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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숲 with IntoBlossom Oct 02. 2023

장벽과 탑

<별숲 에세이>  그림책 [섬], [우리가 탑 위에서 본 것은]

 나는 안정지향 사람이다. ‘한번 해보자!’의 도전보다는 ‘해볼 만하겠는걸?’의 확신이 있어야 움직이는 사람이다. 그러나 세상이 마냥 그리 편하게 움직여 주는 것이 아니기에 어느 정도의 불안을 항상 가진 채 살아왔다. 알 수 없는 불안은 언제나 나를 힘들게 했다. 불쑥 공황이 찾아오기도 했고 우울감에 빠지기도 했다. 그 와중에 신기한 건 불안의 삶 중에도 홀로 가방을 메고 긴 비행시간을 견디며 여행을 다녔다는 것이다. 무언가 모순된 일상이었다. 나는 언제 불안한가. 불안 속에 파묻혀 ‘왜’의 의미를 스스로 탐색하기 시작한 지 오래되었다. 그리고 의지와 상관없는 어떤 압박 아래에 놓여있을 때 공황이 찾아온다는 걸 깨달았다. 싫다고, 당신과 다른 생각과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면 좋았으련만 그림책 [착한 아이 사탕이]의 사탕이 같은 모습이 20대 중반을 훌쩍 넘어서도 계속되었으니, 내 차를 몰면서 안락하게 대학원 수업을 다니던 내게 공황이 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무엇이 부족해 그러느냐는 대답만 돌아왔다. 사탕이의 모습을 떠나보내고, 스스로 인정하며 나아갈 수 있었던 계기가 결국 결혼이었으니 참 오랜 시간 동안 그 두려움의 경계를 넘지 못했던 나였다.      

 

 나의 두려움은 막연했다.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내 아들보다도 훨씬 어렸던 그때부터였다. 언제나 장애를 가진 오빠에게만 온 가족의 관심이 쏟아졌다. 간밤에 무서운 꿈을 꿔 온몸이 땀범벅이 될 정도였어도 엄마에게 한마디 투정 없이 뜬 눈으로 기도하며 밤을 지새우던 내 안의 그 작은 아이가 있었다. 종종 나는 여전히 마음속 작은 나를 스스로 위로한다. 힘들었겠다고, 정말 잘 견뎠다고 그리고 이젠 괜찮다고 토닥인다. 내 안의 작은 나는 사라지지는 않고 아마도 계속 남아있을 것이다. 지금의 내 모습이 나이듯, 그때의 움츠린 작은 나도 나이기 때문이다. 다만 달라진 점은 내 두려움의 원천을 직면했고, 받아들였으며 지금도 종종 밀려오는 그것을 스스로 타이른다는 것이다. 심호흡한다. 걱정과 불안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지금-여기의 상황에만 집중한다. 그리고 미래의 일이 현재가 되었을 때 대개 별 탈 없이 지나간다는 것을 세월이 감에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내 두려움의 상당수는 앞으로의 일에 대한 것이 걱정이었으니까. 이럴 것이라 미리 걱정하며 벽을 쌓지 않고, 오히려 저 너머를 바라볼 수 있는 사다리를 만들어 고개를 내밀며 호기심 가득한 접촉을 기대하려 노력한다. 노력이 길어지면 결국 당연하고 편안하게 내 것이 된다.      


