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밤 Jan 18. 2021

워킹맘에게 의외로 난감한 질문

‘주말에 잘 쉬었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출근이 더 좋습니다

직장인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금요일. 나도 워킹맘이 되기 전까진 금요일만 바라보며 살았다.



금요일 퇴근 후 좋아하는 김치 삼겹살 가게를 찾아가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안주삼아 밤늦게까지 남편과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고, 반려묘 짱구, 나르와 한 베개에 누워 고요히 늦잠을 자고, 주말엔 동네에 새로 생긴 카페에서 새로 사둔 책을 읽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서.



하지만 아이를 낳고 나서 맞이하는 주말, 휴일, 연휴에는 아이를 낳기 전에 내가 상상하던 모든 것을 할 수 없었다. 그저 365일 중 하루에 불과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출근하는 게 더 쉽고 편하다.




저녁 먹고 남는 시간에 책'이나' 읽던 호시절




감히 전쟁 같은 주말 육아

아이의 시간은 평일이고 주말이고 상관없이 규칙적으로 흐른다. 밤 9시에 잠들어서 새벽에 꼭 한 번은 깨어 엄마를 부르고, 아침 7시 30분이면 일어난다. 운이 좋으면 새벽에 깨지 않고 통잠을 자기도 하고, 30분 더 잘 때도 있지만 운이 좋을 때는 안타깝게도 많지 않다.



자, 그러면 깨어 있는 아침과 점심과 저녁 시간은 어떻게 보낼까?



말이 완전히 통하지 않고, 성인만큼의 경험이 없어 모든 사물에 호기심으로 다가가는 에너자이저와의 온전한 하루.



아무리 바빠도 커피 마실 짬, 가고 싶을 때 화장실 가는 짬, SNS를 할 짬이 있는 평일과는 완전히 배치되는 하루다.



아침, 점심, 저녁 세끼를 챙기고 중간중간 간식도 줘야 한다. 시도 때도 없이 '안아'를 외치는 아이를 가끔은 안아주고, 가끔은 안아주는 대신 다른 더 흥미로운 놀잇감을 제안한다. 실패하기라도 하면 아이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기 시작한다.



평일에 하지 못했던 집안 청소를 하면서, 아이와 놀아주고, 동시에 수시로 아이의 장난감과 책을 정리한다. 스케치북 하나라도 아무렇게나 펼쳐져 있으면 뛰어다니는 아이가 밟고 넘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혼이 빠지듯 아이와 한 몸이 되어 주말을 연달아 보내고 나면 월요일이 코앞에 와있다. 어린이집 가방과 빨아둔 낮잠이불을 싸서 식탁 위에 올려놓고 나면 아이의 월요일 준비는 끝난다.



그리고 그제야 우리 부부는 겨우 숨을 돌리고 주말을 마무리한다. (사실 마무리할 것도 없다.) 침대에 누워 어린이집 선생님들과 전업 육아를 담당하는 부모를 존경한다고 중얼거리면서.




휘적휘적 놀이터라도 나갈 수 있었던 때가 행복했다




"주말에 잘 쉬었어요?" 대신 듣고 싶은 말

주말 같지 않은 주말을 보낸 후, 어김없이 월요일 아침이 돌아왔다. 어린이집 가방과 낮잠이불, 각자의 가방을 짊어메고 세 사람 모두 출근을 하는 한 주의 시작.



"주말에 잘 쉬었어요?"



자리에 앉아 숨을 고르고 있으면 친절한 동료들과 상사 분은 인사를 건넨다.



처음엔 "네. 잘 쉬셨어요?"라고 인사치레를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인사치레로도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주말에 뭐했어요?"라는 인사에 팩트 그대로 애를 봤다고 답하면 "애기 엄마가 애 보는 건 당연한 거 아녜요?"라는 말을 들었다.



'아직 아이가 어려 육아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그 외에 내가 더 할 수 있는 게 정말 있는 걸까?' 나만 이렇게 주말 육아에 허덕이나 싶어 진지하게 내 역량에 대해 고민을 하기도 했다.



순수하고 친절한 인사말들의 기저에 주말은 '쉬는 시간'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하지만 워킹맘, 워킹파파에게는 일주일 중 가장 노동강도가 심한 '투잡을 뛰는 시간'이다.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도 없는 일이라 주말에 잘 쉬었냐고 묻는 아이 없는 동료들을 나는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육아를 하는 동료 직원에게 진짜 인사를 하고 싶다면, 월요일엔 잘 쉬었냐는 말 대신 “주말에 애보느라 고생 많았죠?”라는 인사를 건네면 좋겠다. 그 질문 자체가 대단한 위로이자, 힘들었던 주말을 잊고 월요일을 시작할 큰 힘이 된다. 



그 고생이 어떤 건지 몰라도 상관없다. 물어봐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어줄 수 있다. 진짜 안녕을 물을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퇴사로 ‘자연스럽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