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여자, 사람입니다'
나는 5인조 달리기 시합에서 언제나 4등만 하는 아이였다. 달리기는 못하는데 꼴찌는 죽도록 하기 싫어서 필사적으로 뛰었다. 체력장에서 목구멍으로 드나드는 공기가 싸늘할 때까지 뛰고 나면 ‘다시는 달리지 않으리라’ 증오에 차 다짐했다. 달리기가 싫었다.
열심히 해도 만년 4등이었으니 달릴 기회는 거의 없었고, 그렇게 달리기의 존재를 잊었다. 먼 훗날 첫 직장 퇴사를 앞두고 혼자 런던에 가기 전까지는 그랬다.
런던에선 언제 어디서나 달리는 사람들을 마주칠 수 있었다. 비가 오면 당연히 우산을 펼치는 관광객과 달리 러너들은 두 손으로 가볍게 후드를 쓴 뒤 신나게 달렸다. 런던에 있는 일주일 동안 수 없이 마주친 러너들. 평생 겨우 꼴찌를 면한 재능 없는 달리기 주자는 러너들이 마냥 신기했다.
런던 여행 후, 주변에 정기적으로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인스타그램에는 그날의 러닝을 인증하는 사진이 올라왔고, 무리를 이뤄 러닝을 하는 지인들도 생겼다. 책을 읽다가 달리기가 얼마나 좋은지에 대해 얘기하는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작가들도 종종 만났다.
"적어도 달리고 있는 동안은 누구와 얘기하지 않아도 괜찮고, 누구의 얘기도 듣지 않아도 된다. 그저 주위의 풍경을 바라보고, 자기 자신을 응시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이쯤 되니 정말 궁금해졌다. 달리는 사람들의 속내가.
그리고 우연히 서점 매대에서 책 '달리는 여자, 사람입니다'를 발견했다. 만년 4등이라는 순위에 가려 달리기의 진짜 매력을 알지 못했던 나에게, '달리는 여자 사람' 손민지 작가는 '이래도 안 달릴 거야?'라며 나를 달리기의 세계로 인도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을 읽어 나가는 동안, 달리는 사람의 마음이 내가 책을 읽는 마음과 같다는 걸 알게 됐다. 달리기를 싫어했던 나는 그렇게 달리기 예찬론자가 되었다.
"몸의 고통 앞에서 한낱 상념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돼버렸다. 이런 식으로 달릴 때마다 나는 단순하게 고통스러웠고, 모순적이게도 고통스러운 만큼 머릿속은 명쾌해졌다."
망각은 축복이라고 했다. 내가 독서를 하는 가장 큰 이유도 잊기 위해서다. 책을 펼치는 순간 현실의 복잡한 생각은 잠시 잊을 수 있다. 책을 읽는 시간만큼은 쉬지 않고 돌아가는 머릿속을 잠재우고, 흩어져있던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다.
달리기 또한 마찬가지다. 뛰는 동안 느끼는 몸의 고통 앞에 복잡한 생각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근육의 움직임과 호흡 외엔 생각할 틈이 없다.
달리고, 책을 읽는 아주 단순한 행위만으로도 단시간에 스스로 기분을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유도 없이 늘 불안해서 괴로운 나에게 희망적이었다.
"미로 같은 골목을 헤집고 다니면서 마주한 일상의 소박하고 다정한 풍경이 몸의 온도만큼 기분까지 데워준 것이다. 내딛는 걸음은 점점 씩씩해진다. 내가 원하면 어느 방향이든 갈 수 있고, 골목을 잘못 들어섰다면 다시 되돌아가면 된다."
책 읽기의 매력은 책만 있으면 어디서든 새로운 생각, 다양한 시선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요즘은 전자책도 있으니 사실상 휴대폰만 있으면 어디서든 독서를 즐길 수 있다.
비싸고 거추장스러운 장비도, 다른 사람의 도움도, 특별한 장소도 필요 없다. 그저 낯선 바르셀로나에서 러닝화 하나로 '러너'가 된 작가처럼 책만 있으면 된다. 가벼움과 단순함, 그것이 일상에 주는 활력은 생각보다 크다.
"달리기를 시작한 이래로 체득한 것은 재능이 있든 없든, 빠르게 달리든 천천히 달리든 상관없이 한 발 내디딘 만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남들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달리는 지도 나와는 상관없다."