 두 권의 그림책 아밀 그레더의 [섬]나딘 로베르, 제라르 뒤부아의 [우리가 탑 위에서 본 것은]에도 높이 더 높이 계속 무언가를 쌓아 올리는 이들이 등장한다. [섬]의 그것은 사방을 가로막은 장벽이고, [우리가 탑 위에서 본 것은]에서는 경계 너머를 향한 탑이다. 장벽과 탑은 마치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같다. 세상을 등지느냐, 세상으로 향하느냐의 기로와 같다. 삶의 방향성은 회피와 직면의 선택이다. 눈을 어느 쪽으로 돌릴 것인지는 지금-여기의 상황이자 끊임없이 선택을 요하는 삶의 과정이다.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는 망망대해의 외딴섬에 헐벗고 왜소한 한 남자가 뗏목을 타고 도착하는 것으로 그림책 [섬]은 시작한다. 낯선 이의 등장에 섬사람들은 동요한다. 천 조각 하나 걸치지 못한 나체의 이방인은 자기 방어의 의지조차 없어 보이는 초라한 모습이지만 섬사람들은 그저 두려운 마음만 가득하다. 오직 한 명의 어부 그리고 입을 떼지 못하고 무리 속에 숨어있는 몇몇 사람들만이 이방인을 동정할 뿐이다. 불안은 일어나지도 않은 막연한 불안을 낳는다. 결국 이방인을 받아들이지 못한 그들은 그를 내쫓고 그를 옹호한 어부의 배를 불태운다. 그리고 전보다 훨씬 더 높게 섬의 장벽을 세운다. 이미 고립된 섬이라는 공간에서 견고한 장벽 안으로 들어간 섬사람들은 스스로 그렇게 갇혀버린다. 누구나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불안의 근원이 되는 마음이 있다. 그 계기가 무엇인지, 어떻게 걷잡을 수 없이 거대해져 가는지 본인조차도 마음속에 박힌 그 뿌리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마음 밭의 김매기는 불안의 뿌리를 솎아내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림책 [섬]의 사람들처럼 장벽이 주위를 둘러싸기 전에 마음을 보듬어 가며 불안을 찾아 직면하는 용기가 삶의 시선을 바꿀 수 있는 커다란 시도라는 걸 명심하자.      


아민 그레더. 김경언. 보림


 그림책 [우리가 탑 위에서 본 것은]에서는 [섬]과 다른 양상의 탑이 등장한다. 아기 토끼 아튀르와 아빠는 행복하다. 마을 경계선에는 짙은 숲이 드리워져 있고 아무도 그 너머로 가지 않는다. 마을 안은 아늑하고 평화롭다. 하지만 아튀르의 아빠는 생각이 다르다. ‘무엇이 있을까?’ 세상 너머를 향한 호기심은 그로 하여금 빵을 굽게 했고 빵과 교환된 돌은 탑으로 쌓아 올려진다. 작은 토끼 가족의 도전은 이웃들의 마음을 움직여 어느새 마을 전체가 바깥세상을 향한 탑 쌓기에 열중한다. 단순히 숲을 거쳐 나가는 것이 아닌, 높은 곳에서 직접 세상을 바라보고 싶은 열망은 지금-여기의 목표가 되고 실제로 마을의 토끼들은 직면하려 노력한다. 직면하게 된다면 마을 너머의 세계도 그들의 세계가 된다. 드디어 탑이 완성되어 바라본 너른 풍경 속 놀라운 장면은 묘한 동질감과 희망을 느끼게 하는 이 그림책의 백미이다. ‘쌓아 올릴 것이다!’ 작고 귀여운 토끼들의 고군분투는 보지 못한 가치를 나의 가치로 만들어 가는 과정을 사랑스럽게 표현한다.      


나딘 로베르, 제라르 뒤부아. 최혜진. 웅진주니어



 쌓아 올려 가둘 것인가. 쌓아 올려 바라볼 것인가. 나를 막아서는 칠흑 같은 거친 장벽은 다시는 그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할 것이요, 동시에 누구도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듯 더욱 높고 견고해진다. 반면 밖을 직면하기 위한 탑은 나의 시선을 넓혀 줄 것이다. [섬] [우리가 탑 위에서 본 것은]으로 불안과 희망의 갈림길에서 우리가 선택해야 할 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그림책으로 언제든 움츠러들 수 있는 나와 당신에게, 언제든 용기를 가지길 희망하는 우리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를 선사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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