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A

첫 번째 알바

by 애로

스무 살의 난 알바가 하고 싶었다. 알바가 이렇게 지긋지긋할 줄 몰랐던 시절의 이야기다. 수능이 끝난 나는 한 생과일주스 전문점 앞을 지나며 엄마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엄마, 나 알바해도 돼...?"

엄마의 반응은 할 테면 해보라는 식이었다. 아싸, 수능도 끝났겠다. 뭐라도 할라 치면 돈이 필요했고 무엇보다 일을 하고 있는 또래 알바생들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특히 카페가 그러했다. 카페 알바생들이 바 뒤편에서 유니폼을 맞춰 입고 음료를 척척 만들어내는 모습이 어린 마음에 정말 멋있어 보였던 것 같다. 내가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세계에서 어떠한 규칙이 착착 맞아떨어지는 것이... 너무나도 궁금했다. (그래, 지금 생각해보니 내 알바 역사의 가장 큰 문제이자 원동력은 호기심이었구나 싶다.) 그저 궁금했다. 그 뒤편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나도 알고 싶었다.


알바 허락을 받은 후, 나는 알바몬과 알바천국을 종일 뒤지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섰다. 가장 일을 해보고 싶던 카페에도 이곳저곳 여러 군데에 이력서를 넣었다. 그러나 대다수의 곳은 내가 이제 갓 스무 살이 되었고 경력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면 어째 반응이 영 좋지 않았다. 경력 무관이라는 말이 공고에 있었음에도! 말 끝을 흐리며 연락을 드린다는 문장을 마지막으로 그 어떤 연락도 오지 않았다. '경력이 없다고 일을 안 시켜주는데 어떻게 경력이 생겨?'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 발견한 카페 A. 집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카페였다. 경력 무관, 초보 환영. 떨리는 마음으로 문자를 보냈다. 오픈, 미들, 마감의 개념조차 없던 나는 일단 공고가 올라오자마자 시간대는 괘념치 않고 지원을 했는데, 내가 지원한 시간대는 마감이었다. 그게 뭐가 중요하리, 일단 나는 시켜만 주십시오-상태였다. 집이 가까우니 마감 시간이 늦어도 괜찮았다.




얼마 후 전화 한 통이 왔다. 면접을 보러 올 수 있냐는 전화였다. 되고 말고요! 이력서는 주야장천 넣었어도 막상 면접까지 오라고 불러준 곳은 많지 않았기에 너무나 반가웠다. 최대한 단정히 옷을 입고 매장을 찾아갔다. 쿨해 보이는 젊은 사장님이 면접을 보러 와있었다. 당장 내일부터 일을 할 수 있냐고 물으셨다. 네 네. 전부 다 가능합니다. 저도 빨리 하고 싶어요.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자신감에 가득 찬 목소리로 열심히 대답했다. 그렇게 나는 카페 A의 알바생이 되었다.


그렇다. 되었다. 그러나 나는 커피의 ㅋ자도 만들어 볼 수 없었다. 처음부터 음료 만드는 법을 알려주지는 않는다고 했다. 일단 매장을 쓸고 닦고, 진열대를 닦고 또 닦고, 유리창을 닦고, 설거지를 해야 했다. 가만히 있는 것은 눈치가 보였고, 그렇다고 해야 할 일이 딱 딱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애꿎은 행주를 들고 닦고 또 닦았다. 트레이를 주구장창 닦았던 것이 생각이 난다. 트레이만 닦지 말고 이곳저곳 좀 잘 닦으라던 매니저의 지적에 잔뜩 주눅 들었던 날이 떠오른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곳은 매장 화장실이 있던 곳이었다. 나는 마감이었기에 화장실 청소를 해야 했다. 처음부터 화장실 청소를 담당하지는 않았지만 화장실 쓰레기는 알바를 시작하자마자 비워야 했다. 제 방 쓰레기 하나 제대로 비워보지 않았던 나에게 화장실 청소는 그저 충격과 공포의 시간일 뿐이었다. 정말이지... 너무, 너무, 너무 더러웠다. 휴지로 아트를 해놓은 사람들이 매일같이 있었다.




일을 시키지 않으면 트레이만 주구장창 닦아 탑을 쌓는 내 모습이 답답했을 테다. 나는 지적을 자주 받는 편이었다. 첫 알바였으니까 그 정도면 나쁘지 않았다고 지금은 회고하지만 그때 당시엔 스스로가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자꾸 지적을 받으니 잔뜩 기가 죽었다. 그리고 지금의 나보다 어린 매니저가 있었는데, 매니저가 이것저것 자꾸 지적을 하자 나를 싫어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 더욱더 기가 죽은 채 일을 다니기 시작했다. 말수도 적고 사회성이 부족하던 때라, 싹싹하게 잘 지내보려는 생각조차 못했던 것 같다. 하루하루 시름시름 앓았다. 장문의 카톡으로 매니저님께 지레 죄송하다는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별 것도 아닌 일로 상처받고, 마음에 담아두었다. 그러다 어느 날 매니저가 말없이 일을 그만뒀다. 나는 그것마저도 내 탓인 듯 자책했다. 지나친 의식이었음을 지금은 안다. 하지만 그땐 그랬다.


그 와중에 나는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내가 다니는 곳을 소개해주어 함께 일을 하기 시작했다. 사장님께서는 싹싹하던 친구를 예뻐했다. 나는 조금 서툴렀다. 사장님은 나름 친근하게 대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근데 나는 떨어진 화살도 주워서 심장에 꽂는 스무 살이었다. 계속 상처받고 그 상처가 쌓이자 더 이상 일을 하는 것이 무리라고 생각되었다.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정을 내리는 것에 익숙했던 나는 그렇게 인생 첫 번째 알바를 그만두게 된다. 마음씨 좋은 사장님은 그만두고도 종종 놀러 오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정말 자주 짐을 싸서 그 카페에 가 시간을 보내다 왔다. 친구들이 A 카페 지박령이라고 놀릴 정도였다. 그곳에서 쓴 무수한 일기와 편지... 갈 곳이 없으면 하루 온종일 시간을 보냈던 카페 A. 지금은 사라져 버린 그리운 그곳을 추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