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이 열리는 첫 번째 순간
집을 나오면서 모든 가족과 연락을 끊었다.
동생과 할머니의 연락까지도.
내 결심이 흔들리지 않도록,
이 길이 내가 단호하게 선택한 길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싶었다.
아빠와 동생에게 오는 연락은
참고 무시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할머니와의 연락을 끊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고민과 두려움을 남겼다.
혹시 할머니가 아프면 어쩌지.
혹시 돌아가시면…
내 고집 때문에 장례식에도 못 가면 어쩌지.
그때 가서 후회하고
스스로를 미워하게 될 텐데…
믿지도 않던 하나님께
할머니가 아프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내가 돌아갈 때까지 아무 일 없기를 바라며.
원래도 연락을 자주 안 받던 터라
할머니는 내가 일부러 연락을 피하는 걸
눈치채지 못하신 듯했다.
그런데도 할머니의 연락을 피할 때마다
마음 한편에 죄가 쌓여가는 기분이었다.
집을 나온 지 7개월쯤 되었을 때였다.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통화중이더니 할머니 이젓어”
그 한 줄을 보는 순간,
그동안 쌓아두었던 독기와 결심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할머니 안 잊었다고, 외로워하지 말라고.
꼭 말해주고 싶었다.
나는 문자를 보자마자 전화를 걸었다.
할머니는 내가 집을 나온
사실조차 모르고 계셨다.
덕분에 오히려 모든 이야기를
편하게 털어놓을 수 있었다.
나는 ‘그래도 연락은 해야지’ 하며
나를 나무라실 줄 알았다.
그런데 할머니는 오히려 나를 다독였다.
예전엔 나도 엄마처럼
할머니를 답답한 노인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그날,
할머니와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야
할머니는 내 마음도, 엄마의 마음도
세상 누구보다 잘 알고 이해하고 계신다는 걸 알았다.
세상에서 자기가 가장 불행하다고
떠드는 바보들 사이에서
할머니가 제일 지혜로운 사람 같았다.
그날 이후 나는 매주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할머니는 매번
바쁜데도 연락해 줘서 고맙다고 말했지만,
사실 내가 외로워서 할머니를 찾은 거였다.
아마 전화를 끊기 아쉬운 쪽은
오히려 나였을 것이다.
결국 나는 할머니가 보고 싶어 육지로 갔다.
할머니는 자신이
나를 더 보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셨다.
하지만 사실은 내가 더 보고 싶어서,
소중한 휴일을 털어가며 시간을 낸 거였다.
할머니는 솔직하게 “보고 싶다”라고
말할 줄 아는 어른이었지만,
나는 여전히 일정이 있어서 온 척,
무심한 척하는 어린아이였다.
언제부터 준비하셨는지 모를 밥상 위,
슴슴하고 미지근한 반찬과 퍽퍽한 백숙을 먹으며
몇 시간을 떠들었다.
만나기로 한 친구와의 약속도 미뤄가며
우린 울고 웃었다.
“엄마한테 너 주소 안 알려줬다.
문자 지워졌다고 내가 거짓말했어.”
“말하면 나 배신하는 거야.
그럼 할머니한테도 안 알려줘.”
할머니는 내 편일까?
아니, 이야기를 듣다 보면
엄마 편에 조금 더 가까운 것 같았다.
할머니는 혹여 내가 화낼까 봐
엄마에게 연락하라는 말을
조심스럽게 대화 속에 섞어 넣었다.
“할 거야, 할 거야.
아직 준비가 안 됐어. 좀만 기다려줘.”
속상했다. 나한테 잘못한 것 하나 없는
할머니까지 눈치 보게 만들다니,
망할 불효자가 따로 없었다.
할머니는 날 이해한다며 위로했지만,
어느 순간 그 말들은 마치
‘우리 애 이해해 줘. 애가 힘들어서 그렇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우리 애한테 더 잘해줘.’
라는 부탁처럼 들렸다.
할머니는 그렇게 엄마에게 구박받으면서도
딸이 뭐가 그렇게 예쁜지,
손녀 마음 다치지 않게 눈치 보며 부탁하는 사랑을
가슴 아프게, 나만 알게 됐다.
그니까 엄마도 알아야 한다.
내가 엄마를 조금 덜 미워하게 된 이유가
할머니의 노력과 사랑 덕분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