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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밤 Oct 11. 2022

고작 '김부각과 까치'에 감격했다

아이에게 받은 최고의 선물에 관하여

“눈물 어린 눈을 보면서 함께 운 적이 없었다. 단순한 웃음에도 그토록 기뻐한 적이 없었다.”

-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류시화



아이를 낳고 나서는 생일마다 부모의 마음을 떠올린다. 핏덩이인 나를 처음 안아보고 웃으며 울컥하며 미묘한 감정이 오갔을 20대 중반의 젊은 남녀. 둘 사이에 태어난 한 생명이 인생의 축을 완전히 바꾸었을 것이다. 나와 남편에게 아이가 그러했듯이.



30대 중반. 익숙한 것뿐인, 협소하기 짝이 없는 오만한 삶에서 아이를 통해 어쩌면 평생 보지 못했을 무언가를 발견한다. 아이의 네 살을 함께 겪으며 본 적 없는 나의 네 살을 그려보고, 그 아이를 두 살 터울 동생과 함께 키웠을 엄마 아빠를 그려본다.




돌도 안되었던 나를 스물다섯의 엄마가 안고 있다.




까치, 참새, 비행기 등 나는 것에 관심이 많아진 아이가 저녁 식사 시간에 김부각을 먹다 "까치 같아."라고 말했다. 까치가 날 듯 김부각 까치를 공중에서 움직였고, 자기가 닿을 수 있는 높이 끝까지 김부각을 쥔 손을 올리더니 "나무! 나무!"라고 외치며 나무에 앉았다고 표현했다.



그날 저녁, 어른 둘은 고작 ‘김부각과 까치’에 감동했다. 아이의 성장에, 그리고 아이를 통해 김부각을 까치로 볼 수 있는 새로운 세계에. 생후 21개월밖에 안된 아이의 시선엔 그전엔 알지 못했던, 혹은 잊어버렸을지도 모를 세계가 있었다. 아이가 성장할수록 그 세계는 점차 확장되어갔다.  



물에 떠있는 공을 보며 "공이 수영하고 있어!", 베이글을 먹어가며 "보름달", "반달", "초승달"을 얘기한다. 블록을 쌓다가 실수로 무너져도 울지 않고 "어? 무너졌네?" 하며 다시 새로운 놀이를 이어간다. 아이가 키를 쥔 놀이터의 흔들배를 타고 무서운 상어가 없어서 온갖 바닷속 동물들을 볼 수 있는 즐거움을 나눈다. 산책하며 발견할 수 있는 흔한 꽃과 나무 앞에 서서 "엄마, 하얀 꽃 예쁘지? 엄마는 어떤 색 꽃이 좋아?", "엄마 꽃 향기 맡아봐."하고 나의 답변을 기다린다. 함께 그림책을 읽으며 흰구름을 '구름 양산'이라고, 먹구름을 '먹구름 샤워'라고 상상해본다.



아이가 처음으로 “행복해”라는 말을 한 날을 기억한다. '행복이 뭔지 알고나 하는 얘기일까?' 싶다가도, 아이에게 행복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져서 질문을 던졌다.



“어떨 때 행복해? 엄마가 사랑한다고 말해줄 때?”

- “응. 행복해.”

“엄마가 안아줄 때는?”

- “행복해!”



아이가 '행복해'라는 말을 얻게 된 순간부터 나는 '아이가 행복하다고 더 자주 말했면 좋겠다, 더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욕심이 커졌다. 그리고 이런 마음으로 행복을 더 주고 싶었던 부모와 가족들과 좋은 사람들의 애씀이 오랜 기간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으리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내 힘으로는 한 번도 깨닫지 못했을, '나'라는 존재의 소중함이었다.



인용한 책 구절처럼, 나의 눈을 보며 같이 울었을, 까르륵 소리에 더 크게 웃었을 엄마와 아빠. 찰나의 웃음들과 수많은 눈물 속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사실은 나를 더 소중히 여기게 해줬고, '내가 잘해서 여기까지 왔다'는 교만 대신 겸손의 자리로 나를 이끌었다.



생후 5개월에 네가 보여준 미소


 

아이가 부모가 된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어쩌면, 이 새로운 세계일 것이다. 아이를 통해 아이의 눈높이로 새로운 세상을 본다. 나의 세계도 확장된다. 그리고 나도, 남편도, 타인들도 그렇게 소중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어린이라는 세계가 특별한 이유, 어린이가 어린이로서 존중받아야 할 이유, 이 세상에 어린이가 꼭 필요한 이유 아닐까.



부족한 부모를 늘 깨우쳐 주는 나의 작은 스승. 내 삶에 와줘서, 그리고 함께해줘서 정말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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