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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밤 Oct 08. 2022

내 것이 아니어서 내 맘대로 되지 않는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미국 총격사건의 대표로 꼽히는 '콜럼바인 총격 사건'(1999년)의 가해자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 수 클리볼드가 쓴 책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두꺼운 책의 표지는 해맑은 어린 딜런과 그런 딜런을 보고 있는 엄마 수의 사진이다. '가해자'라는 단어와 어린아이의 얼굴이 배치됐다. 이 아이는 어떻게 총격 사건의 가해자가 되었을까.



"리틀턴의 모든 엄마들이 그랬겠지만 나도 아들이 안전하길 빌고 있었다. 그런데 뉴스에서 스물다섯 명이 죽었다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나는 다른 기도를 했다. 딜런이 다른 사람들을 다치게 하거나 죽이는 일에 참여하고 있다면, 멈춰야 했다. 엄마로서 가장 힘든 기도였지만, 그래도 그 순간 내가 바랄 수 있는 최대의 자비는 내 아들의 안전이 아니라 죽음이라는 것을 알았다."
-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수 클리볼드



아이가 대량 학살자가 된 건 모두 부모가 아이를 방치한 잘못이라고 미국 전체가 손가락질했다. 몸과 마음을 다해 기르고 감싸고 사랑했던 딜런의 엄마로서의 삶은 '가장 비참한 방식'으로 끝났고, 그 평생의 사랑과 노력이 송두리째 부정당했다. 죽지 않고 산다면, 유령처럼 없는 듯 살아야 했다.



수는 가해자의 엄마인 동시에 자살 유가족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위험한 일이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게 어쩌면 더 쉬웠을지도 모를 가해자 엄마로서의 삶을 버텨낸 후, 수는 이렇게 말한다. "내 자식을 내가 모를 수 있다는 것. 아니 어쩌면, 자식을 아는 게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고.



책을 덮고 잠을 청하며 기도가 절로 나왔다. 남편과 아이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 내가 더 할 수 있는 건,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것뿐이라는 절박함이었다.



"기다려주는 것은 말하는 것보다 어렵다. 말하는 것보다 오래 걸린다. 한 사람이 바뀌는 걸 기다려주어야만, 그가 스스로 성장할 수 있다."
- <엄마는 괜찮아>, 김도윤



문득 휴대폰 사진첩을 보다가 아이의 앞모습보다 뒷모습이 훨씬 많다는 걸 깨달았다. 아마도 부모는 필연적으로 아이 앞이 아니라 뒤에서 아이의 속도에 맞춰 걸으며 지켜보고 기다리고 응원하는 존재라서 그런 게 아닐까 싶었다.



때론 아이 앞에서 아이의 움직임을 내 뜻대로 강요하고 싶다는 충동이 들 때도 있지만, 아이는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짧은 세월 동안 경험했기에 이제는 뒤에 서있기를 택했다. 무엇보다 부모의 짧은 상상력에 아이를 가두고 싶지 않았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은 아이가 '내 것', 내 소유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양육의 책임이 있는 부모는 매 순간 어떤 태도로 양육에 임할 것인지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 부모 된 자의 도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생애 가장 큰 기쁨, 그리고 그 기쁨보다 더 큰 슬픔을 안길 수 있는 아이가 있다는 건 두렵고 떨리는 일이다. 그렇기에 아이를 내 뜻대로 하고 싶을 때가 많다. 하지만 아이는 결국 '타인'이며 누구의 것도 아닌 그 아이의 것이다. 어렵지만 타인인 아이를 알아가려고 노력하고 타인으로 존중하며, 부모로서의 내 몫을 다해야지,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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