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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우 Jun 13. 2019

작고 다정한 응원의 편지

여든두 번째 편지, 공군 서울공항

To. 콩 아가씨


 어느새 가을이 그리워지는 때가 온 것 같아요. 연이은 폭염주의보와 수준급 밀당을 선보이는 장마전선. 여름의 버거운 언덕을 가까스로 넘어서는 지금은 아마도 내가 한 해의 시간표 중 가장 싫어하는 시간일 겁니다.


 뜨신 햇살이 지겹게 달라붙어 지친 날에는 언제나 하고 싶었던 일들을 두어 개씩 놓치기 마련이에요. 숨을 가늘게 다듬어 낮잠을 자고나도 피곤한 하루는 진득하게 앉아 책을 읽기조차 쉽지 않고, 자리를 잡고 공부를 시작하기도 싫어져요. 삶의 템포가 느려지는 이 계절. 시험이 다가와 삶이 벅찰 당신의 여름은 안녕하신가요.


 같이 견디어가는 이 오랜 시험 준비. 어쩌면 이 여름이 유난히 답답한 것은 마침내 터치다운을 해야 할 때가 다가와서 일지도 모르겠어요. 한 해의 노력. 혹은 그 이상의 시간에 담긴 노력의 성과를 단 한 번의 시험으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여전히 참 무섭습니다. 단 한 번의 승부라는 것은 그 낭만성만큼이나 무정하고 잔혹하니까요. 시간이 가져다준 힘겨운 마라톤은 함께했지만 마지막 시험은 결국 혼자 견디어 내야 할 당신. 내가 당신을 위해 준비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토록 열심히 달려온 그대를 위해, 토라져서 잠깐 쉬어갈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을 준비해두고. 송골송골 맺힌 땀을 식혀줄 수 있도록 바람으로 성기게 얽은 스카프를 매어줄 데이트를 마련해두고. 꼭 이번 시험이 결실을 맺지 못하더라도 이 한 해가 열매를 맺지 못한 것은 아니라고, 내게 우리 아가씨는 이미 작년의 당신보다 더 예쁘고 단단한 사람이고 당신의 2017년은 기념할 만한 한 해라고 말해줄 솔직함 정도면 되는 것일까요. 단출하지만 당신을 행복하게 해 줄 작은 선물 정도도 괜찮겠죠? 이 정도면 우리는 미소 지을 수 있는 여름 나기에 성공하지 않을까 싶어요. 등을 서로 기대고 앉은 우리. 그다음 날의 날씨는 역시나 모르겠지만 잠시 숨을 쉬어갈 그 밤은 아마도 별이 가득할 거예요.


 사랑해요.


2017.07.30


*저를 제외한 모든 편지 수령인들의 이름은 가명이나 애칭, 혹은 평소 좋아하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자친구의 경우, 콩/누나/아가씨 등을 사용할 예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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