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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희 Mar 31. 2022

동생 결혼식

우리가 가장 방황하고, 치열했던 시절의 마감

"하루에 두 번 전화하는 건 투마치 지?”

"응. 작작해."

"아 잠깐만, 그래서 내 속눈썹. 나 이거 처음 한 거야. 어때?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예쁘네. 한 게 훨씬 낫다. 나 이제 남편이랑 밥 먹어야 해~ 끊어~"

"어 그래. 둘이 좋은 시간 보내~"


나쁜 년. 누가 T (MBTI의 'T') 아니랄까 봐, 할 말만 하고 딱 끊냐. 난 더 얘기하고 싶었는데..


'카톡'  


가족들 단톡방에 도착한 메시지였다.

방금 전까지 밥 먹어야 한다며 끊겠다던, 여동생 진희였다.


'우리 웨딩 사진 이제 나왔어!' 라며 사진을 몇 장 보내왔다.


카톡을 열어보니, 4개월 전 진희의 결혼식에서 찍은 가족사진들이었다.


눈에 띄게 활짝 웃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나는 무슨 작정이라도 한 사람처럼 입이 귀에 걸려서 찍혀있는 모든 사진에 환하게 웃고 있었다.


우리 가족들은 대체로 표정이 사실 그렇게 밝은 편은 아니다. 대체로 좀 쑥스러워하고, 대체로 사진 찍는걸 어색해한 달까.  긴장한 신부와 대체로 쑥스러워하고 있는 가족 모두가 있는 단체 샷에서 내 이빨이 제일 많이 보였다.


그림: A Dance by 연여인 작가


나는 정말로 신이 나있었다.

진희가 가장 원했던 일이었으니까, 가정을 꾸리는 일.


'며칠 전만 해도 울고 불고 난리였으면서, 애썼다.' 사진을 보면서 생각했다. 결혼 준비한다고 진희는 우울할 겨를도 없어 보였는데, 내가 결혼하는 것도 아니면서 메리지 블루는 내가 다 겪었다.


친척들이 왜 동생을 먼저 시집보내느냐는 너스레 같은 잔소리 때문은 아니었다 (사실 동생이 결혼 소식을 알리고 난 다음부터 온갖 관심이 쏟아져서 조금 짜증이 나기는 했다).


진희의 결혼식이 있기 전, 정확히는 진희가 남편과 먼저 살기 위해서 같이 살던 집에서 나온 후부터 나는 사무치는 외로움에 시달렸다. 진희와 내가 함께 동거 동락하면서 보냈던 시절을 마감했다는— 상실감 때문이었다.


나와 진희는 세 살 터울 자매다. 진희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오면서 우리는 공덕에 오피스텔을 얻어 같이 살게 되었는데, 그때 내가 가위바위보를 져서 복층에서 지내게 됐다. 그렇게 우리는 삼 년을 부모님과 떨어져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을 같이 보냈다.


물론 누가 설거지를 안 했네, 쓰레기를 안 치웠네, 옷을 훔쳐 입었네 등으로 사사건건 개같이 싸울 때가 종종 있었지만, 누구보다도 서로를 의지했던 시절이었다.


"엄마, 나 더 이상 같이 못 살겠어. 혼자 살 거야. 쟤 좀 경찰에 신고해"라면서 생쇼를 했다가도, 어디서 남자한테 차여서 오면 "아 그 상놈 새끼 데리고 와. 어디서 감히 내 동생을 울려"하며 본인이 더 격분해서 서로를 위로해 주기도 했다.


맥도널드 감자튀김에 맞아 보기도 하고, 성질을 못 참고 집을 나간 적도 있었는데, 동생이 짐을 뺀 뒤로는 한 동안 혼자 있는 오피스텔에서 잠이 잘 오지 않았다.


'그래도 진희랑 놀 때가 제일 재밌었는데....'

퇴근하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간판이 위아래로 뒤집혀있는 감자탕집을 보고 같이 해장하고 집에 돌아오던 날들이 생각이 났다.


그렇게 동생의 빈자리가 도통 낯설고, 오늘 하루 힘들었다고 칭얼 될 수 있는 대상이 더 이상 없다는 걸 실감하게 되었을 즈음 나는 다시 부모님 집으로 들어가게 됐다.


사사로운 이야기들을 매일 저녁 (편의점) 와인 한 잔에 기울고 내일이 좀 더 늦게 오기를(때로는 오지 않기를) 바라던 시절들이 이제 지났다는 걸 받아들이게 될 때 즈음 나는 금은 더 성숙해졌던 것 같다.


15년 만에 다시 들어온 부모님의 집에서는 나는 보살핌을 받은 철부지 딸이 아닌, 나이 든 부모님을 돌봐야 할 삼십 대가 된 나이 든 딸이 되어있었다.


그림: NIGHTMARE by 연여인 작가


진희가 결혼하는 것과 동시에 나는 조금 철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내가 철이 들기 위해서 진희가 먼저 결혼을 하게 된 건가.


진희가 보내 준 사진들을 다운로드 해서 핸드폰 앨범에 저장했다.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골라 조금 더(?) 마음에 들게 필터를 입히고, 얼굴을 조금만(?) 다듬어서 카톡 대문에 걸었다. 엄마랑 내가 두 손으로 진희의 손을 꼭 붙잡고 양 옆으로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정신 못 차리고 울고불고 있으면 착한 년보다는 나쁜 년 이 되는 게 나은 세상이라며 나를 호되게 가르쳤던 진희. 밖에서 실컷 놀다가 감자탕에 꼭 해장을 하고 같이 집에 들어갔던 진희. 내가 만난 모든 남자들을 기억하고 같이 욕해줬던 진희. 엄마랑 아빠 둘 다 이해가 안 된다며 같이 맞장구치던 진희.


우리가 가장 방황하고, 치열했던 시절을 기억하고 싶은 추억들로 만들어 준 진희는, 이제 더 이상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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