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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밤 Nov 23. 2020

공황장애 환자의 남편으로 산다는 것

남편을 인터뷰하다

남편을 인터뷰하기로 마음먹었던 건 어느 날 우연히 알게 된 남편의 속사정 때문이다.




등하원을 맡겠다고 고집한 남편의 속사정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맞벌이 육아를 한지 반년이 됐을 쯤부터 등하원에 모두 참여 중인 남편이 너무 힘들어했다. 고정된 아이의 등하원 시간에 맞춰 자신의 시간도 마음대로 할 수 없이 한정되어 버렸으니 지칠 수 밖에.


나는 대중교통으로 출근에만 한 시간 반이 걸렸고, 남편은 자차로 30분이면 출퇴근이 가능했다. 가장 효율적이고 안전한 방법을 동의하에 채택해서 등원은 같이 하원은 남편이 하고 있었지만 힘든 건 힘든 거니까. 그래서 고심 끝에 먼저 제안을 했다.


“그럼 네가 등원을 하고, 대신 나는 일찍 출근하고 하원을 하면 어때?”


문제는 내가 하원을 하려면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했다. 게다가 칼퇴를 해도 아이를 지금보다 30분이나 늦은 시간에 겨우 데리러 갈 수 있었다. 내가 하원을 맡는 방법은 우리 둘에겐 가장 비효율적인 방법이었기에 언제나 마지막에 고려되는 옵션이었지만, 내가 그런 제안을 해야 할 만큼 남편이 지쳐있었다.


여러 번 이런 제안을 하고, 남편은 조금 더 버텨보겠다고 하며 힘든 날들을 넘겨가던 어느 날. 그날도 나는 똑같은 제안을 하고 남편은 힘들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괜찮다고 했다.


휴.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건지 짜증 나면서도 매번 생각해서 하는 제안을 거절하는 게, 그러면서도 힘들어하는 게 보기가 안쓰러워서 날 선 말을 뱉었다.


“아니 그렇게 힘들다면서 왜 그렇게 고집을 피워?”


그러자 남편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답변이 나왔다.


“사실 나는 네가 힘들어서 공황장애가 재발할까봐 그렇게 하자고 못하겠어.”


남편이 힘들어도 계속 버텨보겠다고 했던 진짜 이유가, 내가 힘들어서 공황장애가 재발할까봐 라니. 생각지도 못한 답변에 순간 할 말을 잃어버렸다.




새별오름에서의 우리





공황장애 환자 아내를  남편의 마음

나는 공황장애 때문에 고생하면서도 내 고통만 생각했지, 옆에 있는 남편이 얼마나 힘들지, 내 몫의 힘듦까지 지고 있어야 할 만큼 힘들었을지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는 걸 그때야 처음 알았다.


근본적으로는 내가 아프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을 테고, 공황장애가 재발하면 우리 가족의 일상이 얼마나 많은 어려움과 고통과 불편함으로 채워질지 경험적으로 알고 있어서 더 그랬을 것이다.


남편의 말이 오래오래 마음에서 맴돌았다. 일할 때도, 쉴 때도, 아이를 볼 때도 생각났고, 남편이 나 몰래 했을 마음고생 또한 되새겨졌다.


그래서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아내를 둔 남편의 마음이 더 궁금해졌다. 내 아픔과 고통, 병원과 투약에 대해서만 얘기했었으니, 남편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남편에게 정식으로 인터뷰를 요청했다. 평소에 말수가 많지 않은 남편은 조금 걱정했지만 곧 승낙해주었다.




이제는  마음도 생각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환자가 보호자에게, 아내가 남편에게

자, 첫 번째 질문. 내가 공황장애 진단을 처음 받았을 때, 너는 어땠어?

: 그간 나타났던 증상들이(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어짐, 불면, 광장 공포증) 병으로 드러났구나, 원인이 확실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



그랬구나. 그럼 그 당시 내 상태는 어땠던 거 같아?

: 힘들었지. 힘든 현실과 싸우고 있었지. 퇴사를 하지 않으면 피할 수 없던 현실이었던 것 같아. 너무 지쳐있었고, 그러다가 정말 네가 쓰러질 것 같았어.



맞아. 버스 타고 출퇴근하다가 아무 데나 내려서 보이는 상가 건물 화장실로 뛰어들어가던 게 일상이었던 때였지. 네가 간접적으로 경험한 공황장애라는 병은 어떤 병인 것 같아?

: 원인이야 다양하겠지만, 자기 자신을 통제할 수 없게 되는 병인 것 같아.



음, 짧지만 정확한 설명인 것 같네. 내가 공황 증상을 보일 땐 기분이 어때?

: 사실 자기 자신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 옆에서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안타깝다는 감정이 제일 큰 것 같아. 마치 어린 아기가 우는 것 같아. 말이 안 통하니 아기가 뭘 원하는지 몰라서 서럽게 우는 아기를 보고만 있어야 하는 거 있잖아.



