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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우 Jun 14. 2019

극악의 근무 환경

여든세 번째 편지, 공군 서울공항

To. 엄마


 또 밤이에요. 어쩌면 이렇게 하루가 빨리 갈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상병 때 시간이 제일 빠르게 지나간다고 하긴 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요. 많이 바빠지기도 했고, 편지량도 줄어서 많은 소식이 쌓인 것 같은데 무엇부터 이야기를 해볼까요.


 이제 군생활이 열 달 정도밖에 안 남았고, 마침내 자대로 기다리던 아들 기수가 왔어요. 이제 자대 배치를 받은 지 2주 정도가 지났는데 이곳저곳에서 사고 치고 다닌다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정신이 혼미해집니다. 우리도 그랬을까 싶기도 하면서 잘 챙겨주려고 하는데 아직은 바쁘기만 한 근무 스케줄 때문에 그리 좋은 아빠 기수가 되어주지는 못하고 있네요. 이번에 드디어 작전차량중대의 마지막 근무 차량인 9톤 비상대기 출동차 상번을 통과했거든요. 지나치게 크고 시원치 않은 부분이 많은 차지만 조심조심 잘 운전하는 중입니다.


 그 사이에 중대에는 새로운 통제관님이 오셨어요. 오시자마자 우리의 근무 환경을 보시고 충격적일 정도로 열악하고 고된 근무 환경이라고 하시는 바람에 나름 만족하고 있던 우리를 놀라게 하시긴 했지만, 개선시켜주시겠다고 눈에 불을 키시는 모습이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여름이 되고 나서 근무 환경이 많이 열악하기는 해요. 지난주인가 지지난 주인가에 운 좋게 온도계가 생겨 터그 차 내부 온도를 재볼 일이 있었는데, 살인적인 온도일 거라 예상하기는 했지만 충격적이었어요.


 정지 상태로 주차해둔 터그 차 내부 기온이 48도, 창문 열고 돌아다닐 때의 온도가 42도 그리고 열심히 일하고 있을 때 대시보드 온도가 58도. 간혹 대시보드에 무릎을 대고 토잉 하는 애들이 있는데 무릎에 화상을 입어서 물집 잡혔다는 친구들이 종종 생기는 이유가 있었네요. 개선을 해주신다니 조금 다행이죠? 혹시나 해서 말해주자면 물 많이 마시고, 쉴 수 있을 때마다 그늘을 찾아다니면서 잘 버티고 있으니 많이 걱정 안 해도 괜찮아요. 퇴근하고 전화할게요. 사랑해요.




 힘드네요. 방금은 출근 53시간 만에 겨우 퇴근을 했어요. 한 명의 빈자리와 늦어지는 상번, 그리고 어쩌다 보니 때를 맞추어 몰려드는 일들. 내년 이 맘 때에는 이 곳에 없겠지만 그래도 내년에는 북한 미사일과 대통령님 휴가와 태풍은 좀 따로따로 왔으면 좋겠습니다. 8월의 시작은 참 어려웠어요. 내일은 태풍을 피해 서울을 찾은 남쪽 비행기 친구들 덕에 아침부터 바쁠 예정이에요. 근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휴가자를 포함해서 겨우 12명인데, 내일은 아침부터 9명이 일하러 가야 하니 이게 주말인 건지 아닌 건지 모를 지경이에요. 날씨도 오락가락하면서 앓아눕는 애들도 생기는데 여름은 왜 안 끝나는 것일까요. 피곤한 여름입니다.



2017.08.01 - 2017.08.05


*저를 제외한 모든 편지 수령인들의 이름은 가명이나 애칭, 혹은 평소 좋아하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자친구의 경우, 콩/누나/아가씨 등을 사용할 예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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