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와 박쥐
나는 대한민국 평균보다는 책을 많이 읽는다. 하지만 대한민국 평균이 워낙 낮기 때문에 다독을 한다고 말하는 건 어불성설일 듯하다. 이런 나도 읽을 책을 고를 때 나름대로의 기준이 있다. 그중 하나가 '소설을 잘 읽지 않는다'이다. 이상하리 만큼 소설에는 손이 잘 안 갔다. 지금도 다른 장르에 비해서 소설의 비중이 극히 적다. 그렇게 소설을 읽는 비중이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하루키 무라카미'의 작품은 신작이 나올 때마다 읽었던 것 같다. 소설이든 비소설이든. 그러던 중 몇 년 전 내가 스스로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능력이 너무도 부족하다는 걸 깨닫고 그것을 극복해 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소설을 찾아서 읽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이미 알고 있었고 이미 너무도 유명한 작가였지만 단 한 번도 그 사람의 작품을 읽어 보진 않았던 '게이고 히가시노'의 작품을 읽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시작된 그의 작품 읽기는 올해 그의 데뷔(?) 35주년 작품인 오늘 소개할 '백조와 박쥐'까지 읽게 되었다.
히가시노의 작품을 읽어본 분들이라면 대부분의 그의 소설의 구성을 알 것이다. 소설의 극 초반에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살인 사건은 대부분 단발로 끝나지 않고 추가적인 연쇄살인으로 발생하게 된다. 소설 전체에 적어도 2번 이상의 살인사건이 등장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능력 있는 형사가 등장하게 된다. 그 형사가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것을 중심으로 그 살인의 배경이 우발적이었던, 사업상의 이권에 의해서 건, 과거 원한에 의해서던, 혹은 잘못된 애정의 표현이던. 대표적으로 '가가 형사 시리즈'가 그렇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그 구성에서 약간 벗어나 있다. 처음 시작은 비슷하다. 한건의 살인 사건이 발생을 하고 그 사건을 수사하던 형사가 정말 용의자처럼 보이지 않던 사람을 찾아내서 그의 자백을 받아내는 것으로 시작을 한다. 소설이 500p가 넘는데 100p 정도에서 사건이 해결된 거처럼 보인다. 왜냐면 용의자가 너무도 완벽한 자백을 했기 때문에. 더불어 공소시효가 끝났지만 과거에 다른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본인이라고 자백을 했기에. 하지만 이번 소설은 기존의 히가시노의 작품과는 약간 다른 구성으로 전개된다. 게다가 이번 작품에서는 형사의 능력도 빛을 발하지만 살인사건의 용의자와 피해자의 자식들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런 행동을 했을 리 없다는 강한 의구심에서 사건을 조사해 나가는 역할을 한다.
가독성이 좋음에도 불구하고 내용이 좀 길다.
등장인물이 너무 많이 나와서 이름이 헷갈린다.
기존의 구성을 좋아했던 독자라면 조금 낯설 수 있다.
과연 혼자서 이렇게 많은 작품을 생산해 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항상 드는 작가이다. 35년 동안 정말이지 공장에서 생산해 내 듯이 작품을 내놓고 있다. 아직 다 읽지도 못했는데 신간이 출간되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니 말이다. 하지만 계속 히가시노의 작품을 읽다 보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구성틀에 각기 다른 내용을 밀어 넣는 방식임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작품들의 내용들을 구성해 낸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능력임에 분명하다. 하루키도 대중에 노출을 극도로 꺼리긴 하지만 대충 어떤 형태로 작업을 하고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고, 백그라운드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려져 있다. 그건 그가 그의 작품에 그의 취향을 대단히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히가시노에 대해선 아직 많이 알려져 있지가 않다. 무려 데뷔한 지 35년이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 다작을 하는 추리소설 작가라는 거 이외에는. 나는 종종 주변 사람들과 '히가시노는 한 개인이 아닌 창작집단인 거 같다'라는 말을 종종 한다. 그건 그의 다작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이번 작품을 발표하고 인터뷰에서 '이번 작품을 뛰어넘는 작품을 쓰는 것이 앞으로의 목표'라고 밝힌 만큼 이번 작품에 대단히 공을 들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모 어떤 작품이라고 해서 공을 덜 들였거나 하진 않았겠지만. 기존의 구성 방식을 조금 바꾼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 다름이 느껴진다. 또한, 이번 작품에서는 인간의 더욱 미묘한 심리가 표현되었다는 점이 놀라운 점이기도 하다. 작품의 마지막에 밝혀지는 살인 용의자와 그의 살인 동기를 알게 되었을 때 약간의 허탈감도 있었지만 그것 역시 그의 또래의 심리가 반영되고 표현된 것이라고 느껴지는 순간 다시 한번 이 작가의 디테일에 놀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