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삭기 공부

일흔두 번째 편지, 공군 서울공항, 2017.03.09

by 김형우

To. 콩 아가씨


심심할 틈 없는 군생활, 어제는 국방부 장관님이 타실 헬기가 하루 묵어간다고 해서 토잉을 해서 격납고에 모셔드리고 왔어요. 우리 비행단 소속 항공기는 아니지만 UH-60이라고 매일 토잉 하던 기종 중 하나라 후딱 넣어주고 왔습니다. UH-60은 진짜 유명한 기종이라 전 세계 이곳저곳에서 많이 쓴다고들 하는데 나중에 먹고살기 힘들면 가서 헬기 토잉 아르바이트나 시켜달라고 조를까 봐요. 이력서에 한 줄 쓰는 거죠. 'UH-60 블랙호크 토잉 가능'.


한창 공부 중일 콩 아가씨. 요즘 나는 굴삭기 시험을 공부하는 중이랍니다. 토요일 시험인데 월요일부터 공부를 시작해서 붙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뭐 어쩌겠나요 열심히 해야지. 사실 굴삭기에 대해 공부하면 되나 싶어서 시험을 신청했는데 책을 펼쳐보니 엔진에 대해서도 배우고 실린더, 크랭크 축 등등 복잡하게 배울 것들이 가득해서 마음이 픽하고 게을러진 참이에요. 그래도 일하는 중간중간 열심히 공부를 하는 중입니다. 필기시험을 붙으면 실기 시험이 남는데, 그때 정말 신세계가 열린다고 해요. 굴삭기라니, 열심히 해서 굴삭기 몰고 데리러 갈게요. 우리 아가씨 열심히 공부 중인데, 나도 열심히 공부해야지. 힘냅시다 우리.


공부를 안 하는 여유시간에는 누나가 준 책(?)을 한 장씩 풀어보는 중이에요. 풀어본다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시집을 따라 글을 열심히 써 내려가고 있어요. 두께가 좀 되는 고로 완성할 때까지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완성이 되면 당신에게 이 책을 돌려줄게요. 매일은 아니지만 글을 쓰면 날짜를 기록해두고 있으니 '아 이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이런 이야기를 적고 있었구나' 생각해줄래요?


또 한 번 휴가가 살짝 늦춰져서 이제 다시 5주 정도를 기다려야겠네요. 긴 시간이지만 계속 편지 보내고 전화할 테니 기분 좋게 기다려봅시다. 성큼성큼 다가오는 봄날이 참 포근해서, 눈이 부셔도 보고 싶을 정도로 하늘이 예뻐서, 그런 봄날과 하늘을 닮은 당신이 보고 싶어요. 날이 좋아서 내가 보고 싶어 지면, 이 편지를 보며 나를 생각해주세요. 사랑해요.



2017.03.09


*저를 제외한 모든 편지 수령인들의 이름은 가명이나 애칭, 혹은 평소 좋아하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자친구의 경우, 콩/누나/아가씨 등을 사용할 예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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