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옮기는 첫 결정
집을 나와야겠다고 마음먹은 후,
모든 게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비 오는 날, 혼자 중개사님 차를 타고
하루에 집을 열 군데 넘게 보러 다녔다.
그중 두 곳을 추려 남자친구와 다시 보기로 했다.
전에 집을 두 번이나 계약한 적이 있지만,
그땐 이렇게 떨리진 않았다.
아마도 무슨 일이 생겨도 돌아갈 곳이 있다는
안정감 덕분이었을 거다.
내 첫 자취는 동네에서 꽤 유명한 오피스텔이었다.
모든 가구가 빌트인으로 딱 맞춰져 있었고,
풀옵션이라 내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뭔가 ‘내 공간’이라는 느낌보다는,
호텔 방 같은 딱딱한 느낌이 강했다.
큰 창문 하나가 유일한 위안이었지만,
그 외엔 답답하고 폐쇄적인 기분이 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 공간에선
아무것도 꿈꿀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 후로 오피스텔은
다시는 선택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번엔 저렴한 월세에 무옵션이지만,
내가 직접 꾸밀 수 있는 빌라 원룸 위주로 보기로 했다.
남자친구와 중개사님을 함께 본 날,
중개사님이 말했다.
“이 집 오후에 보러 오시기로 한 분 계셔서,
빨리 말해주셔야 돼요.
한 시간 안으로 계약 여부 알려주세요.”
아… 그나마 가격도, 크기도 마음에 들긴 하는데…
체리몰딩에 엘리베이터 없는 3층,
연식도 꽤 되어 보인다.
늘 예쁘고 깔끔한 집을 원했던
나에겐 많은 포기가 필요했다.
게다가 한 시간 안에 결정하라니,
마음이 너무 조급해졌다.
중개사님과 헤어지고,
남자친구와 갈비탕을 먹으러 갔다.
“나쁘진 않은데, 이런 집도 처음이고…
나 진짜 계약하면 끝인데, 어떡하지…”
갈비탕을 앞에 두고 한 입도 먹지 못했다.
남자친구는 너무 조급해하지 말라며 고기를 발라줬다.
“아니, 나 지금 중요한 결정을 앞에 두고 있는데,
어떻게 밥이 넘어가?"
내 일이지만, 덤덤히 밥 먹는 남자친구가
왠지 남처럼 느껴져 괜히 서운했다.
“네가 살 집인데 네가 결정해야지.
그리고 뒤에 바로 예약 손님 있다는 거,
다 거짓말이야. 상술이야.
만약 다른 사람이 계약하면,
그 집은 네 집이 아니었나 보지.”
“맞아… 엄청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닌데,
내가 계약 못 하면 그 집은 내 집이 아닌 운명이겠지.
밥부터 먹고 생각해 봐야겠다.”
마음이 조금 차분해졌다.
그때 중개사님에게 전화가 왔다.
“생각 좀 해보셨어요?”
“아… 밥 먹는 중이라서요.
남자친구랑 얘기 좀 해볼게요.”
“혹시 남자친구 바꿔줄 수 있어요?”
당황했지만, 폰을 남자친구에게 건넸다.
“아, 네. 아직 고민 중이라서요.
아, 네네. 일단 알겠습니다.”
무슨 대화를 그렇게 하는지, 남자친구 입만 쳐다봤다.
“왜? 뭐래?”
“네가 너무 갈팡질팡하는 것 같아서,
마음에 안 들면 안 해도 된대.”
“그거 말고도 뭐라 하지 않았어?”
“아, 둘이 살면 수도세 더 받는다고 하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왜 오빠랑 얘기해?
결정권이 오빠한테 더 있어 보였나 보지?
수도세는 왜?”
“혼자 살아도 많이 쓸 수 있고,
둘이 써도 적게 쓸 수 있는데,
그걸 어떻게 알고 더 내. 말이 안 되는 거야.”
남자친구에게 전화 바꿔달라 한 것도 자존심 상하고,
중개사님 말 한마디에 휘둘리는 내가 너무 창피했다.
그래도 역시 남자친구를 데려가길 잘했다.
“오빠, 나 계약하고 후회하면 어떡해…?
그런 집 처음 살아봐서 걱정돼…”
“후회하면 다음에 다른 집에서 살면 되지.
원래 그러면서 맞는 곳을 찾아가는 거야.”
“응! 알겠어. 계약해야겠다.”
문자로 가계약하겠다고 말하고,
그 자리에서 가계약금도 보냈다.
미지근해진 갈비탕을 마저 먹는데,
남자친구가 말했다.
“그래도 그 집 괜찮은 것 같아.
나라도 계약했을 거야.”
“아, 그걸 왜 이제 말해!”
“네가 살 집은 네가 결정해야지. 내 말 듣고 결정해도, 후회는 네가 하는 거잖아.”
“내가 오빠 말에 휘둘릴 거 알고 있었지?”
“응.”
맞다. 사실 남자친구에게 확신을 받고 싶었다.
남자친구가 대신 결정해 주길 바랐다.
결국 스스로 결정해 낸 나 자신이 조금은 대견했다.
내가 판단하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준
남자친구에게도 고마웠다.
그렇게, 보증금 200만 원, 월세 46만 원짜리
내 첫 보금자리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