이건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또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 누구나 과거의 아픔을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그 경중의 차이만 있을 뿐. 이 영화의 두 주인공 역시 그런 아픔을 가지고 살고 있다. 그리고 그런 아픔을 극복(?) 한 것처럼 살고 있다. 하지만 내가 위에서도 그리고 지금도 극복 뒤에?를 함께 적은 건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 부분은 영화를 보실 분들은 직접 마주해 보시길 바란다.


제목에서 알 수 있다시피 The Beatles의 동명의 노래에서 제목을 따 왔다. 이미 알려져 있는 대로 '하루키 무라카미'는 음악을 대단히 사랑하고 그중 재즈와 비틀스의 광팬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사실들만 알고 1주일 정도 남은 2021년을 정리하는 마음으로 영화 한 편을 보고자 한다면 볼만 한 영화이다. 3시간을 투자할 만큼. 적어도 나에겐, 그리고 누군가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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