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어떤 기간에 가장 많이 팔린 물건

연금술사에 대한 소고

by 별진

베스트셀러 <연금술사>의 책장을 넘기는 것은 의외로 퍽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문학이 무엇이기에 이 책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을까?


이 책은 아무래도 내가 아는 문학으로는 읽히지 않았다. 베스트셀러라는 것도 혼란스러웠다. 국어사전을 뒤져보았다. ‘문학 [명사] 사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 또는 그런 작품. 시, 소설, 희곡, 수필, 평론 따위가 있다.’ 라는 정의가 나온다. 문학은 사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이란다. 그렇다면 납득할 수 있다. 연금술사는 문학이다. 베스트셀러인 문학이다.


현대는 중심이 없는 세계다. 한 국가, 한 문화를 지배하던 사상은 세상 뒤로 꽁꽁 숨어버렸다. 표면적으로나마 개인은 각자가 옳다고 믿는 바를 택할 수 있게 되었고, 각자가 두고 싶은 곳에 중심을 둘 수 있게 되었다. 진리는 빛을 잃어버렸다. 모든 것이 해체되고, 사람들이 방황하는 시대에, 이 소설은 나타났다. 그리고 거듭해서 ‘자아의 신화’를 위해 살라고 말해주었다. 어딘가에 존재하는 중심을 찾기 위해 어렵게 공부하고 끊임없이 수련하여 다가가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간절히 원하라.’고 말해주었다. 이 간단한 메시지는 소설 전반에 걸쳐 몇 번이고 반복되며 강조 되었다. 노골적으로 말한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단다. 친절하게 몇 번이고 반복되는 ‘자아의 신화’에 대한 메시지는 참 달콤했다.


사실 자기 자신을 믿으라는 메시지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연금술사>의 ‘자아의 신화’는 타인의 침공을 용납하지 않으며, 그 여정에는 계속해서 주어지는 ‘표지’가 따른다는 것이 문제다. 윤동주의 ‘자아’와는 그 결이 사뭇 다르다. <연금술사>에서는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꿈을 보는 것은 아니’라고 하며,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방식으로 배우는’ 것일 뿐, ‘저 사람의 방식과 내 방식이 같을 수는 없’다고 단정 짓는다. 개인의 영역에 배타성이 있다. 산티아고는 자신이 보고 싶은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표지’들을 해석하며, 하고 싶은 방식으로 행동하지만 전혀 실패하지 않는다. 그가 실패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간절히 원하고 있으며, 안주하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산티아고의 ‘자아의 신화’는 이뤄진다. 마치 독자들에게 간절히 원하면, 타인의 간섭을 배제한 채 표지들을 자기 뜻대로 해석하면, 세상의 질서에 안주하지 않으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렇기에 나는 ‘문학’이 무엇인지 찾아봐야 했다. 이 책은 마치 영적 체험에 대해 고백하는 책 같았고, 도교 사상, 신비주의와 같은 상징들이 가득 찬 책으로 보였다. 성경의 이야기들이 등장했지만 성경의 가르침을 정론으로 설파하지 않았다. 모든 이야기들은 파울로 코엘료의 방식으로 해석되었다.


그리고 그 모든 메시지는 지나치게 간결하고, 쉽고, 반복되었다.


아주 조금만 더 솔직히 말해보겠다. <연금술사>는 신비주의 서적 같았다. 아주 예쁘고, 친절하고, 재미있고, 해를 끼치지 않는 것처럼, 종교 서적이 아닌 것처럼 포장된 종교 서적 같았다. 그래서 읽는 게 참 힘겨웠다. 이 책은 베스트셀러이며, 파울로 코엘료는 진실이든 아니든 기독교 신자로 알려져 있고, 많은 사람들이 해롭지 않은 얼굴로 이 책을 권한다는 것이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문학은 무엇인지, 아니 소설은 무엇인지 고민해야 했다. 그리고 인정했다. 이 책은 참으로 효과적으로 자신의 ‘사상’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이다. 그리고 나는 그 ‘사상’에 동의할 수 없다.


<연금술사>는 문학이며, 베스트셀러이다. 그 문학성이 얼마나 훌륭한지는 차치하더라도, 결국 나는 이 책을 누군가에게 권할 수가 없다. 파울로 코엘료의 사상에 동의할 수도 없고, 누군가에게 이러한 사상을 권하고 싶지도 않은데, 아무리 포장지가 그럴 듯한 들 정체를 알 수 없는 사상서를 권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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