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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일 Dec 07. 2023

출산부터 버라이어티 했던 너

둘째의 출산스토리

출산부터 인상깊었던 너의 존재



첫째 때는 가진통없이 진통이 한 번에 왔었고, 24시간 진통을 했기에 병원진들의 느긋한 준비와 해피가스, 모르핀, 무통을 순서대로 다 맞았었다.


*호주는 처음부터 무통을 주지 않는다. 달라고 소리질러도 느긋하게 순서대로 진행하는 착실한 나라*


둘째는 확실히 다르게 그날 아침부터 서서 움직일 때마다 뭔가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밤 10시부터 규칙적인 진통시작. 그런데 참을만한 진통이어서 이게 가진통인가 긴가민가했고, 첫째를 이 새벽에 누군가에게 맡길 수가 없어서 아침까지 버티기로 했다.


부디 그때까지 안 나와주길 빌면서..


밤 12시가 넘어가니 진통 간격이 줄어들었고 고통이 심상치 않았으나 아니라고 부정하며 버티다가,

새벽 2시경 '이건 아니다.. 이러다가 나오겠다'


남편을 깨워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때까지 첫째를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서 그냥 애를 깨워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코로나로 인해 병원입구가 다 막히고 응급실 쪽만 열려있어 완전 배를 부여잡고 그 추운데 유모차를 끌며 병원 한 바퀴를 돌고 고생도 그런 개고생이 없었다. 그냥 빨리 올걸 땅을 치고 후회...


병원도착해서 애 나올 거 같다고 분만실 들어가니 새벽 3시 반.. 진통 때문에 죽겠는데 첫째가 아파하는 나를 보고 불안해할까 봐 맘껏 아파하지도 못하겠어서 결국 아시는 분께 sos. 남편이 첫째를 아는 집에 맡기고 오는 동안 혼자 진통을 시작했다.


남자직원이 있었는데 어찌나 성심성의껏 위로하고, 케어해주고, 진통할 때 손잡아주고, 물 갖다 주고.. 잘하고 있다고 응원해주고 하던지.. 알고 보니 미드와이프였었다. 호주는 출산을 의사가 아닌 미드와이프(조산사)와 함께하는데 남자 미드와이프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고정관념이 깨졌던 순간..

진통 올 때마다 그 아저씨 팔이랑 손을 엄청 비틀었는데 정말 미안하고 고마웠다.




미드와이프와 함께한 출산


총 2명의 미드와이프가 나의 출산을 함께했다. 엄마 나이되시는 여성분과 처음 나를 지극정성으로 케어해주셨던 중년의 남성분.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는 건 그 여자분이 울부짖는 나를 꼭 안으며 등을 쓰다듬어주면서,


“괜찮아, 너 정말 잘하고 있어.. 와우~ 멋진 진통이 오고 있네! 좋은 신호야. 넌 정말 최고의 엄마야”


계속 긍정적인 메시지를 주는 게 얼마나 힘이 되고 위로가 되던지.. 정말 눈물 나게 고마웠다.


(출처: 픽사베이)




새벽 4시경. 내진했을 때 이미 7센티가 열렸다. 무통 못 맞을까 봐 걱정되기 시작해서 에피듀럴(무통주사) 언제 오냐고 백만 번 물어본 거 같다. 지금 오고 있다며 걱정 말라고 다정하게 말해줘서 안심했으나 진통이 첫째 때 느꼈던 거와는 차원이 달랐다.


'이건 아니다.. 이건 나온다.. 나 무통 못 맞을 거 같다..' 그 순간 푸쉬하고 싶어졌다!!


어떡하나 무섭다 무통맞기전에 나오면 어쩌지 너무 아플거 같은데.. 오만가지 생각의 소용돌이...

무통이 왔다며 진통이 왔다가는 순간 앉아서 등을 구부리고 주사를 맞으려고 하는데 애가 나올라한다?!!

보통 무통 맞을 때는 움직이면 안돼서 버티지 않으면 못 맞는다는 생각에 진통이 오면서 애가 나올라하는 걸 막으면서 맞았다.


“don’t push! don’t push!, you can do it”


이러면서 미드와이프가 애 나오는걸 손으로 막아주고, 무통 맞자마자 푸쉬시작. 당연히 약 빨 들기 전이라 그냥 쌩으로 낳았다. 다행인 건 애가 나오기 전에 약이 들면서 밑에 아픔이 느껴지진 않았다. 아픔만 안 느껴졌을 뿐 애머리 팔 몸통 나오는 부분 부분 다 느껴졌다. 이런 느낌이었구나....


이 모든 과정이 2시간 만에 완료됐다.

나중에 퇴원할 때 안 사실인데 무통은 테스트용만 들어갔다한다…. 띠로리~ 어쩐지..


정말 그 두 명의 미드와이프에게 감사했다. 첫째 때는 미드와이프의 도움이 크지 않았었고

“나 언제 푸쉬해?” 했을 때 “네가 하고 싶을 때 알아 서하면 돼”라고 해서 황당했었는데, (이제는 하고 싶을 때 푸쉬하라는 말이 뭔지 알게 됨) 이번에는 두 명이 아니었으면 난 버틸 수 없었을 것 같다. 너무 감사해서 눈물이 주르륵






아이를 하나 낳은 것과 둘을 낳은 것의 심리적 부담감은 좀 다른 것 같다. 특히 정서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곳이 아무도 없는 이 타국에서… 성치 않은 몸으로 출산 후 바로 퇴원해서 맞딱들이는 이 현실은.. 조금 버겁다. 허나 아이들을 보면 조금이지만 버틸 수 있는 힘이 주어진다. 신기하면서도 이렇게 힘을 낼 수밖에 없는 현실 또한 슬프다.


이런 버거운 심리적현실에 아이가 아토피이기까지 하다니, 지금까지 버틴 내가 대견스러우면서도 이 고생스러움과 힘듦을 글로 공유하며 위로를 받기도, 나와 같은 엄마에게 위로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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