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놓아준 자리에서 다시 피어난 감정
부는 바람이 옷 사이로 한기를 스며들게 하던 날, 나는 짐을 싸들고 절로 향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어린 시절 소풍처럼 따라갔던 절은 내게 또 하나의 집 같은 곳이었다. 향 냄새가 스며든 법당, 발끝으로 전해지던 낡은 돌계단의 표면, 스님의 낮은 염불 소리까지. 오랜 세월이 켜켜이 쌓인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아주 오랜만에 안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오랜만에 뵌 스님은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셨다. 처음엔 의젓한 척하고 싶었다. 스님 앞에서 괜찮은 어른처럼 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도 금세 무너졌다. “저… 이렇게나 힘들었어요, 스님. 정말 열심히 살았고, 나름대로 노력도 많이 했고, 하루에 네 시간씩 자며 미친 듯이 일했어요. 정신과 선생님은 그런 생활이면 공황장애가 안 오는 게 이상하다고 하셨고… 정말 중요한 것들을, 전 놓칠 수밖에 없었어요.” 스님은 함께 눈물을 흘리며, 조용히 말씀하셨다. “… 고생 많았어. 정말 고생했어.”
그 말 한마디가 내 안의 무너진 집 한 채를 다시 지붕 얹는 듯했다. 울음은 무너짐이 아니라 돌아옴이었다. 나는 그 순간, 나를 한 번도 쉬게 해주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법당 앞에 앉으면 스님의 독경, 누군가의 기도,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까지 온몸으로 스며들었다. 처음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조차 없었다. 고요함마저 낯설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내 안에 고여 있던 감정들이 천천히 부유하기 시작했다. 잊은 줄 알았던 마음들이, 바람 따라 하나둘 떠올랐다.
나는 걷고, 앉고, 숨 쉬었다. 수행자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소임도, 계획도, 목표도 없이 보내는 시간은 허공에 흩어지는 것 같지 않았다. 산길을 따라 걷다가 멈춰 서고, 먼 산을 바라보고, 스님의 발소리에 고개를 숙이는 그저 그런 하루들이 내게는 충분했다. 자연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잘못을 했는지, 얼마나 아팠는지를 따지지 않았다. 그것이 나를 조용히, 온전히 편안하게 했다.
하루는 새벽 예불을 마치고 관음전 앞에 앉아 있었을 때였다. 삼배를 하고 일어서려는 순간, 마음 한쪽이 툭,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눈물이 나올 줄 몰랐는데, 왈칵 쏟아졌다. 무릎이 바닥을 짚었고, 고개는 힘없이 숙여졌다. 누구를 향한 눈물도 아니고, 누구에게 보이고 싶은 눈물도 아니었다. 그저 나에게로부터 흘러나온 오래된 기도 같은 것이었다. 조용하고, 깊고, 아무 이유 없이 다정했다. 감사하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절에 머무는 동안 나는 계속해서 나를 바라보았다. 내 안의 반응들, 트리거들, 불쑥 올라오는 서운함과 예민함들. 그것들이 지금 여기에서 온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래된 기억 속에서부터 온 것이었음을 나는 조금씩 알게 되었다. 가족의 역사, 부모의 말투, 지나온 인연 속에서 나도 모르게 습득된 방식들. 나는 참 미성숙했던 아이였고, 여전히 서툰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인정은 자책이 아니었다. 다만 하나의 사실처럼, 조용히 받아들여졌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서는, 내가 왜 그런 방식으로 사랑하고, 상처받고, 화내고, 숨는지를 먼저 알아야 했다. 절에서는 매 순간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왜 여전히 누군가의 말에 쉽게 무너지는지, 왜 타인의 인정에 흔들리는지, 왜 혼자 남겨지면 견딜 수 없는 불안을 느끼는지. 그 질문들은 때로는 지독히 외롭고, 때로는 따뜻하게 나를 안아주었다.
어느 날,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떠오른 한 스님의 말씀이 마음에 깊게 남았다. “불성에는 병이 없다.” 처음엔 반감이 들기도 했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까지 경험한 이 모든 고통은, 내 불성의 결함이 아니라는 말일까. 하지만 곧 이해했다. 서울로 가는 길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듯, 그 말에 도달하기 위해 나는 아주 많은 길을 돌아야 했다는 것을. 어린 시절의 상처를 돌아보고, 가족을 이해하고, 나를 용서하는 그 지난한 길조차도 결국은 ‘병 없는 불성’을 향해 가는 순례였다는 것을.
행복이라는 감정은 그렇게 나를 찾아왔다. 화려하게 등장한 것도, 뭔가 큰 성취 뒤에 온 것도 아니었다. 그냥, 밥을 먹을 때 밥맛이 느껴지는 것. 새벽 공기가 상쾌하다는 걸 아는 것.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놓이고, 물을 마시며 아무 걱정이 들지 않는 순간. 그런 아주 조용하고 작은 순간들이 모여 어느새 내 곁에 앉아 있었다.
그 행복은 불안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가져갈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고, 누군가가 나에게 줘야만 생겨나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나를 잘 돌보고 있을 때, 조용히 내 어깨에 기대앉는 친구 같았다. 이젠 그 친구의 발소리를 알아차릴 수 있다. 바람 사이로, 빛 사이로, 숨 사이로 스며드는 따뜻한 존재.
나는 여전히 완벽하지 않다. 여전히 흔들리고, 때로는 이유 없이 우울해지고, 어떤 날은 그 모든 성찰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것 역시 인간이라는 삶의 일부라는 것을. 절에 머무는 동안 나는 그런 나를 더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무언가를 잘해서가 아니라, 무언가를 해내지 않아도 괜찮다고 느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행복이라는 감정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맞이할 준비가 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 감정은 언젠가 다시 떠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감정은 다시 올 것이고, 나는 다시 그 자리에 앉아 있을 것이다.
절에서의 마지막 날, 짐을 싸고 삼배를 올리며 나는 낯설도록 단정한 마음을 느꼈다. 무언가 채워지거나 이루어진 게 아닌데도, 이상하리만치 고요하고 온전했다. 그리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내가 오늘 하루를 살아가기에 충분하다는 확신처럼 느껴졌다.
행복이란 감정은 그렇게, 아주 조용히 내 안에 자리를 잡았다. 마치 원래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