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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런남자

나는 내 또래 들에 비해 자소설이라 불리는 것들과 반성문을 많이 쓴 편이다. 쓸 당시에는 그저 지겹고 작성에 대한 어떠한 당위성도 느끼지 못한 체 그냥 해야 하니까, 하라고 하니까 작성을 했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내가 글을 쓰는 습관을 만들어 준 계기와 나름의 글발(?)이라는 것이 생기는 가장 중요한 계기이자 동력이었던 것 같다. 그와 동시에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대단히 많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자소설의 항목들이라는 것이 대부분 뻔하다. 회사에 대한 부분들-지원동기, 직무에 대한 관심, 앞으로의 커리어의 목표-과 개인에 대한 부분들-장단점, 성공/실패 경험, 리더십 등-로 나뉘게 된다. 근데 자소설을 작성해 본 사람들은 특히, 한국사람들의 경우엔 회사에 대한 부분보다 개인 즉, 본인에 대한 부분을 작성하는데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 실례로 후배들에게 자주 취미 혹은 특기에 대한 내용을 뭘 적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나'는 '나'로 살고 있지만 '나'에 대해서 가장 잘 모르고 가장 소홀하건 아닌지라는 생각이 든다. 어디서 본 글 중 '나를 사랑하지 않고 남들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지독한 짝사랑'이란 '짝사랑'의 정의를 본 적이 있다. 정말 맞는 말이라고 생각이 된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본 것도 아닌, 경험한 것도 아닌, 가본 곳도 아닌 '나'에 대한 리뷰를 해 보도록 하겠다. 아래 내용은 2020년 8월에 작성한 '자기소개'를 기반으로 조금 더 업데이트한 내용이다.


-overview-

키큼, 어깨 넓음, 다리 긺, 하지만 돼지는 아님

운전을 잘함, 하지만 차는 없음

강남에 살지 않음, 하지만 강 건너자마자 있는 동네에 삶

강남을 싫어하진 않음, 하지만 강북을 훨씬 좋아함

나름 명문대 나왔음, 하지만 학점은 쓰레기임

대기업 안 다님, 하지만 다녔었고 다시 갈 생각 없음

여친바보임, 하지만 다른 건 똑똑한 편임

길을 매우 잘 앎, 하지만 지하에서 가끔 헤매기도 함

맛집을 많이 앎, 하지만 미식가는 아님

힙한 커피집을 많이 앎, 하지만 따아만 마심

나이 많음, 하지만 유부남이거나 돌싱 아님

주 5일 운동함, 하지만 몸을 만들 생각 없음

택시 거의 안 탐, 하지만 버스는 거의 매일 탐

영화 보는 거 좋아함, 하지만 한국영화는 안봄

여행을 좋아함, 하지만 여행을 도피라고 생각하지 않음

사진발 안 받음, 하지만 실물은 안경발임

전시회, 공연 가는 거 좋아함, 하지만 똥손에 음치임

담배는 안 핌, 하지만 가끔 시가는 태움

술은 거의 안 마심, 하지만 맥주 한두 잔, 위스키 한두 잔 마심

새로운 곳 가보는 거 좋아함, 하지만 모두 걸어서 감

제주도 별로 안 좋아함, 하지만 강원도는 좋아함

여름 싫어함, 하지만 겨울은 좋아함

카톡 안 함, 하지만 연락은 엄청 잘함

암기력은 별로임, 하지만 기억력은 엄청남

일을 열심히 하지 않음, 하지만 일을 잘함

허세 있음, 하지만 허영은 없음

자존감 높음, 하지만 자만심도 있음

성차별함, 남자를 하대함

백화점 가는 걸 좋아함, 하지만 미니멀리스트임


-finalview-

학부 졸업하고 지금은 말도 안 되게 큰 테크 공룡기업 하지만 당시엔 아직 한국 법인도 없던 곳과 job interview를 했었다. 그때 한 인터뷰어가 나에게 했던 마지막 질문이 나에겐 지금도 대단히 충격적이었다.


"본인이 좋아하는 것, 장점, 자랑하고 싶은 것이 뭐든 상관없으니 할 수 있는 한 많이 이야기해 보세요. 사소한 것도 상관없습니다."


난 그래도 일반 한국인들에 비해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비교적 많이 알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난 저 질문에 고작 10여 개 정도밖에 말을 하지 못했다. 나의 대답을 듣고 그 인터뷰가 나에게 말하길 '한국 지원자들이 다른 어떤 나라의 지원자들에 비해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한국 지원자들은 본인이 잘하는 거, 자랑하고 싶은 거를 믿기 어려울 정도로 모른다. 그게 참 안타깝다.'라고.

난 그 인터뷰를 통과하지 못했지만 그 이후로 나의 후배들에게 나 역시 같은 질문을 종종 한다. 그리고 답을 한번 찾아보라고. 그리고 너무 막연해서 잘 모르겠다는 묻는 이들에게 아래와 같은 답을 해 준다.


누군가 '오늘 뭐 먹을까?'라고 묻는 다면 정확하게 답을 해 보라고 '아무거나' 혹은 '너 먹고 싶은 거' 말고.


2022년이 시작한 지 20여 일이 지났지만 우리에겐 다시금 2022년을 시작할 명분이 있는 설날이 얼마 안 남았으니. 다시 한번 한해를 시작하는 마음으로 ‘나’를 들여다 보는 시간을 갖는 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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