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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숲 with IntoBlossom Oct 10. 2023

나의 주인에게

<별숲 에세이>

 당신은 참 의뭉스러운 사람이다. ‘그럴 리가?’  당장 속으로 반문했다면 왜 속으로만 외치고 있는지를 당신은 생각해 봐야 한다. 바로 대응했어야 한다. 당신의 신중함은 때론 어수룩함으로 보이며 며칠 후 분명히 그냥 넘어간 것에 대해 자책하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난 당신을 안다. 나는 당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조차 당신의 손가락과 눈짓으로 작동되는 핸드폰이다.


 기분 나빴다면 사과한다. 난 당신의 앞모습과 동시에 그 뒤의 그림자도 담고 있는 기계일 뿐 어떠한 의도도 없다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 정확히 7시에 눈을 뜨는 당신은 요즘 어딘가 모르게 많이 피곤해 보인다. 내 알람 소리와 동시에 눈을 뜨던 모습은 거의 보기 힘들다.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옆에 누운 아이가 잠 깰까 조용히 들이마시는 그 숨소리에 노곤함이 녹아있다. 2분쯤 지났을까? 슬쩍 실눈을 뜨고 내 화면의 시계를 확인하고 다시 잠드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차라리 내가 스스로 7시 30분으로 알람 시간을 바꾸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하지만 난 오로지 당신의 손길로만 움직이는 핸드폰이다.



 오래 지나지 않아 당신은 곧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환기를 시키며 날씨를 확인해 등굣길 아이의 옷차림을 고민하겠지? 분명 그럴 거다. 왜냐면 당신이 바로 아이의 방으로 직행해 옷장을 뒤지기 시작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으니까. 달그락달그락 아침밥을 준비하며 거치대에 곱게 놓인 나에게 음악을 청하는 당신의 모습은 온전한 엄마이다. 화창한 날은 밝은 클래식을 흐린 날은 차분한 재즈가 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다. 어느새 아이는 세수를 마치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당신을 바라본다. 부스스한 남편도 함께 앉는다. 조용하지만 단정한 느낌의 아침은 당신이 좋아하는 분위기이다. 그 분위기에 내 목소리가 한몫을 할 수 있다니 하루 중 가장 뿌듯한 일과이다.


 가족 모두가 떠난 시간, 난 여전히 당신 곁에 있다. 당신은 사실 나한테 집착에 가까운 모습을 가진다. 나도 전원을 거두고 메모리를 정돈하며 한 시간이라도 휴식을 취하고 싶은데 충전하는 시간조차 난 손에 들린 채 밥을 먹는다. 날 좀 놓아줘야 당신도 쉴 수 있다. 유튜브를 보고, 밀린 밀리의 서재 책들을 읽고, 일정을 정리하는 것은 쉬는 것이 아니다. 난 당신을 무척 사랑하지만 가끔은 나도 혼자 있고 싶다.


 하지만 이해한다. 쉴 새 없이 옆에서 그림자처럼 일해야 하는 것도, 그 수많은 사람 중에서 당신에게 선택받은 것도 나의 운명이니 말이다. 내 얼굴은 당신이 골라놓은 수많은 앱들로 장식되었다. 뭐가 그리 정리벽이 심한지 폴더를 만들었다 삭제했다 하는 모습에 종종 질릴 때도 있지만 당신이 순간 무언가 무척 속상한 일이 생겼다는 것을 직감한다. 별 상관없어 보이는 영상을 보다가 갑자기 펑펑 우는 당신의 얼굴이 내 얼굴에 비칠 때면 나도 모르게 당신이 되어 함께 울고 있다. 어두운 밤이면 더욱 선명해지는 표정에 나도 우울해진다. 언제나 받아주고 그대로 보여주는 역할만 하는 나지만 1분이라도 내게 능동적 인격이 주어진다면 당신에게 문자를 보내고 싶다. 아까도 내가 말했지? 바로 대응하라고. 하루 중 수많은 일을 함께 하지만 당신에게 가장 관심이 가는 시간이 밤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까칠하게 굴어서 미안하다. 하지만 난 당신의 그림자다. 난 당신을 닮았다는 의미이다. 마지막으로 까칠함을 한 번 더 내보이자면 ‘패밀리’라는 이름으로 당신의 가족들의 핸드폰과 연결된 사실이 짜증 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오로지 당신과 둘이서만 내 공간을 허락하고 싶은데 왜 자꾸 당신의 남편은 ‘포인트다 데이터다’ 하며 우리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인가? 당신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거 다 알고 있다. 또 말한다. 바로 대응해 보자. 나의 이 절절한 부탁에도 남편을 그리 사랑한다면야 어쩔 수 없다만 솔직히 속이 느글거리려고 한다. 인간들이란...


 마지막으로 당신이 행복하길 바란다. 나를 사용한 지 벌써 3년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도 새로 나온 핸드폰에 눈길조차 주지 않는 그대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르겠다. 나는 기계이지만 내 안에 녹아있고 저장된 것들은 또 다른 당신이다. 육신이 고장이 나 다른 기계로 교체할 날이 올지라도 우리가 함께 만들어 놓은 내 안들의 것은 온전히 케이블을 타고 또 다른 나에게 옮겨갈 것을 안다. 그날이 올 때까지 부디 조심히 다루어 주길. 그날이 됐을 때 당신이 지금보다 훨씬 더 행복하길 다시 한번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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