그땐 주변에서 해줄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아. 그냥 그 시간을 버티는 게 할 수 있는 전부니까. 그래도 내가 공황 증상을 보일 때 너는 어떻게 해주는 편인 것 같아?

: 일단은 당장 처한 상황에서 내가 해결해줄 수 있는 걸 해주려고 하지. 숨을 잘 못 쉴 땐 물을 떠주거나 창을 열어주고, 화장실이 급하면 최대한 가까운 거리에 있는 화장실을 찾으려고 하지. 어쨌든 내가 할 수 있는 한으로 진정시키려고 해. 그런데 네가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면 더 그 병에 늪처럼 빠져들 수 있겠단 생각이 들어서 일반인 대하듯 대한 적도 있었어.



3년 만에 임신하고 공황장애가 재발했잖아. 임신하고 약 먹기로 했을 땐 어땠어? 걱정이 많이 되진 않았어?

: 사실 걱정이 많이 됐고, 약을 안 먹었음 했지.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처방도 해줬고, 상담을 같이 받은 이후에는 약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납득했어. (물론 그래도 안 먹었음 했지 ㅎㅎ) 어쨌든 결론적으로는 산모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게 중요했으니 약을 먹는 게 맞았다는 생각이 들어.



맞아. 물론 그 약이 임산부가 먹어도 될 정도의 약이어서 큰 도움은 안되었지만 그래도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해. 그럼... 공황 증상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뭐야?

: 진단받기 전에 두 번째 공황발작이 왔을 때였던 것 같아. 네가 출근하다가 버스 정류장에 주저앉아서 전화했을 때. 난 이미 출근을 해버린 상태라 바로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무서웠어.



맞아. 나도 그때 기억나. 마치 만취해서 버스정류장에 겨우 몸을 기대고 있는 미친 여자처럼 보였을 거야. 아무도 말을 안 걸었거든 ㅎㅎ (이제 본론) 공황장애를 앓는 아내 때문에 가장 힘들 때는 언제야?

: 나는 기본적으로 너한테 스트레스를 덜어주려고 해. 평소엔 그게 힘들진 않은데, 가끔 나도 너무 힘들 때는 감당하기 어려울 때가 종종 있는 것 같아. 무슨 해결책이 있는지,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모르니... 이걸 완전히 떨쳐낼 방법은 정말 없는 건지. 그리고 너도 느끼겠지만 완전히 네 고통에 공감을 하기가 어려워. 이해한다기보다는 받아들인다는 느낌이거든. 그게 공황장애라는 병이 있는 사람과 그 가족에게 서로 가장 힘든 점이 아닌가 싶어. 가까운 사이인데도 공감이 안되니 말이야. 그리고... 신경정신과 약에 대한 막연한 우려? 잘 모르니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



맞아. 임신/출산처럼 공황장애는 겪어보지 않으면 전혀 공감할 수 없는 병인 것 같아. 그럼... 힘든 너에게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있을까?

: 네가 나한테 해줄 수 있는 건 없는 것 같아 ㅎㅎ 결국  자신과의 싸움이니 운동을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어. 전에 하던 필라테스를 해보는 건 어떨까? 그리고 ‘생각’하는 시간을 줄이는 것!



임신 전까진 열심히 했는데 나도 필라테스 못하는 건 너무 아쉬워. 자 그럼 마지막 질문.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가족이 있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 음... ‘평소처럼’ 최선을 다해 사랑하라는 것. 상대를 이해하려 하거나 이성적으로 접근하려 하지 말고, 스스로가 병에 매몰되지 않도록 환자 취급하기보단 평범하게 가족으로 대해주면 좋을 거 같아. 물론 증상이나 발작이 있으면 즉각 대처해줘야지. 증상이 나타날만한 상황을 늘 생각하고, 최대한 그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도록 일정이나 상황을 고려하는 건 필수인 것 같아.



공황발작이 처음 왔던 게 벌써 6년 전. 재발에 이은 재발에 이제는 남편도 나도 공황장애라는 병에 조금은 의연해진 것 같다.


공황장애를 겪는 환자는 언제 증상이 들이닥칠지 모르는 불안과 공황발작의 끔찍한 고통 때문에 자신의 고통에 매몰되기가 쉽고, 겉으로 보이는 병이 아니라서 남들이 이해하기도 어려워 외로운 병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편으로 곁에서 늘 그 불안을 함께 버텨주는 가족이 없었다면, 나는 남편 말대로 이 고통에 매몰되었을지도 모른다.


급하게 행선지를 돌려 화장실이 있을 만한 곳을 찾아주고, 바람을 쐴 수 있도록 창문을 열어주고, 마실 물을 챙겨주는 남편의 살가움과 예민함을 고맙게 여기며,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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