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으로는 미움을 이길 수 없기에
내 안에 ‘용서’라는 감정은 정말 최근에서야 싹트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아버지께서 건네주신 책, 『달라이 라마의 용서』였다. 처음엔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아직 누군가를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나 자신도, 타인도.
하지만 책장을 넘기던 어느 날, 문장 하나가 마음 깊은 곳을 조용히 두드렸다. “만일 나를 고통스럽게 만든 사람에게 미움이나 나쁜 감정을 품는다면, 그것은 나 자신의 평화만을 해치는 일이다. 그러나 그를 용서할 수 있다면, 내 마음은 즉시 평화를 되찾게 될 것이다.” 나는 한동안 그 문장 앞에 멈춰 섰다. 용서는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을 위한 길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실감한 순간이었다.
그때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예전 직장에서 마찰이 있었던 60대의 여성 회원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그분의 얼굴을 피했고, 그분도 나를 향해 날 선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시간만 지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지만, 마음 한편은 여전히 무거웠다.
결국 용기를 냈다. 조심스럽게, 정중하게, 내 마음을 담은 문자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회원님. 오랜만에 연락을 드려 조금 놀라셨을 수도 있겠네요… 사실 이 연락을 드리기까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잊힐 줄 알았는데,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는 감정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용기를 내어 제 마음을 전해보려 합니다. 예전의 많은 순간들이 떠오릅니다. 그때 저는 미숙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돌아보면, 제가 좀 더 마음을 열고 회원님의 이야기를 들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이제는 그 모든 기억을 따뜻하게 정리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내려놓으려 합니다. 혹시라도 제가 회원님께 서운함을 드린 일이 있었다면,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회원님께서 앞으로도 건강하시고, 좋은 인연들과 따뜻한 나날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저 역시 더욱 성숙하고 따뜻한 사람이 되어 나아가겠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이 문자를 보내고 나서, 내 마음속에 무언가가 풀리는 것을 느꼈다. 마치 오랫동안 묶여 있던 매듭이 스르르 풀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오랫동안 움켜쥐고 있던 감정의 실타래가 하나둘씩 풀려나가자, 마음 안으로 작은 평화가 스며들었다. 그리고 나는 점장과 매니저에게도 마음속으로 조용히 용서를 전했다. 그들에게 직접 연락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들 또한 각자의 삶의 무게를 지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그들도 나처럼 불완전한 사람이었고, 그 당시 나름의 이유가 있었으리라 생각하니 조금씩 이해가 되었다.
달라이 라마는 이렇게 말한다. “용서란 그들이 한 일을 잊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품지 않는 것이다. 그들의 행동에 대해서는 지혜롭게 대응하되, 마음속의 증오를 내려놓는 것이다.” 그 말은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용서는 과거를 지우는 일이 아니라, 더 이상 그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일이었다. 상처는 여전히 내 삶의 일부였다. 하지만 이제 그 기억은 더 이상 나를 휘감는 그림자가 아니었다. “용서는 잊는 것이 아니라, 그 기억 앞에서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책의 마지막 장에서 마주한 문장처럼, 마침내 그 기억 앞에서 조용히 웃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내 안에서 ‘용서’라는 감정은 작은 씨앗처럼 자리 잡았다. 아직 작고, 여전히 흔들리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생명의 형태로. 그리고 나는 오늘도 그 씨앗에 조용히 말을 건넨다. 잘 자라렴. 나도 잘 살아볼게. 그 말 한마디를 속삭일 수 있을 만큼, 나는 나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용서는 누구에게 무릎을 꿇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곧게 펴는 일이다. 과거의 어두운 기억이 내 등을 짓누르지 않도록, 오늘을 살기 위해 내려놓는 일이다. 이제 나는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아니라, 나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의 미움을 마주하게 되더라도 나는 알게 될 것이다. 그 마음 뒤에도 결국은 아픔이 있었음을.
“미움은 강인함이 아닌 나약함의 다른 모습이다. ‘미움으로는 미움을 이길 수 없다’는 가르침은 단지 영적인 말이 아니다. 그것은 지극히 현실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미움을 통해 얻어진 것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미움이나 분노를 통해서는 누구도 행복해질 수 없다. 용서를 통해, 개인적인 차원에서든 또는 국가적, 국제적인 차원에서든,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을 통해 우리는 평화에 이르게 되고 진정한 휴식과 행복에 이르게 된다. 용서를 실천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고, 인간의 삶에 있어 가장 큰 의미를 갖는 일이다.” — 달라이 라마 ‘용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