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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봉주 Jul 08. 2021

예술가의 겸손함에 대하여

장 콕토의 일갈

재주 없는 예술가야,

부질없이 네 빈곤(貧困)을 내세우지 말라.

- 장 콕토 (1889 ~ 1963)




 단순히 저 빈곤이 가난만을 이야기하는 것일까요. 빈곤을 내세운다는 것이 어떤 방식으로 잘못된 것일까요.




 겸손은 한국에서 참 '바람직한' 태도입니다. 아무리 뛰어나도 스스로 낮추어 말할 수 있어야 하고, 갖은 노력 끝에 수작이 나왔다 하더라도 그 과정을 스스로 폄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을 빈곤하다고 말하는 것을 우리는 예의라고 합니다. 반응도 충실하게 전형적입니다. 스스로 낮춘 가치를 대신 띄워주어야 합니다. '당신의 실력을 압니다', '당신의 노력이 느껴집니다'라고 수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당신은 빈곤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을 우리는 존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 어떤 생각, 어떤 작품은 그 겸손으로 자신을 치장합니다. 실력이 없거나 노력하지 않음을 왜곡합니다. 겸손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예의를 차리고 있으니 존중해 달라'고, '비워진 실력과 노력을 상대의 관념으로 채워서 생각해 달라'고 호소합니다.


 존중을 구걸하는 걸까요. 동정을 바라는 걸까요. '나는 노력했으니 적당히 이해하라'고 호소하는 꼴입니다. '예술가' 혹은 '작가'라는 이름에 의지하여 '난해', '추상'과 함께 '겸손'이라는 명목으로 무책임을 회피합니다.




 표현하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직시하고 노력을 당당히 전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니, 그래야 합니다. 그것이 작품에 진정성을 담는 유일한 길이고, 명확한 의미를 담는 작업입니다. 분명하고 단단히 갈고닦아야만 예리하게 대상을 관통하거나 지목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생각은 칼과 같습니다.


 이때 태도와 작품을 구분해야 합니다. 예술가의 태도는 겸손할 수 있지만, 예술가의 작품이 겸손해서는 안됩니다. 무인이 자신의 실력을 겸허하게 소개할 수는 있지만 그의 칼이 무디지 않고, 그의 칼놀림이 굼뜨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빈곤은 내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세워도 되는 것 역시 아닙니다. 빈곤 속에서 작품을 해낼 때, 작품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빈곤이 아니라 빈곤에 굴하지 않은 생각과 의미입니다. 칼날 같은 생각과 칼놀림 같은 의미만이 작품과 예술가를 드러내는 단 하나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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