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집을 나온 두 번째 이유
상담하기 전 대기실은 몇 번을 와도 늘 불편했다.
이것저것 꼼지락거리며 괜히 두리번대고,
휴대폰 화면만 들여다보며 시간을 죽였다.
그저 내 담당 선생님이
얼른 날 부르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그러다 상담실에 들어서면
마치 다른 세상처럼 편안해졌다.
나는 자연스럽게 문을 닫고
핸드폰을 충전기에 꽂아두고
슬리퍼를 벗은 채 의자에 다리를 턱 걸쳤다.
그리고 커다란 쿠션을 꼭 끌어안고
이야기를 할 준비를 했다.
가족 이야기는 이제 하지 않기로 했다.
일상은 훨씬 편해졌고
엄마를 떠올리는 날도 드물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상담을 시작하면
눈은 금세 붉어지고, 말문이 막혔다.
“아라는 눈물이 정말 많은 편인 것 같아.”
난 어릴 때부터
사소한 일에도 눈시울이 쉽게 붉어졌다.
남들 앞에서 엉엉 우는 건 아니었지만
가까운 사람 앞에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늘 목이 메곤 했다.
“이렇게 마음 여린 아라가 두려움조차 이겨내며
그런 선택들을 할 수 있었다는 게 대견한 거 같아. “
“사실 제 마음은 연두부처럼 약한 것 같은데…
살아보려고 하다 보니
마음을 으깨서라도 버티는 법을 배웠을 뿐…
진짜 강해진 게 아니라,
더 부서지는 데 익숙해졌달까요.”
그래서
이번엔 ‘나’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기로 했다.
툭하면 흐르는 눈물은
나도 모르는 상처가 있다는 의미일지도 모르니까
집에 돌아와서 선생님이 보내준
기질 검사와 성격 검사를 해봤다.
내 검사결과는 간단하게 이렇게 표현된다.
• 사람을 매우 좋아함
• 사회적 민감성이 높음
• 목표의식이 뚜렷함
• 끈기가 부족함
• 자율성이 높음
사람을 사랑하는 기질을 타고났지만
그래서 더 인간관계에서 쉽게 상처받고
눈치를 보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또, 목표의식은 강한데 끈기가 부족해
그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방법에
관심을 갖는다는 분석이었다.
이 결과를 보고 나서야
엄마아빠와의 갈등에도 이유가 있었음을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
내 목표는 ‘사람’이었다.
사람을 돕는 일,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것.
난 늘 꿈이 많았다.
‘넌 꿈이 뭐야?’라는 질문에
선생님, 교장선생님, 건축가, 호텔 주인, 작가…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바뀌던 아이였다.
그게 참 의문이었다.
건축가가 되고 싶으면서 왜 선생님이 꿈이었을까?
왜 분야가 다른데도 관심을 가졌을까?
검사를 하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내가 진짜 원한 건 건축이나 교육 자체가 아니었다.
내가 만든 공간에서 사람들이
편안함과 행복을 느끼는 것.
아이들에게 진심 어린 조언과
응원을 해주는 위치에 있는 것.
결국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일’이 나의 꿈이었다.
그래서 나는 상황에 맞춰
내 꿈으로 가는 과정 속에서
수십 번 직업을 바꿔왔던 것이었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는 달랐다.
건축 일을 했던 아빠
그리고 지금은 타일 매장을 함께 운영하는 두 사람은
내가 고등학생 때 말했던 ‘건축’과 ‘호텔 운영’이라는
꿈을 진짜 내 진로라고 믿었다.
엄마아빠는 거래처 사람들과 인맥을 유지하며
“우리 딸, 건축학과 들어갔어요”라고 말했고,
동네 건축회장님께 내 얼굴을 비추며
나름대로 내 꿈을 이뤄주기 위해
도움을 주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게 나에겐 부담이었다.
나는 끈기가 부족한 대신
다른 길을 통해서도 목표에 도달하기만 하면
괜찮은 사람이었으니까.
건축을 배우던 딸이 갑자기 유치원 선생님이 됐다.
난 내가 하고 싶은 걸 기회로 잡았을 뿐인데
엄마 아빠 입장에선 쉽게 이해되지 않았을 거다.
내가 나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니
엄마아빠를 이해시킬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또 엇갈렸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좀 더 일찍 말할 수 있었더라면.
그걸 몰라서
결국 이해받기를 포기하고
자유를 선택했는데 말이다.
이게 내가 집을 나온 두 번째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