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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따비 Mar 22. 2017

09. '기록'에 대한 사소한 고찰

카메라 앱과 기록

빌리고 싶은 책이 있어 도서관 홈페이지에 들렀다.

검색을 하자 책의 정보가 나왔다.

망설임 없이, 모니터에 대고 사진을 찍었다.

책의 표지와 제목, 저자와 출판사, 청구기호까지 한 큐에 '내가 소장한 정보'가 됐다.

그러고 도서관을 찾았고, 책을 찾자마자 사진은 삭제했다.


자잘한 정보를 적어두려 종이로 된 메모장을 꺼내는 일보다, 휴대폰을 들이대는 게 더 편해진 삶. 이런 방식이 그리 오래되진 않은 것 같은데 나는 놀랄 만치 이에 익숙하다. 어쩐지 한참 전에 사둔 예쁜 포스트잇이 줄지를 않더랬다. 휴대폰이 아닌, 굳이 여기에 적어둬야 할 것이 무엇인지 이제는 모르겠다.



#


'포착하다'의 의미 중 하나는 '기록하다'일 것이다. 눈 앞의 장면을 한 장의 사진으로 남기는 것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생생한 기록이 된다. 그런데 이제는 '포착하다'는 곧 '기록하다'를 의미한다. 반대로 '기록하다'는 우리의 생활습관에 비춰 '포착'하는 행위와 다름없게 되었다. 이전에 '기록하다'엔 연필로 끄적거림, 키보드로 두드리기 등도 포함되었을 테다. 하지만 적어도 현재 내 삶의 많은 부분들에서 기록 행위의 대부분은 사진 찍기로 대체되어 있다.


단연 첫번째는 간편함 때문이다. 메모장과 연필을 꺼내는 그 사소한 행동이 번거롭게 되어버렸다. 직접 메모를 하는 것은 생각보다 더 귀찮다. 때에 따라선 메모 내용에 맞는 적절한 크기, 재질의 용지를 찾아야 하기도 한다. 내 필체가 맘에 안 들 수도 있고, 적다 보니 공간이 모자라기도 한다. 무엇보다 몇 글자 안 되는 걸 '쓰는' 것도 시간이 걸리는 거다. 예전엔 그래도 스마트폰 메모장에 입력했던 것 같지만 이제는 카메라 앱에 주도권을 뺏겼다. 항시 내 옆에 놓여 있는 폰을 들고, 켜고, 앱을 누르고, 찰칵- 찍으면 그만이다. 어쩔 땐 급하게 다시 그 메모(사진)를 봐야 하는데 앨범 저 멀리 어딘가에 있어 찾아야 하거나, 심지어 폰을 껴는 그마저도 번거롭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렇게 서술하고 보니, 나 좀 심각하다. 귀찮은 건 건너뛰고 빨리빨리.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는 끝없는 욕심이 바람직한 건가 싶기도 하다.


생각을 넓혀보면 꼭 간편함과 신속함 때문만은 아니다. 폰으로 사진을 찍어두면 공유가 가능하고 원하는 용도에 따라 폰 안에 정리해두기도 편하다. 이 기기 하나에 필요한 정보들을 오롯이 모아둔다는 장점도 있다. 아날로그 메모의 장점들은 잃었지만, 새롭게 창출된 가치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나는 생활 속에서 그것들을 편리하게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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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나의 하루 중 이런저런 조각들이 대부분 스크린 형태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은 곱씹어볼 만하다. 이 순간 미래를 다룬 SF 영화의 몇몇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그 영화들은 미래 세계의 거대함을 강조하고 장황한 담론을 펼치지만, 내 삶이 달라진 지점들은 사실 매우 사소한 데서부터 일어나고 경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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