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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우 Dec 01. 2015

졸리버 여행기

학교 가는 길

그래도 지구는 돌고, 시계도 돈다. 이상하게도 내 아침의 시계는 6분 단위로 도는데 당연 그 단위는 지하철이다. 이번 지하철, 다음 지하철. 슬프게도 잠에서 깨어날 때 마음 속을 울리는 것은 내가 타야 할 그 만원의 지하철이다. 아직은 학생이라 다행히 새벽부터 나갈 준비를 해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9시 5분에는 지하철을 타야 안심이다.


어제도 오늘도, 집을 나서는 것은 참 졸린 일이다. 샤워를 해도 가끔 붙어있는 눈곱과 피로감을 손끝으로 비비며 엘리베이터를 탄다. 요즘 한껏 차가워진 공기에게 겨우내 나의 아침을 함께할 알람을 부탁하고 눈을 감고도 걸을 수 있는 단지를 넘어 역으로 터벅터벅 걸어간다. 살짝 눈을 떠 돌아본 세상은 아직 조용하고, 졸린 것 같다.


9시 5분 지하철에는 나름의 매력이 있다. 물론 환승을 두 번 해야하지만, 9시 5분 지하철을 타고 출발하는 하루의 첫 번째 여정을 나는 좋아하는 편이다. 양재역에 도착해 환승을 하면 권태에 찌든 기관사 누님을 만날 수 있다. 가끔은 지하철 방송을 제쳐두고 졸리고, 아주 많이 귀찮은 목소리로 "이번역은 옥수, 옥수 역입니다아(끝이 살짝 길어진다)"하는 기관사 누님. '누님도 졸리시군요.' 하며 눈꺼풀을 밀어올리면 어느덧 전철은 한강을 가로지른다.


다들 졸린 이 시간에 지하철에 몸을 실고 가로지르는 한강은 정말 매력적이다. 3호선의 창문에 몸을 기대어 바깥의 바닥을 바라보면, 어느 순간 한강의 물결이 눈 안에 들어온다. 기둥 곁에서는 잘게 부서지고 멀어지면 다시 넓게 넘실거리는 물결은 언제나 매혹적이고 비스듬히 올라온 햇빛과 함께 기분을 상쾌하게 해준다. 길지 않은 시간, 곧 다시 터널로 들어가겠지만 그 물결의 끝에 만나는 옥수역의 밝은 햇살이 비치는 철길은 매력적이다. 자갈로 덮인 철길은 언제나 옳다. 어제는 그 철길 곁으로 누군가 떨어트린 우산을 발견했다. 잠이 조금은 깬다. 나른하다.



그렇게 도착한 약수역에서는 천천히 계단을 올라가 6호선으로 발걸음을 뗀다. 환승통로에서 파는 델리만쥬의 향기는 유독 아침에 진하다. 가끔은 배고파지기도 하지만 적절히 나른한 아침에는 기분이 좋아진다. 한산한 6호선, 풍요로운 공간감이 조금은 낯설다.


고려대역에 도착하면 역 자체가 깊어서 그런지 공기가 조금 차다. 올라가며 추위에 조금 적응하고 밖으로 나오면 그 것이 바로 하루의 시작이다. 천천히 걸어서, 가끔은 뛰어서 도착하는 따뜻한 빛깔의 강의실, 의자. 오늘 하루는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오늘 하루는 기분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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