우리는 달리기와 독서를 일종의 '레이스'로 배웠다. 달리기 '경주', 독서'왕' 시상. 언제나 누군가를 제쳐서 앞서 있어야 하고, 이해와는 상관없이 많이 읽은 것이 이기는 것이었다. 순위가 매겨지는 일이 즐거울 리 없다. 나에게 달리기가 그랬다.
달리기와 독서를 경주의 관점으로 보지 않아도 되는 사회인이 되고 나니, 그제야 달리기와 독서의 매력이 보였다. 달리기와 책 읽기는 숨쉬기만큼 단순하고 본능적인 행위여서 재능과 무관하게 계속 할 수 있다. 때로 권태기가 오면 잠시 쉬면 되고, 하고 싶을 때 다시 시작하면 된다. 누군가를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속도와 상태에 맞춰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달리기를 하면서 내가 흘린 땀과 내딛었던 한 발 한 발이, 1분 1초가 그대로 몸에 축적돼 근육으로, 지구력으로 쌓였다. ... 무언가를 성취한 경험은 노력을 믿게 만들어준다. 다른 분야에서도 나를 쉽게 지치지 않게 만들어준다. 분명 오늘보다는 내일 더 잘 달릴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막연히 내일의 나는 괜찮을 거라는 희망이 생긴다."
오늘 달린 시간과 거리는 오롯이 나의 기록이 되고, 쌓이면 나를 알 수 있는 소중한 데이터가 된다. 근육이 붙고, 지구력이 쌓인다. 책도 마찬가지다. 읽은 책들이 쌓일 때마다 영감과 좋은 문장들과 새로운 세상이 내 안에 쌓인다. 읽기 근육이 붙고, 생각이 풍부해진다.
어제보다 오늘 더 많이 뛰었다는 성취, 한 권 한 권 책을 읽어냈다는 성취. 내가 들인 노력만큼 조금 더 나은 내가 되는 작은 성취가 쌓이면 조금 더 큰 성취도 할 수 있는 힘이 된다. 무엇인가 바꿀 수 있고, 할 수 있다는 믿음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나만의 자산이 된다.
"몸을 사렸다가 꼭 필요한 곳에만 에너지를 쓰는 건 몸이 자연스럽게 익힌 생존 전략이었다. ... 나는 나 자신의 생존에만 전력을 다하느라 주위를 둘러보지 못했다. 체력이 일상을 받쳐주지 않는 날들이 지속될수록 나는 점점 신경질적이 되어갔다."
싸울 일 없이 연애하듯 사랑하기만 할 것 같던 우리 부부에게 아이가 생겼다. 밤낮 아이를 돌보느라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앉아서 졸던 때, 우리 부부는 가장 치열하게 싸웠다. 본능적인 필요도 채울 수 없을 만큼 여유가 없어서였다. 그랬다. 다정함은 여유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신기하게도 내가 다시 일을 시작하고, 아이와 일정 시간 떨어져 있으면서 싸울 일이 줄었다. 아이를 돌보며 우울했던 마음이 사라졌다. 아이의 움직임에 더 세세히 관심을 기울일 수 있었고, 더 많이 기뻐했다.
쓸 수 있는 에너지를 키우는 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히는 일은 내가 누릴 수 있는 삶의 기쁨의 양을 키우는 것과 같다. 나를 돌보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면 사소한 자극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고, 좁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이해 안 되는 일 투성이다. 체력을 길러주고, 더 다양한 세계를 접할 수 있게 해주는 달리기와 독서는 삶에서 느낄 수 있는 사랑의 감각과 크기를 키울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일지도 모른다.
'달리는 여자, 사람입니다'의 부제 '우리는 달릴 때마다 용감해진다'는 달리기와 독서의 유익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달리고, 읽을 때마다 용감해질 수 있다.
살아갈 용기가 필요하다면, 달리기를 혹은 책 읽기를 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남의 속도를 의식할 필요 없이 오로지 자신의 속도에 맞추면 된다. 그러면, 손민지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조금씩 용기를 얻게 될 것이다.
"한 발짝만 떼면 많은 것이 해결된다는 사실을 몸이 기억한다. 달리기 전의 두려움을 없애는 유일한 방법은 실제로 한 발짝 내딛고 보는 것뿐이었다. 내 몸에는 긴 시간 수많은 망설임에 저항했던 몸의 움직임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달리는 여자, 사람입니다 - 우리는 달릴 때마다 용감해진다', 손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