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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봉주 Aug 05. 2021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우성 개인전: 《어쩌면 우리에게 더 멋진 일이 있을지도 몰라》

2021년 3월 9일에 두산갤러리를 방문하여 2021년 3월 11일에 작성한 글입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더 멋진 일이 있을지도 몰라, 2021, 유리 위에 오일 파스텔, 240x700cm (사진: 홍예지)



 이우성 작가님은 뉴질랜드에서 직접 촬영한 바다 영상의 장면 장면을 OHP 필름에 오일 파스텔로 옮겨 담았습니다. 한 장면씩 필름이 전시된 벽면을 따라 들어가면 곧,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애니메이션이 등장합니다. 이우성 작가님이 한 장면씩 그린 필름을 이어 붙인 애니메이션 바다 영상입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더 멋진 일이 있을지도 몰라, 2021. 1969장의 그림 중 일부, OHP 필름 위에 오일 파스텔, 각 21x29.7cm (사진: 홍예지)


OHP 필름과 오일 파스텔.


 저에겐 낯선 이 두 재료는 한 뼘이 채 되지 않는 OHP 필름에 어떻게 바다를 담을 수 있는지, 또 어떻게 담아야 하는지 분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필름과 오일이라는 재료의 특성상 각도에 따라 빛의 반사가 아주 달라집니다. 서 있는 위치, 반사된 빛의 양, 그려진 흔적을 넘나들고 그림을 보며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면 그 그림이 담고 있는 무한한 스펙트럼의 일부를 목격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더 멋진 일이 있을지도 몰라, 2021, OHP 필름 위에 오일 파스텔, 각 21x28cm (25점) 중 일부 (사진: 홍예지) 


 '바다는 파랗다'는 말은 그런 면에서 다분히 게으릅니다. 우리가 바다를 보는 동안 바다가 '파란색'이기도 했지만 그 못지않게 거품과 파도는 하얗고, 잔잔할 때는 투명하고, 기분 좋게 밝고 연한 초록이 돌기도 하며 일출과 일몰 때는 충실하게 붉습니다. 빛에 민감한 필름과 오일은 이를 충분히 현현합니다.


 그리고 그 빛 반사를 통한 규명되지 않는 인상을 만들어 내는 것은 단순히 햇빛의 시간뿐은 아닙니다. 수만 갈래로 빛이 흩어질 수 있게 해변의 바다가 넘실대는 것은 얕아지는 바다 바닥 바위나 해조류 등의 모습 덕입니다. 이를 OHP 필름과 오일 파스텔은 다시 충분히 묘사합니다. 색으로는 보이지 않는 파스텔이 지나간 흔적은 조명에 따라 드러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인상을 만들어냅니다. 의도적인 비가시적 묘사가 우연적인 가시적 인상을 만들어내는 순간입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더 멋진 일이 있을지도 몰라, 2021, 1969장의 움직이는 그림, 1 채널 비디오, 6분 32초 루프 (사진: 홍예지)


 OHP 필름에 묻어나는 오일 파스텔은 파도의 흔적이 바다에 남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바다의 서사가 파도의 흔적을 증거 삼듯이, OHP 필름에 묻어난 오일 파스텔은 애니메이션에 서사를 증명합니다.


 단순히 재연에 머물지 않고, 자기만의 서사를 지닌, 그래서 온전한 바다를 보고 왔습니다.



/주: 두산갤러리 (https://www.doosanartcenter.com/ko)

/사진출처: 홍예지 (https://www.instagram.com/yeji_cu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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