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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별연두 Mar 20. 2019

졸작이라도 괜찮아

일단, 끊임없이 써 보련다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졸작을 쓸 권리가 있다."라고만 하자. 그저 많은 글을 쓰겠다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라. ... 중략... 그리고 이것을 지키지 못할 때도 스스로를 심판하거나 불안해하지 않으려 한다. 자신의 이상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에 몇 안 되지 않은가.         

-나탈리 골드버그,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에서 발췌


Photo by Alejandro Alvarez @ Unsplash

오늘도 퇴근 후 글을 쓰는 중이다. 항상 저녁 18시 반에서 19시 반사이엔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칼퇴 하는 날이면 까만색 롱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카페로 달려간다. 갈색 탁자 위로 노트북을 꺼낸다. 타닥타닥타닥 노트북 자판을 현란하게 두드린다.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땐 허공을 째려보면서 마음속 잡동사니들을 헤집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한다.


19시 30분. 띠리리. 띠리리. 띠리리. ♪


핸드폰 알람이 울린다. 자리 이용을 위해 주문했던 아메리카노는 원샷이다. 탁자 위에 어질러놓은 책, 연필, 노트북을 가방에 쓸어 담는다. 20시면 베이비시터가 퇴근을 하므로 그 시간까지 집에 가야 한다. 이후엔 추가 요금이 발생하니까. 춥지 않은 날이나 유난히 지출이 많았던 날은 카페 말고 지하철역 쉼터나 회사 로비 구석도 종종 애용한다.


글쓰기모임이 9주 차에 접어들었다. 한 주쯤 글을 쓰지 않는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매주 글을 제시간에 제출하기 위해 전전긍긍한다. 혼자 노트북 앞에 앉아 원 맨 쇼를 한다. 입이 귀에 걸리고, 눈물을 흘리고, 잘 써지지 않아 끙끙거리기도 한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글쓰기를 하고 있는 걸까? 없는 시간 쪼개가며, 때론 장소를 막론하고까지 글을 쓰고 있는 걸까?


1. 나를 알다

그동안 엄마가 미워 거리를 두었다. 엄마와 만나면 원망의 기억이 줄줄이 비엔나소시지처럼 연이어 떠올라 마음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8주 차에 나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면서 알게 되었다. 엄마가 밉지만 동시에 엄마를 몹시 사랑하는 내가 느껴졌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몇 십 년이 지나도 이 마음을 인정하지 않았을 것 같다. 내 마음은 내가 제일 잘 안다고 여겼지만, 의외로 나는 나를 온전히 인지하고 있지 못했다. 일상을 살다 보면 앞뒤가 좀 안 맞는 생각도 맞는 것처럼 여기며 살고는 한다. 하지만 앞뒤가 안 맞는 생각들을 글로 써보면 이가 맞지 않는 부분이 눈에 보이게 된다. 엄마가 미워서 최대한 마주치지 않으려고 하는데 난 왜 엄마와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음에도 고통받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 마음인데도 말이다. 고통스러운 감정의 근원을 찾기 위해 나를 한계까지 밀어붙여서 마음의 바닥까지 긁어내야 했다. 이 과정 속에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 글쓰기는 나 자신을 온전히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2. 너를 알다

나를 탐구하다 보면 자연스레 주변 사람들에 대해 돌아봐야 하는 시간이 찾아왔다. 엄마를 향한 원망이라는 감정을 파헤치는 동안 나는 나뿐 아니라 '역지사지' 엄마의 입장을 돌아보아야만 했다. 엄마가 어떤 성격이고 어떤 상황이었기에 나한테 그런 모습을 보였는지를 이해해야 했다. 이 외에도 남편에 대한 에피소드를 쓰면서 남편의 입장이 되어 보기도 했고, 사수에 대한 이야기를 쓸 땐 사수의 입장이 되어 보기도 했다.  너(엄마, 남편, 사수 등)에 대한 에피소드를 독자에게 발행하기 위해서는 내 입장에서만 편파적으로 너를 재단할 수는 없었다. 객관적이고 균형잡힌 시선을 갖추는 것이 필요했다. 그저 내 입장에서 느낀 일방적인 감정을 왁- 하고 쏟아내버리면 글쓰기 자체는 좀 수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경우, 자칫 글을 읽는 독자가 나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 버릴 수 있었다.


3. 세상을 알아가다

또한 글을 쓰면서부터는 꼭 주변 사람이 아니어도 내가 아닌 남 즉, 세상 사람들의 생각도 궁금해졌다. 쓰고자 하는 주제에 대해 남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 주제 관련 정보들도 찾아보게 되었다. 각종 SNS, 신문기사를 찾아보고 독서를 하게 되었다. 우물 안 개구리였던 나의 관심 영역이 확장이 되었다.


루틴 한 일상을 살아가면서 삶이 무색무취하게 변해가는 중이었다. 늘 같은 일상을 견뎌내야 하는 삶의 무게에 짓눌리고 있었다. 그러다 주변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에 무감각해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나의 감정에도 무감각해지기 시작했다. 인생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소중한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과 희로애락을 같이 하며 건강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글쓰기를 통해 나를 이해하고 너를 이해하고 세상에 관심을 가지려는 노력이 자발적으로 샘솟기 시작했다. 글쓰기는 인간적인 감정들을 회복시켜주었고 세상과 나 사이를 묶어주는 징검다리가 되어주었다. 계속 글을 써 나갈 것이다. 언제 부터 잘 쓸 수 있게 될지는 미지수이나, 졸작을 마구 양산해내더라도 나에게는 행복해질 권리가 있으니까...


Photo by Alejandro Alvarez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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