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인 줄 알았다

표현하지 못한 사랑의 흔적

by 별아라

후회하지 말자고 마음먹었다.

이번엔 아빠가 먼저 다가왔는데도 내가 뿌리쳤으니

이제 정말 뒤돌아서도 할 말이 없다.


평생 가족이 없으면 어떡하지?

뭐, 그런대로 살아보면 되겠지 싶었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

난 나중에 얼마나 후회하려고

이렇게 매정한 걸까.

정말 가족에 대한 감정이 없는 걸까.

가끔 문득 겁이 났다.


나중에 정말 후회하게 되면 어떡하지.

그때 가서 아무리 울어도 소용없는 순간이 오면

나는 얼마나 후회하려고 이러는 걸까.


그런 생각들이 나를 괴롭혔다.


상담이 끝날 무렵, 선생님이 물으셨다.

“아라는 추석에 어디 안 가?

혼자 있으면 외롭지 않겠어?”


나는 명절을 싫어한다.


아빠가 장남의 장손이라 아주 어렸을 때는

2층짜리 우리 집에 모든 친척들이 모였다.


하지만 아빠 회사가 부도나고 난 뒤로

우리 가족에게 명절은

더 이상 유쾌한 시간이 아니었다.


제주도로 이사 온 후에는

엄마와 간단히 전을 부치는 정도로 바뀌었다.

그게 오히려 좋았다.


용돈을 덜 받더라도

친척들을 만나러 가는 건 너무 싫었다.




“눈 똑바로 떠라.”

“표정 똑바로 해라. “

명절이면 엄마가 늘 하던 잔소리.


나는 인상을 잔뜩 쓴 채

방에 틀어박혀 폰만 들여다봤다.

어른들은 사춘기라 그런다며

나를 굳이 부르지 않았다.



“전 명절 싫어해요.”

“왜 명절이 싫었어?”

“글쎄요. 친척들이 모여 있는 것 자체가 싫었어요.”

“그렇구나. 명절에 가족들이 다 모이는

특수한 상황이 싫었구나.

그래도 그런 마음이 든 이유가 있지 않을까?”


선생님의 질문에,

그때 그 순간들을 떠올려봤다.


할머니 집에서 얹혀살던 시절,

명절이면 나는 엄마아빠를 기다렸다.


서울에서 온 가족들은 반듯하게 차려입고

과일과 선물을 들고 하나둘 도착했다.


그리고 제일 늦게

우리 엄마 아빠가 도착했다.

장바구니에 먹을 걸 한가득 들고.


검은 뿌리가 한참 자라난 갈색 머리,

얼룩무늬 몸빼 바지,

대충 묶은 집게 핀.


엄마의 모습을 보자마자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엄마는 도착하자마자 바빴다.

할머니와 부엌을 오가며 일손을 도맡았다.

아빠는 눈치 보며 무릎 꿇고 앉아 있었다.


평소엔 수다스럽고 멋쟁이였던 아빠가

그곳에선 벌서는 아이처럼 조용했다.


나는 그걸 지켜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웃고 떠드는 어른들 사이에서

우리 엄마아빠만 유난히 초라해 보였다.


그게 너무 싫었다.

그 공간이, 그 가족들이.

그리고 그런 자리에서 나를 타박하던 엄마가.


사춘기라 가족들과 있는 게 싫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내 눈앞에 펼쳐졌던 그 모든 것들이

그냥, 너무 아팠던 거다.


어린 나는 눈치를 보고 있었다.

엄마아빠를 지키고 싶었다.


그러니 나는 가족을 사랑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그저, 사랑을 표현하면 더 아플까 봐

스스로 멀어진 거였다.


사랑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그 감정을 꺼내는 방법을 잃어버린 채

혼자 견디는 법부터 배웠다.


그래서 혼자가 익숙해졌다.

가족에게 기대지 않는 사람처럼 자랐다.


주변 사람들은 말했다.

“아라는 진짜 독립적이야.”

“혼자서도 잘 살 거 같아.”


나도 그렇게 믿었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어린 나를 마주한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나는 가족을 사랑하고 있었다.

엄마아빠를 지키고 싶어 했다.


나는 그저

너무 일찍 너무 자주

혼자서 버텨야 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 글을 쓰며 또 하나 깨달았다.


엄마아빠는 나를 외할머니에게

맡기고 간 일이 마음에 걸려,

명절마다 더 조심스럽고 무거운 마음으로

행동했는지도 모른다.


그땐 그런 마음을 헤아릴 만큼 충분히 크지 않았다.

그 마음 몰라주고 투정 부리는 나를 보며,

얼마나 속상하고 또 미웠을까.


이전 08화난 왜 항상 이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