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위로

당신도 억울했던 적이 있나요?

by 도진

그날은 그저 평범하게 흘러가던 하루였다. 별일 없이 지나갈 줄 알았는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순식간에 말도 안 되는 상황에 휘말렸다. 억울함이 뜨거운 파도처럼 밀려와 목까지 차올랐다. 무언가가 가슴을 짓누르는 듯 답답했고, 목이 메어 숨이 막혔다. 머릿속은 뒤엉켰고, 온몸이 긴장으로 굳어졌다. 마치 저격 대기 상태. 내 몸의 모든 신경이 곤두서고, 근육 하나하나가 경계태세를 갖춘 듯했다. 심장은 전투를 앞둔 병사처럼 요동쳤다. 미친 듯이 억울함을 토해내고 싶었다. 억울하다고, 부당하다고, 누군가 내 진심을 알아줘야 한다고. 하지만 그럴수록, 내 억울함은 더욱 선명해졌다. 감정은 멈추지 않고 회전하며 더 깊은 곳으로 나를 끌고 갔다. 탈출구 없이 끝없이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왜 하필 나야?’ ‘내가 도대체 뭘 잘못한 거지?’ 분노와 답답함이 뒤엉켜 목 끝까지 차올랐다. 터질 듯한 감정을 억누르려 애쓰는데, 그 순간 한 문장이 머릿속을 정통으로 꿰뚫었다. ‘아, 나 지금 억울하다.‘ 마치 과녁 한가운데 꽂힌 화살처럼, 그 문장이 내 감정을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했다. ’이 감정을 그냥 이대로 둘 것인가?‘ 그렇게 나는 두 가지 방법을 떠올렸다.


첫 번째 방법: 억울함은 어디에서 왔는가.

억울함은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침해당했을 때 오는 감정이다. ‘그럼 나는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일까?’ 직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억울한 감정을 느꼈다면 나는 정당한 평가와 공정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일 것이다. 가까운 사람이 내 진심을 몰라줘서 억울하다면 나는 진정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억울함은 나를 괴롭히는 감정이 아니라, 내가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인지 알려주는 감정이었다.


두 번째 방법: 마법의 주문을 외운다.

‘내가 뭐라고.’ ‘내 탓이지.‘ 이 주문을 속으로 되뇌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가라앉았다. 억울함이 조금씩 희미해졌다. 언제 이 주문을 외치는가?

• 기분이 이유 없이 우울할 때

• 나의 진심이 부정당할 때

• 가족 또는 친구와의 대화가 어려울 때

• 직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 사랑하는 이와 가슴 아픈 이별을 했을 때

세상이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나는 이 주문을 떠올리며 한 걸음 물러선다. 이 말이 내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이 주문은 마법이 아니라, 저주가 되어버린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이 말을 더 나은 뒷말과 함께 써야 한다. 예를 들어, “내가 뭐라고… 난 아무것도 아니야. 난 쓸모없는 사람이야.” 이렇게 말하면, 억울함은 곧 자기 연민과 자기 비하로 바뀌어 나 자신을 갉아먹는다. 이렇게 바꿔보는 것이다. “내가 뭐라고… 내가 나를 돌보지 못한 탓이지. 그러니 남에게도 허점을 보였겠지. 내가 더 단단해지려면, 이제 무엇부터 해야 하지?” 첫 번째 문장은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말이고, 두 번째 문장은 겸허함과 내려놓음의 태도를 가지면서도,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찾는 말이다. 이 작은 차이가, 내가 감정의 늪에 빠질 것인지, 아니면 다시 앞으로 나아갈 것인지를 결정짓는다. 감정을 다스린 후, 결국 중요한 건 행동이다. 억울함을 가라앉혔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억울한 감정에서 벗어났다면, 이제 앞으로 나아갈 시간이다. 내 삶을 더 좋은 방향으로 움직이기 위해, 작은 한 걸음이라도 내디뎌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맞는 방법은 아니다. 모든 사람은 체질이 다르다. 누군가는 이 방법이 위로가 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전혀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는 게 더 힘들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도 맞는 말이다. 이 방법을 모두가 사용해야 한다고 강요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이 말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정말 억울하고 답답한 순간, 누군가가 이 글을 떠올리고 그 순간을 조금이라도 버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결국 모든 것은 선택이다. 억울한 일이 생겼을 때, 나는 두 가지 선택지를 가진다. 세상을 탓하고, 내 불행을 곱씹으며 감정의 늪으로 빠질 것인가? 아니면, 이 상황을 통해 내가 배울 점을 찾고 더 성장할 것인가? 결국 삶은, 끊임없이 나에게 묻고 있다. “어떤 태도로 살아갈 것인가? “ 나는 여전히 억울한 일들을 겪을 것이다. 세상이 나를 억까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면, 내 감정도, 내 억울함도, 그리고 내 삶도 조금 더 선명해진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억울한 일이 억울하지 않게 되며, 괴로움에서 벗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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