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책부록 Jun 09. 2019

<Untitled> 이재연

Saturday Writing Club 5기

 긴 연애를 끝내고 난 뒤 가끔 조용한 카카오톡이 원망스러울 때가 있다. 

물론 이건 내가 선택한 고요함이지만. 그래도 때로는 누군가 내게 의미 없는 메시지라도 보내주면 마음 한켠이 조금 데워질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하필 약속이 없는 금요일 모든 음식점의 창문마다 시끌시끌함이 묻어있을 때. 왠지 서러운 기분이 들기 시작할 때 타이밍 맞게 말이다. 하지만 내 상상력은 너무 뛰어난 편인지, 그의 기대를 만족시켜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나는 원래 계획대로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간다.

 내 카카오톡이 조용해진 데에는 이유가 있다. 

더 이상 그 사람에게 내 사정을 설명하기가 싫어질 때, 나는 힘든데 자꾸 귀찮게 할 때, 혹은 연인도 아니면서 연인 사이에나 어울릴 법한 책임감을 종용할 때, 아무튼 어떤 점에서든 더 이상 감정 낭비를 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모두 차단해버린 까닭이다. 


 카카오톡에 싫은 사람을 없애는 법은 생각보다도 쉬운 편이다. 차단하고 싶은 상대의 프로필을 오른쪽으로 쭉 밀어서 차단 버튼을 누르면 끝이다. 차단하는 게 너무 쉬웠던 것 같아서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확인해봤더니 흔하디 흔한 '상대방을 차단하시겠습니까? '라는 확인 멘트도 나오지 않았다. 

역시나. 

어쩌면 이별의 끝도 인연의 끝도 친구 사이의 그것도 어쩌면 카카오톡 차단에서 시작되는지도 몰랐다.




 지난번에는 술자리가 무르익고 한차례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이제는 술기운에 취해 이런저런 얘기를 해도 되는 시간이 되었다고 다들 생각할 무렵에 누군가 소개팅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난 소개팅만 하면 잘 되는 꼴이 없어, 라고. 그렇게 새벽 1 시에 딱 맞는 주제인 연애로 대화는 자연스럽게 흘러갔고 연애에 대해서는 누구나 할 얘기가 많은 법이라서 술자리는 갑자기 시끌시끌해졌다. 


 너 요즘 연애는 잘 되냐?

 아니 죽겠어

 너는 괜찮고?

 나도 잘 안 되는데.. 아..난 잘 될뻔했는데 잘 안됐어


 누군가는 자기를 마음에 안 들어 하던 사람의 얘기를 했고 누군가는 자기가 마음에 안 들던 사람 얘기를 했다.



 누군가 갑자기 질문을 던졌고 친구들은 차례 차례 자기의 생각을 얘기했다. 

근데 소개팅에서 마음에 안 들 경우 있잖아, 그럴 때는 연락을 어떻게 해? 죄송한데 제 스타일이 아니셔서요~ 뭐 이런 식으로 연락해? 야 그게 오히려 더 상처 아니야? 난 그냥 서서히 대화 빈도 줄여가면서 연락 끊는데.


 나는 좀 얘기하다가 그냥 차단해 잠수타는 거지 뭐. 

일순간 분위기가 싸해졌다. 쟤 진짜 잔인한 애야, 진짜 너 은근 독한 데가 있다며 이런저런 얘기들이 흘러나왔다. 



 잔인한 방법인가? 혼자서 속으로 갸우뚱했다. 

25 년 인생을 살아오면서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잠수를 타 봤는데 어릴 때일수록 그 빈도는 잦았고, 잠수라는 거에 더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다. 한때는 힘든 연애라는 부분에서 그래도 책임감 있게 잠수를 타지 않을 때, 말로 행동으로 직접 부딪히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갈 때 '그래 내가 이젠 적어도 잠수는 안타!' 하면서 뿌듯해할 무렵도 있었다. 그렇지만 직접 만나는 순간 내 마음은 약해지고 괜히 상대의 입장을 한 번 더 생각하고 그렇게

소모적으로 생각하고 생각에 생각을 하고 나를 갉아먹는 순간이 잦아질 때 그냥 그런 사람들을 손쉽게 인생에서 차단해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그리고 다시 자연스럽게 잠수와 차단. 

사람은 아니 나라는 사람은 역지사지를 잘 못하는 편이라 직접 당해봐야 비로소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곤 하는데 얼마 전 차단을 당하는 사람의 입장을 이해해볼 일이 생기긴 했었다. 누군가 나를 차단하고 잠수를 타버린 것이다. 


 내가 잠수 타는 건 '응. 나 너한테 더 이상 내 줄 시간 없으니까, 이 정도 잠수 탔으면 알아 들었으면 좋겠어 규규 ' 이런 의미라고 무겁게 생각할 필요 전혀 없는데, 왜 그렇게들 상처를 받지? 하고 당당하게 말하고 다녔지만 막상 내가 호감이 있던 상대가 잠수를 타니 생각보다도 신경이 쓰였다. 좋아하는 사람이 잠수를 타버리니까 나를 싫어해서, 내가 더 이상 마음에 들지 않아서 연락을 하지 않나 보다, 라는 생각으로 이어지는 사고회로가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내 일이 되어보니 정상적인 사고 회로는 마비가 되고 '어디 아픈가? 죽었나? 사고가 났나? 아파서 죽어버렸나 설마?'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아, 잠수가 최악인 이유는 무슨 일이 있는지 계속 생각하기 때문이구나 아픈가, 부모님이 아프신가, 집에 무슨 일이 있는 걸까. 하지만 항상 걱정이 무색하게도 상대에게 별일은 없다. 상대의 마음에 별일이 생긴 것일 뿐. 


그제서야

대답을 하지 않는 것도 대답

선택을 하지 않는 것도 선택

답장을 하지 않는 것도 답장이라는


내가 그렇게도 당당하게 말했던 불변의 진리들이 생각나는 것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실패를 위한 시간들> 임현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