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인 나를 인정하기로 했다

내가 집을 나온 첫 번째 이유

by 별아라

엄마를 보며 늘 생각했다.

‘어떻게 저렇게 이기적이고 감정적일 수 있지.’


닮기 싫었다.

닮지 않으려고, 정말 애썼다.


어떤 상황에서도 엄마처럼 행동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런데 남자친구와 크게 다툰 날,

이런 말을 들었다.

“넌 왜 그렇게 이기적이고 감정적이야.”


그 말은,

세상에서 제일 듣기 싫은 말이었다.

내 모든 노력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아니, 앞으로의 나까지도 무너지는 것 같았다.



밖에서는 꽤나 괜찮은 사람으로 지내던 내가

집에만 오면 엄마처럼 행동했다.

할머니도, 아빠도, 이모도

내가 엄마를 닮았다고 했다.


나는 인정하지 않았다.

‘집이라서 그런 거야.

밖에서는 안 그러니까.

매일 엄마를 보니까 그런 모습이 물든 거야.

안 보면 괜찮아질 거야.


첫 자취를 시작했을 땐

엄마를 자주 안 보니

내가 온전히 나로 사는 것 같았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그때도 진짜 바뀐 게 아니라

배려하는 나에 스스로 취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동생과 함께 살며

엄마를 자주 마주하게 되자

나에게서 자꾸만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 내가 싫었다.

그게, 내가 집을 나온 첫 번째 이유였다.



이제는 엄마를 보지 않으니까

그런 모습도 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건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어쩌면 타고난 이기적 유전자 같았다.


‘나는 변할 줄 알았는데, 결국 똑같은 사람이었구나.’

그렇게 단단하게 쌓아 올린 자존감이 무너지는 데는

단 한 문장이면 충분했다.


며칠 동안

그 생각들이 나를 우울함에 가뒀다.



드디어 상담을 받는 날.

나는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얘기했다.


“엄마는 이기적이고 감정적이잖아요.

그래서 그런 사람이 싫은데,

그런 말을 들으니까 너무 괴로워요.”


상담 선생님이 내 이야기를 다 듣곤 물으셨다.


“그래, 충분히 그렇게 느꼈을 수 있겠다.

아라야.

그럼 아라가 생각하는 이기적이라는 건 어떤 거야?”


선생님의 물음에

스물한 살 때 일했던 매장 점주님과

나눈 대화를 들려줬다.


매장에서 제일 오래 열심히 일했던 나는

시급 인상을 말하고 싶었지만,

미운소리에서 괜히 좋은 관계가 깨질까

입을 열지 못했었다.


그런 나에게,

점주님이 먼저 말을 꺼내주셨다.


“나도 옛날엔 이기적이라는 게

나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안 그래.

네가 시급을 더 받고 싶다면 말해도 돼.

일을 잘하는 네가 오래 다니는 건

나한테도 이득이거든.”


그 말이, 마음에 깊이 남아 있었다.


그때의 나는,

혹시 ‘이기적인 사람’으로 비칠까 봐

자기 권리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던 사람이었다.


“… 음, 이기적이라는 건 꼭 항상 나쁜 것 같진 않아요.

어쩌면, 내 이익이 상대에게도 이익이 될 수 있잖아요.”


선생님이 다시 물으셨다.

“맞아. 그럼, 이기적이라는 말을 들은 게

왜 아라를 무너지게 했을까?”


“엄마를 닮았다는 말 같았어요.

그게 싫었어요.

전 엄마처럼 되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남자친구가 한 말은

내가 엄마를 닮았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물론 그 말이 좋은 뜻은 아니었다는 건 안다.

하지만 내가 무너진 진짜 이유는

그 말을 ‘엄마 같은 사람’이라는 의미로 해석한

나 자신 때문이었다.


나에 대한 평가를 엄마와 연결 짓는 공식을

내 안에 만들어놓고,

그 공식대로 해석해 버린 게 문제였다.


이기적이고 감정적인 사람

= 엄마

= 내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


그러니까, 내가 이기적인 건

그저 내 기질일 뿐이다.

나를 판단할 때,

엄마라는 잣대를 들이대선 안 됐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다.

이기적이고 감정적인 사람,

이기적이고 이성적인 사람,

이타적이고 감정적인 사람,

이타적이고 이성적인 사람.


나는 그저,

그중 하나일 뿐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며

내 몫을 챙긴 적은 없다.


다만,

때때로 내 감정이나 상황에 집중하다 보면

그게 이기적으로 비칠 수 있다는 걸 안다.


그래서 노력한다.

알아차리고, 조절하려고.

엄마처럼 행동하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기적인 나를 인정하기로 했다.



지금도 가끔 남자친구는 말한다.


“네가 이기적이라서 그래.”

“맞아. 나 이기적이야. 근데 노력하고 있잖아.”

“ㅋㅋㅋ 알면 됐어.”


무언가를 결정하거나 행동할 때,

내 행동이 이기적일 수 있다는 걸 나는 안다.

그래서 한 번 더 생각한다.

‘내가 지금, 뭘 배려하지 못했지?’


본능적으로 이기적인 사람이

갑자기 이타적인 사람으로 바뀔 순 없다.


하지만

사회화된 이기적인 사람은 될 수 있다.


그걸로,

나는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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