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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우 Nov 26. 2015

시를 적던 어린아이

당신은 왜 글을 적나요?

오늘의 공기는 새초롬하다. 어느새 겨울이 발등을 스칠 정도로 가까이 내려온 탓일까


조금은 낯설다, 설레기보다는 조금은 어색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글을 쓰는 지금이. 내가 사랑했던 글을 손에서 잠시 놓아두었던 것이 벌써 3년이 넘었고  그때처럼 글을 쓰는 것은 아직은 내게 어려운 일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글을 참 좋아했다. 중학교 2학년이 되었을 쯤일까, 그 무섭다던 중학교 2학년은 참 고맙게도 내게 글을 선물했다. 원래부터 글을 좋아했었지만, 글을 써낸다는 것은 참 재미있었고, 어쩌다 좋은 글귀를 적어냈을 때 행복했고 조금은 많이, 설렜다. 무슨 이유에서 일까, 언젠가 나는 혼자 적어내던 글을 인터넷이라는 창구를 통해 밖으로 조금씩 내밀었고, 운 좋게도 그 카페의 대표작가가 되어 4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다. 누적 조회수 8만이라는 조촐하지만 가슴 따뜻한 성적표를 들고서, 많이 뿌듯해했던 그 시절. 지금은 없어진 그 인터넷 카페가 가끔은 그리워진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나의 글을 봐주시던 고마운 분을 통해 모바일 시집(지금은 앱스토어에서도 사라졌다)을 내놓는 것으로 나의 글 생활은 조금씩 휴지기에 들어갔다. 공부를 해야만 했고, 안타깝게도 글 또한 자연스럽게 손에 잡히지 않았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글을 계속 썼을까,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2013년, 나는 글을 쓰던 나의 어린 시절을 뒤로 한 채 또 다른 꿈이던 K대 경영학과에 진학했다.



나의 대학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도 바빴고 어떤 의미에서는 지극히 낭만적이었다. 많은 사람을 만났고, 여름 방학에는 신입생 장학금에 돈을 조금(많이) 보태어 42일 동안 혼자만의 유럽 여행을 떠났다. 가톨릭 신자는 아니었지만, 학교를 아주 조금 빨리 들어가 아직은 19살이었던 내게 마지막 추억을 남겨준다는 의미에서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걸었고, 내가 사랑하던 문화가 숨 쉬던 영국과 그토록 꿈꿨던 에든버러 페스티벌을 걷고, 그 향기를 들이마셨다.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후 겨울, 나는 한 디자인 전시회의 기획단으로 들어가 일했고, 그 해 나는 마음이 맞았던 친구들과 창업을 하며 바쁜 나날들을 보냈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글을 다시 시작하지는 못했다.


변명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 이유는 내가 사랑해 마지않던 나의 책 귀퉁이 들을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싶다. 글을 쓰던, 어렸던 학창시절의 나는 딴짓하는 것을 상당히 좋아했다. 수업을 들으며, 책을 읽으며 그리고 공부를 하면서, 나는 언제나 책 귀퉁이에 나의 글을 적었다. 교과서와 노트에, 조그만 종이조각에 글을 적었고 때로는 그 종이를 잃어버리고, 잊어버리며 나의 글을 나의 삶 곳곳에 적고 남겨두었다. 하지만 대학생이 되고 너무나도 바빠진 지금 나는 그 책 귀퉁이 들을, 그리고 딴짓을 할 수 있었던 그 시절을 잃어버린 기분이 든다. 자유가 딴짓을 내게서 앗아갔다는 생각에 미소가 번진다. 조금은 우습다.

나는 아직도 글을 좋아한다. 그리고 글을 쓰고 싶다. 그동안 나는 수없이 모바일 시집을 위해 준비했던 글들을 다시 들춰보았고, 그 시절에 썼던 소설을 새로운 노트북에 옮기며 다시금 글을 쓸 거라고 다짐했었다. 왜 아직도 나는 시작하지 못했을까. 짧은 헤어짐 동안 나는 이렇게 커버렸는데, 나는 다시금 나를 반듯이, 담백하게 적어낼 수 있을까. 조금은 궁금했고, 조금은 두려웠던 것이 맞을 것 같다. 그리고 오늘부터 나는 글을 다시 써 내려가 보려고 한다. 그 사이에 날씨는 조금 더 추워졌고 하얀 눈발이 사뿐히 거리를 찾았다. 상쾌하다.



나는 글을 왜 적고 싶은 것일까. 나는  하루하루를 지나 보내며 느끼는 소중한 감성들을 적고, 그렇게 내 삶 곳곳에 추억의 흔적을 남기고 싶다. 어린 시절의 설레던 마음과 같지는 않겠지만, 이렇게 조금은 커버린 나의 마음으로 다시금 글을 적는 것도 색다르고 매력적인 일이라는 느낌이 든다. 오랫동안 품어왔던 글.


한 번 더 시를 적던, 글을 적어내려 가던  어린아이가 돼볼까 한다.


2015.11.26 1:13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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