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림뉴웨이브 2024 김참다운 아쟁
서늘해질까 싶었지만, 여전히 무더웠던 추석 연휴가 지난 9월 세 번째 목요일. 현재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단원으로 활동 중인 아쟁 연주가 김참다운의 공연이 김희수아트센터에서 열렸다.
검은 저고리와 쪽빛의 치마를 입은 김참다운, 주황빛의 도포를 입은 장구 연주의 김인수가 무대에 등장하니 관객들이 큰 박수로 이들을 반겼다. 자리를 잡고 연주 준비를 마친 둘은 이내 공연의 첫 순서로 <김일구류 아쟁산조>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전통 산조의 긴 가락을 완성해 보고자 하는 욕심으로 선택한 곡인데, 전주에 있는 스승 김일구의 가락에 자신만의 다스름을 2분 정도 도입부에 넣어 연주했다고. 김일구 특유의 꼬장꼬장한 가락을 듣고 배운 제자가 성장해 누군가를 가르치고 있고, 또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게 된 지금. 여기서 참된 사제 관계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싶어지기도.
40분가량의 긴 연주를 듣는데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온전히 소리에 집중해 감상하기란 쉽지 않았다. (절대 졸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중해 보려는 노력 중에 분주히 현을 누르는 왼팔과 현 위를 노니는 말총 활을 보고 있노라니 어쩐지 거대한 바게트를 써는 모습 같아 웃음이 나오지 뭔가. 그러자 연주를 듣는 나에게도 새로운 에너지가 솟아나서 남은 연주를 즐겁게 들어볼 수 있었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것이니까!
참고로 김참다운과 김인수는 부부지간! 길게 이어지는 산조 공연 동안 옆에서 응원하듯 던져지는 고수의 ‘얼씨구! 어힛’과 같은 추임새가 듣기 좋았고, 이런 상황 자체가 조화로웠다. 더불어 이상적인 부부의 상은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니겠냐는 생각까지 들었다. 선하고 앳된 얼굴을 한 김참다운 연주가가 두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도 약간의 놀람 포인트.
길게 끌고 나가는 지속력도 대단하고, 흔들림 없는 소리와 거침없이 밀고 나가는 힘에 대해 경이롭다는 마음이 치솟았다. 무언가를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란 어디에서 나올까. 나의 경우엔 순수한 열정이다. 지인들 사이에서 취미 부자로 소문났다는 그 역시도 마찬가지 아닐까? 어른이라는 체면 때문에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즐거움을 놓치고, 얻더라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며 살아간다.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하게 좋아하는 것들을 무시하지만 않더라도 삶에 대한 권태로움이 스스로를 치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것이 비록 배부른 소리일지라도.
김보현 작곡의 대아쟁 독주곡 <그루>에서는 1장 나무의 뿌리 내림, 2장 가지 뻗기, 3장 비바람과 나뭇잎, 4장 순환으로 이어지는 연주를 들어볼 수 있었다. 사부작거리며 귀 기울여야 하는 부분도 있고 다양한 감상이 요구되었던 곡. 이번 공연에서 생소한 연주를 경험했는데, 바로 당구봉처럼 길고 매끄럽게 다듬어진 나무 활을 사용한 부분이다. 묵직한 콘트라베이스를 연상시키는 소리가 좋았고, 여기에 끼이익거리며 나무 질감이 느껴지는 미세한 노이즈 소리가 섞여 들리는 것이 독특했다. 이뿐만 아니라 활대로 현을 톡톡 튕기듯 연주하는 소리도 재미있었고, 손가락으로 현을 뜯는 부분에서 여린 듯 동양적인 색채가 느껴져 취향을 확인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기나긴 인고와 치열함 속에서 우리는 단순히 지루함만을 맛보진 않는다. 닿고자 하는 경지를 향해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연주가의 의지, 듣는 이들을 위한 정성, 넘쳐나는 인스턴트식 유희 속에서도 긴 호흡의 전통 음악을 이어가는 기개는 분명 어떤 울림을 주니까.
약 40분의 아쟁 산조를 연주하고 나서 들은 두 번째 곡은 어찌나 쏜살처럼 빠르게 지나가던지, 아쉬운 마음마저 들었다. 길게 끌고 가는 것에는 그만한 노고가 쓰이고 완성 후엔 웬만한 일들은 식은 죽 먹기가 된다. 이는 청중에게도 마찬가지였을 터. 우리 모두에겐 지나고 나면 분명 거쳐와야 했을 순간에 대해 애정을 품고 지켜보는 자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