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이 아니라 ‘회복’이라는 단어에 더 가까웠다.
상담실의 공기는 언제나 잔잔한 호수 같다. 마음이 출렁이더라도, 이곳에만 들어오면 파동이 금세 가라앉는다. 벽에 걸린 풍경화, 푹신한 의자, 무릎 위에 올려둔 손. 이 작은 공간이 주는 위로는, 누군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아주 단순한 사실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상담사님, 저 많이 괜찮아졌어요.” 나는 말했다. 말이 끝나자마자, 눈이 조금 뜨거워졌다. “예전에 제가 선생님께 ‘저 괜찮은 사람 맞냐고’ 물었었잖아요. 그땐 그 말을 꼭 누군가에게 확인받고 싶었는데… 요즘은요, 그냥 제가 저한테 그 말을 해요. 하루에 한 번쯤은, 내 감정들 이야기 잘 들어줬다고. 나, 잘 살고 있다고.”
상담사는 미소 지었다. 그런 표정은 이상하게도 나를 울컥하게 한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얼굴. 나는 말을 이었다. “요즘은 새로운 감정들도 만나고 있어요. 서운함, 무력감, 억울함… 그 친구들에겐 조금씩 작별인사도 했고요. 이제는 평온함, 따뜻함, 그런 감정들과도 인사를 나누고 있어요.”
“아버지랑 어머니랑도 대화를 많이 나눴어요.” 상담사의 눈빛이 환해졌다. “아빠는요, 제가 상담받는 걸 아직도 조금 두려워하세요. 말로는 괜찮다 하시지만, 속으로는 무서우신 것 같아요. 자신은 정말 최선을 다해 우리를 키웠는데, 제가 상담을 받다 보니 원망하게 될까 봐, 아빠로서 평가를 받을까 봐 두려우신 거겠죠.”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 “예전 같았으면 저도 화를 냈을 거예요. ‘왜 또 내 감정보다 본인의 입장만 생각하세요?’ 하고. 그런데 지금은… 이상하게도, 아빠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 시대를 살아낸 한 사람으로서, 또 사랑을 주는 방식이 어설펐던 한 사람으로서.”
그래서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빠, 나는 상담을 받으면서 엄마 아빠를 원망하려는 게 아니야. 엄마 아빠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나는 그냥… 나를 이해하고 싶어. 그리고 엄마 아빠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내가 억눌렸던 건, 누군가를 탓하고 싶은 문제가 아니라, 소통 방식이 달랐기 때문이야. 사랑은 분명히 있었는데, 나는 그걸 느끼지 못한 채 자랐고, 그게 나를 아프게 했던 거야.
아빠는 말이 없었다. 그 침묵은 처음엔 무서웠지만, 이번엔 달랐다. 기다렸다. 그리고 아빠는 말하셨다.
“그래, 받고 싶을 때까지 받아라.”
그 한 마디에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나를 이해받았다는 느낌보다는, 아빠가 스스로에게 내린 허락 같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내 이야기를. 그게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나를 이해하고, 또 누군가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안다.
“그래서 말인데요, 선생님. 당분간 상담을 좀 쉬어볼까 해요. 절에 며칠 다녀오고 싶어요. 언제가 될진 모르겠어요. 그냥, 자연에서 쉬고 싶어요.”
“그럼요.” 상담사는 부드럽게 말했다. “당연히 다녀오셔야죠. 가셔서 지금처럼 살아온 중간중간의 장면들을 떠올리며, 감정과 신체감각을 천천히 관찰하세요. 그 상황에서의 욕구를 보세요. 좌절된 욕구는 당신 안에 무엇이 중요한지를 말해줄 테니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를 떠난다는 것은, 언제나 두려움과 설렘을 동시에 데려온다. 하지만 이번에는 도망이 아니다. 멀어짐이 아니라, 잠시 쉬어가는 것이다. 누구도 따라오지 않는 시간 속에서, 나는 내가 놓쳤던 나와 마주 앉아 이야기하고 싶다.
거기에서 나는 또 어떤 감정을 만날까.
어쩌면 이번엔 아주 낯설지만 따뜻한 감정이
조용히 내 손을 잡고 말을 걸어올지도 모른다.
나는 참 많은 말을 해왔다.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해, 다독이기 위해, 웃게 만들기 위해. “괜찮아질 거야.” “너는 잘하고 있어.” “그럴 수 있지.” 수없이 많은 말들을 건넸지만, 정작 그 모든 말은 나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나에게 냉정했다. 실수를 하면 질책했고, 힘들어하면 왜 이 정도도 못 견디냐며 스스로를 다그쳤다. 그렇게 매일 조금씩 나를 지워갔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누구도 아닌 그냥 나로 존재하고 있구나.’ 일도 아니고, 관계도 아니고, 평가도 아닌 순간. 아무 역할도 이름도 없이 내가 걷고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뭉클했다. 누구에게 보여줄 것도 아닌 이 시간에 나는 나와 함께 걷고 있었다.
그때 처음, 아주 조용한 감정 하나가 내 옆에 앉는 걸 느꼈다. 그 존재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무척 오래전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그가 내게 말을 걸었다.
“나는 자존감이야.”
나는 그 존재를 바라보았다. 낯설면서도 익숙한 얼굴이었다. 내가 한 번도 제대로 바라본 적 없던 감정. 자존감은 내게 조용히 말했다.
“나는 네가 뭔가를 잘 해냈을 때만 자라는 감정이 아니야. 누군가가 널 인정해 줄 때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너는 그냥,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괜찮은 존재야.”
그 말은 낮고 단단한 파동처럼 내 안에 퍼졌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나를 믿어줄수록, 나는 조금씩 더 가까워질 거야.”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알았다. 내가 나를 믿어주는 그 순간부터, 누군가에게 인정받지 않아도 나는 조금씩 편안해질 수 있다는 걸. 잘 해내지 못해도 괜찮고, 오늘 하루를 그저 살아낸 것만으로도 괜찮다는 말이, 처음으로 나를 위로해 주었다.
오랜 시간 나는 나를 꾸역꾸역 일으켜 세우며 살아왔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고, 그러지 못하면 존재의 의미마저 지워지는 것 같아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늘 엄격했다. 혼자 울고 있는 날에도 “이 정도는 약한 거야”라고 말했고, 조용히 무너지는 날에도 “이것도 못 견디면 넌 아무것도 못 해”라며 채근했다.
그런 나에게 처음으로, 한 마디를 건넬 수 있었다.
‘그냥 있어줘서 고마워.’
이 말이 아주 오래된 상처를 천천히 덮는 듯한 느낌이었다. 뭔가를 해내지 않아도, 사랑받지 않아도,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이 처음 찾아왔다. 그건 해방이 아니라 ‘회복’이라는 단어에 더 가까웠다. 잃어버렸던 숨을 다시 돌려받는 듯한 감각. 한참을 그렇게 조용히 나를 바라보다가, 나는 조금 더 내 안을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나는 아직 완전히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때로는 미워하고, 자책하고, 기대에 못 미칠까 봐 불안해하고, 의미 없는 하루에 허탈함을 느낀다. 그렇지만 그런 나를 더는 내치지 않기로 했다. 조금 서툴고, 많이 흔들리지만, 그런 나를 바라봐주는 하루하루가 모여 언젠가는 사랑이 될 거라 믿는다.
그리고 그건 아마, ‘행복’이라는 이름의 감정과도 닿아 있을 것이다.
아직 그 감정과 만나진 않았지만, 나는 안다.
지금 아주 멀지 않은 곳에서,
내 안의 ‘행복’이 조용히 다가오고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