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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봉주 Aug 03. 2021

일렁이는 점들의 개성

환기미술관에서

2021년 3월 9일에 환기미술관을 방문하여 2021년 3월 11일에 작성한 글입니다.

선보다 점이 더 개성적이다.

- 김환기 (1913 ~ 1974)




 수많은 점으로 이루어진 김환기 선생님의 그림을 보면 점의 각기 다른 개성들을 쉽게 마주칠 수 있니다. 하지만 점이 선보다 더 개성적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생각하며, 점으로 이루어진 선, 혹은 두 개 이상의 점을 잇는 선 역시 점처럼 다양하고, 다채롭고, 다각적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개성'은 '다양'과는 다른 문제였습니다. 선은 앞서 말했듯이 두 개 이상의 점을 '이은' 것입니다. 즉, 선은 '관계'입니다. 이 발상을 통해 보면 점은 '각각'입니다. 저마다 나름의 위치를 가지고 홀연히 일렁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선을 볼 때 선을 보지 않습니다. 선을 보며 끝과 끝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선이 어디를 잇고 어디로 이어지고 어떻게 끝나는지 생각합니다. 선은 지점 사이의 매개로 인지합니다. 선 자체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선의 성격은 선이 연결한 '개'별적인 '성'질에 의존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점을 볼  점을 봅니다. 그 점이 서 있는 위치를 보고, 점이 어떻게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보고, 그 점이 무엇을 담고 있는지 봅니다. 점 자체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점은 '개'별적인 '성'질을 가집니다.




 김환기 선생님의 그림에 각기 다른 '점'은 곧바로 면으로 나아갑니다. 심지어 점은 각각의 네모반듯한 방을 가지고 있어 서로 연결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연결되어 있지 않기에 관계 맺지 않는 각각의 위치들은, 서로를 잇기보다 바닥을 채움으로 합이 됩니다. 그 덕에 표현을 '지목하기' 보다 '보여냅니다'. 보여주는 것은 있으나 지목하는 것은 없어 관객은 보이는 것을 각자 나름으로 받아냅니다. 아마 각기 다른 손님이 같은 합을 찾았다고 하더라도 전혀 다른 평면 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개성적인 점들이 관계하지 않고도 합이 될 수 있는 것은 점들이 각각 충분히 개성적이기에 가능하다는 생각이 스칩니다. 같은 위치를 점하지도 않고 같은 모양을 지향하지도 않기에 '관계 맺기'에 '성격'을 의탁하지 않고도 각자의 평면을 채울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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