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한 번째 편지, 공군 서울공항, 2017.02.24
To. 콩 아가씨
계단을 만들어볼까요 우리. 계단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졸업식이에요 누나, 4년과 1년의 유예 끝에 마침내. 기분이 어떤가요. 무덤덤할까요, 아쉬울까요, 아니면 즐거울까요. 그 날 그 자리에 선 누나의 기분이 잘 상상 가지가 않네요. 즐거웠으면 좋겠지만 혹여나 기분이 안 좋다면 내가 이 편지를 들고 당신 곁에 설 테니 부디 행복해해 주세요.
졸업이라, 참 단단하고 견고한 느낌의 단어네요. 봉투에 풀을 붙여 마무리하는 것 같은 차분한 글씨. 어쩌면 우리 아가씨는 졸업이 참 허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어요. 졸업을 하기는 하지만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고 새초롬한 감상을 남길 지도 모르고, 졸업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내게 퉁명스러운 감상을 남길 지도 모르죠. 하지만 아가씨, 노파심에 하는 말인데, 그렇게 의미 없는 일은 절대 아닐 거예요.
삶이란 언제나 다양한 해프닝의 연속인 것 같아요. 한 단계, 그다음 단계. 한 단계씩 밟아나가면서 각자의 인생을 열어가는 거겠죠. 계단을 오르는 것처럼 말이에요. 계단 위에 무엇이 있을지는 영원히 모를 노릇일런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계속 계단을 올라 나아갈 거예요. 그리고 오늘, 나의 연인은 아주 튼튼하고 탐스러운 계단 한 칸을 마무리했네요.
재밌는 학창 시절 아니었나요. 마음껏 장구를 치던 날들도 있었고, 어려운 논문들과 씨름했던 날들도 있었고. 날씨가 화창한 어느 날에는 내 손을 잡고 산책을 했고, 또 다른 날에는 카페에 들어가 같이 머리를 맞대고 공부를 했었죠. 공강 시간에는 햇살이 참 좋은 창가에 앉아 쪽잠을 자기도 했고, 밥값 아끼자고 궁상을 떨기도 했네요. 공부하겠다고 서울대 수업을 신청해 다니기도 했고, 박물관을 서너 시간도 넘게 함께 돌아다녀보기도 했어요. 집을 참 좋아해 수업이 끝나면 바로 집으로 가긴 했지만, 강의실 문 앞에는 지친 손을 붙잡아 집으로 바래다줄 내가 있었고, 낡고 때 묻은 책 냄새를 맡으며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낸 나날들도 있었죠. 하나 같이 잊고 싶지 않은 행복한 기억. 행복한 당신의 대학생활입니다.
남은 게 없다고 하기에는 너무 즐거웠던 그 시간들에, 내가 그 옆에 있어줄 수 있어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어요. 뭐 1년 정도 늦긴 했지만, 그게 최선이었으니 이해해줄 거죠? 내가 옆에 있어서, 조금은 당신의 행복한 시절을 늘려줄 수 있었기를. 졸업은 했어도 여전히 우리 아가씨는 철부지 내 연인이니까, 같이 웃고 같이 걷고, 같이 살아가며. 오늘, 내 손을 잡고 계단을 또 하나 올라가 봐요.
사랑해요.
2017.02.24
*저를 제외한 모든 편지 수령인들의 이름은 가명이나 애칭, 혹은 평소 좋아하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자친구의 경우, 콩/누나/아가씨 등을 사용할 예정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