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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책부록 Jun 09. 2019

<실패를 위한 시간들> 임현석

Saturday Writing Club 5기

 새 학기가 시작되면 곳곳에서 반가운 얼굴들을 마주한다. 병역의 의무, 취업 준비, 여행, 휴식 등등으로 한동안 안보이던 얼굴들을. 사람이 북적이는 휴게실에서 마주한 얼굴들에게 나는 항상 질문한다. 오랜만이다! 뭐하다가 왔어? 대답은 일관적이다. 병역의 의무, 취업 준비, 여행, 휴식 등등을 하고 왔어. 1년, 길게는 2년의 시간을 한 단어에 욱여넣는 걸 난 자주 본다. 그들은 자신의 시간을 특정한 형태로 압축시켜 전해야 하는 의무를 지는 것 같다. 그렇게 돌아온 이들에 의해 보람 혹은 희화화의 대상으로 전해지는 그간의 시간들은 사실 사람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큰 틀과 같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 그게 명목뿐이란 걸 알지만, 굳이 나서서 긁어 부스럼을 내는 일은 없다. 


 그러다 어느 수요일에 있던 동아리 모임에서 적어도 2년 반은 연락이 끊겼던 후배 형석을 만났다. 당연히 군대를 다녀오느라 그랬겠거니 싶은 마음으로 언제와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의외의 대답이 들려왔다. 2년 동안 음악하고 왔어. 군대는 나중에 가려고. 하하, 인생 조지고 왔지 뭐. 그렇다, 형석도 그간의 시간을 희화화 시켜 나에게 전달했다. 난 그 상황에서 통용되는 반응을 보였다.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우연히 그 형석과 둘이 가게 되었다. 오랜만에 학교로 돌아오니 어떤지, 여전히 같은 곳에서 살고있는지와 같은 일상적인 얘기를 주고 받으며 길을 걸었다. 근황을 주고받다 보니 자연스레 학교로 돌아오기 전의 이야기가 나왔고, 나는 형석의 ‘인생 조진 이야기’의 실체를 듣게 되었다.


 “휴학할 때 이런 생각을 했어. 학교 다니면서 흐지부지 할 바에 2년 빡세게 하고 음악으로 한 번 성공해보자. 성공하면 학교를 때려치고, 안되면 음악을 때려치자. 그렇게 음악하는 친구들이랑 부대끼면서 열심히 해봤는데, 내가 재능이 없나봐. 음반을 내도 별로 반응이 좋지 않더라고.”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형석은 음악을 관두지 않았다. 오히려 오기가 생긴 것 같아 보였다. 그리고 질문은 자연스레 나에게 향했다.


 “형은 뭐했어?”


 군대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게 시작한 일, 전역한 후에도 느리지만 꾸준히 계속 읽고 쓰고 있다는 것, 그러나 여의치 않다는 걸 전하고, 나는 그에게 나의 ‘음악’이 무엇인지 말했다.


 “난 소설을 쓰려고 해. 되게 의외 같겠지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근데 학기 중에 글을 꾸준히 쓰기가 쉽지 않아서, 올해 끝나고 휴학을 할까 생각 중이거든.”


 하지만 난 이미 학과 전과를 시도하려고 1학년을 두 번 보낸 뒤였다. 그러나 전과는 실패했다. 나에겐 두 번의 1학년 생활, 그리고 전과를 실패한 이력만이 남아버린 것이다. 그래서 망설여진다고, 취업에 흠이 될까 걱정된다고 했다. 실패했던 사람이 실패한 사람에게 계속해서 묻는다. 나 한 번 더 실패해도 될까? 그랬다가 영영 낙오자가 되는 거 아닐까? 실패의 경험이 나를 보장된 길로이끌려고 한다. 남들이 모두 가는 안전한 길로 이끌려고 한다. 그곳으로 향하는 끌림은 학교에 있을수록 강해진다. 같은 나이, 혹은 이른 나이에 취업을 하는 이들과 늦은 나이에도 학교에 남아있는 이들을 보며, 그들과 나를 저울질하며, 나는 상품으로서 나를 바라본다. 감성과 이성, 사랑과 우정, 문학과 음악, 여유와 휴식 따위가 그곳엔 없다. 나에게 취업 외의 가치들이 스스로 부정당하고 있다. 


 실패의 기억은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지만, 여전히 생애 최악의 시간들이 문득 문득 생각난다. 그때의 내가 얼마나 초라했는지에 대해 나는 생각한다. 응원하는 이들의 마음이 부담으로 느껴졌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 위해 게임에 매달렸던 시간들이. 실패에 대한 역사가 일관된 방향을 지시한다. 그러나 그 방향은 성공으로 향하는 길일까? 좋은 기계가 되어 매일 같이 일을 하고 돈을 받는 게 성공일까? 다른 길로 빠져버린 이들을 보며 저렇게 되지 않아서 다행이라며 스스로의 위안 거리로 삼아버리는 게 성공일까? 그럼 실패는 무엇인가? 남들보다 뒤쳐진 게 실패일까, 보장된 길로 쉬지 않고 달리는 게 실패일까. 그렇게 고민하다 며칠 뒤에 나는 휴게실에서 형석을 만났다. 그는 상기된 표정으로 말한다.


 “다음 주에 일본에서 내 음반이 발간되기로 했어.”


 난 성공의 장에서 실패의 소식을 들으며 부끄러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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