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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밤 Oct 28. 2021

아이가 같은 반 친구의 얼굴을 긁었다

새벽 4시에 손톱을 깎는 마음

아이가 같은 반 친구의 얼굴을 긁었다. 아이도 긁혀온 적이 있긴 하지만 애들끼리 놀다 보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방어적 태세를 보인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그 친구 부모의 마음을 생각하니 하원하고 돌아가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원장 선생님께 친구 부모님께 직접 전화해서 사과하고 싶다고 했더니 여러 이유들을 얘기하시며 말리셨다. 아쉬운 대로 약국에 가서 친구에게 전해줄 연고와 비타민, 간식거리를 사고, 같이 전달할 짧은 편지를 썼다.



부모가 다 안다고 생각해도 모르는 게 자식이고, 아무리 내가 일러준대도 자녀의 행동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편지를 써 내려가는 동안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나는 앞으로 살면서 이런 편지를 몇 번이나 쓰게 될까.



“OO이한테 왜 그랬어? 아무리 그 친구가 너를 힘들게 했다고 해도 때리는 건 안돼. 무슨 일이 있어도 때리면 절대 안 돼, 알았지?”



부모 마음 같아서는 이 교훈이 완전히 새겨질 때까지 얘기해주고 싶었지만, 내 얘기를 듣고 ‘네’라고 대답하는 아이에게 내 마음 편하자고 욕심을 부리는 것 같아 그만두었다.



아이도 친구에게 직접 미안하다고 했고, 아이는 겨우 2살짜리 아이니까.



손톱을 더 짧게 깎지 못한 내 잘못이었나. 형제가 없어서 그런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저 모든 게 부모 잘못인 것만 같았다.






아이 손톱은 깎기가 정말 어렵다. 손톱을 깎으려고만 하면 도망 다니기 때문에 잘 때나 깎을 수 있는데, 주말에 낮잠을 자지 않기 시작하면서 손톱을 깎을 시간은 겨우 아이가 곤히 잠든 밤 시간뿐이었다.



아이가 친구의 얼굴을 긁은 사건이 있은 후로 밤 12시든, 새벽 4시든 아이의 손톱을 깎는다. 라이트를 켠 휴대폰을 세운 무릎과 턱 사이에 고정하고, 조명이 아이의 눈에는 닿지 않게 각도를 조정한 다음 손톱을 조심히 깎아 내려간다.



새벽에 아이의 손톱을 깎고 있는 내 모습이 때론 서글프지만, 내 아이를 위해서라도 해야 할,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이니 불평 말고 한다.



아이가 크면 겨우 손톱 때문이 아니라 상상치 못한 사건들에 가해자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자식이 부모 마음처럼 크진 않을 것이다.



다만  아이가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무고한 이들이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부모로서의  역할을 계속 돌아보고, 아이들이 서로 피해자와 가해자가 되지 않아도 되는 안전한 세상을 만드는 데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내가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부모가 아이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은 어마어마하고, 그 의미를 축소함으로써 자신의 책임을 가볍게 만들어서는 안 되겠지만, 부모라고 해서 아이를 목표하고 계획한 대로 인도할 수단이나 권리를 가진 것은 아니다. ... 부모의 시야가 미치는 면적은 언제나 아이 삶의 영역보다 좁을 것이다. ... 나의 노력이 아이에게 가닿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하겠다는 마음."

- '시간은 없고, 잘하고는 싶고', 김성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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