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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숲 May 30. 2016

캐롤

사랑이란 아름다운 풍경




내가 보아온 영화중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가장 아름답게 그렸던 영화는 <허니와 클로버>였다. 다케모토가 하구에게 사랑에 빠지는 순간, 그 아름다웠던 찰나는 정말 오랫동안 나에게있어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순간, 이라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영상이었다. <허니와 클로버>의 그것이 아직 사랑이란 것이 익숙치 않은 청춘의 순수한 사랑의 순간이었다면- <캐롤>에서의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욕망.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진- 투명하고 맑다기보단 끈적한 (나쁜 의미가 아니고!) 느낌이었달까. 저 멋진 언니(케이트)가 이 예쁜 언니(루니)를 바라보는 그 시선에선 너를 원해, 너의 모든것을. 이라는 욕망, 그것 말곤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는 사랑이 그려져 있었다. 그야말로 '어른의 사랑의 시작점'을 목도했달까. 




<캐롤>을 문제의 그 라이브톡으로 봤었다. 당시 나는 이동진 기자님의 설명이 75분을 넘어갈 즈음 흠. 요즘 이동진 기자님이 예전의 '적당함'의 선을 좀 넘으신 것 같다, 라는 느낌을 받았었다. 너무 장황하고 약간은 두서없는 설명에대해 말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엉뚱한데서 문제가 제기되었다. 라이브톡의 내용에 관해선 별 문제를 못 느꼈었기 때문에 적잖이 당황했고, 그들이 문제라고 생각한 부분이 왜 문제인지 이해하는데에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나는 동성애자가 아니고, 동성애에 대해서는 '그것은 개인의 취향의 문제'라고 생각해왔다. (사실 동성애든 이성애든 남의 사랑엔 관심이 1도 없...니들 사랑이 니들한테나 특별한거지.....) 동성애든 이성애든 결국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것, 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말 자체가 문제라니까 나로서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것도 내가 트위터에서 꽤나 좋아했던 분들 대다수가 다 '이동진의 발언은 문제가 많다'라고 하니까 그런건가? 싶어지기까지 했었다.(응?) 왜지? 왜 화를 내는거지? 라고. 그래서 이 논란에 대해 나로서는 드물게 거의 열흘 이상을 진지하게 공부(...)하다보니까 조금은, (아니 사실 아직도 잘은 모르겠지만)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아졌다. 


동성애애 대해 '그들 역시 사람이다'라는 이야기 자체가 이미 낡은 프레임 이라는 것. 이젠 좀 더 확장된 시각으로 동성애를 볼 필요가 있다는것. 그러니까,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고 남자가 남자를 좋아하는 것 역시 '특별할 게 없'는 '당연한' 이야기라는 것. 여자가 남자를, 혹은 남자가 여자를 좋아할 땐 누군가를 사랑했는데 하필 그게 남자(혹은 여자)였다, 라고 이야기하지 않지 않는가, 라는 트윗 글에 아. 이래서 화를 내는건가 하고 약간 이해를 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잘은 모르겠다. 솔직히 나, 화내는 사람들 너무 무서워서(...) 괜히 여기 꼈다가 가루가 되도록 까일까 싶어서 조용히 있었는데 며칠 트윗터 열심히 읽다 보니까, 나 역시 동성애에 대해 딱히 반대를 하거나 혐오하거나 하진 않지만 일단 나랑은 상관 없는 이야기, 라고 생각해왔는데 나의 이 관점 자체가 이미 '이성애자의 특수성'에 대해 완벽히 무지한 태도였다는 것, 내 위치, 내 정체성 역시 저쪽에서 보았을 땐 '특수'한 것인데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로 내뱉은 나의 생각들이 이미 차별적인 발언이 될 수 있다는 소리, 라고 조금 이해를 하게 된 것이다. (아 그러니까 중요한건 사실 동성애든 이성애든 남의 사랑 자체에 관심이 없....) 아무튼 괜히 껴서 <캐롤>에 대해 이야기 했다가 나도 막 까이고 그럴까봐, 본 지 한참이 되었는데도 쓰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캐롤에 대해서. 지금도 사실 무섭다. 라이브톡 현장에 있었던 나로서는 그 발언에서 '하필'이라는 단어의 선택은 부적절했을지언정 이동진 기자님이 동성애를 부정하거나 캐롤과 테레즈의 사랑을 그냥 인류애로 폄하했다거나 하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전체 맥락은 무시한 채로 한 마디 말로 그렇게까지 사람을 조롱하고 이때싶 하며 까대는 사람들에게 나는 절대 찬동할 수 없었다. 정말 싫었다. 하지만 괜히 나서서 '당신 너무해!'하기엔 그들의 조리돌림力이 너무 강력해서 무서우니까 그냥 얌전히 언팔만 해야지 (헷) 


이 논란으로 동성애에 대해서 처음으로 '깊게' 생각해보았다. 그와 동시에 '페니미즘'이란 것에 대해서도. 공부가 필요한 부분인 것 같다. 아직 뭐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단 한가지 깨달은 것은, 내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해 온 이 프레임이 다른 쪽에서 봤을 땐 그 프레임의 존재 자체가 폭력일 수도, 차별일 수도, 포비아로 보일 수도 있다는 것 이었다. '당연한 것' '정상인 것'은 그렇게 일차원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캐롤>논란은, 내 스스로 나름 사상이 깨어있다고 생각해왔었는데 그것이 실은 1도 안 깨어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한, 날 반성하게 만든 사건으로 기억될 것 같다.  




다시 영화 얘기로 돌아가보자면 <캐롤>은 정녕 아름다운 영화였다.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가 너무 아름다워서 0.1초 단위로 캡쳐해서 온 장면을 소장해두고 싶을 정도로. 특히 테레즈의 시선을 따라 바라본 캐롤의 모습이 너무 멋졌고, 테레즈가 자기 자신도 잘 몰랐던 진짜 '나'의 모습을 캐롤을 통해 발견해가는 모습들은 정말 숨이 막히게 아름다웠다. 캐롤의, 능숙함과 여유로움이 보여주는 쿨한 아름다움, 테레즈의 조심스럽지만 도무지 멈출 수 없는 흥분된 감정들이 보여주는 달콤한 아름다움. 이혼 소송과정의 마지막에 캐롤이 보여준, 1950년대라는 시대를 생각해보면 더욱 더 놀라운 선택과 행동이 보여주는 단호한 아름다움. 정말이지 아름답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아참, 하나 있었네. 엄빠-자식 앞세워서 막 캐롤 구속하려던 남편놈. 찌질찌질, 찌질하기가 짝이 없어 아주 그냥. 여러분. <캐롤>을 봅시다. 여기 사랑따위 1도 관심없는 저조차도 무릎꿇게 만든 진짜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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